화산·쓰나미·지진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산토리니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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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1   |  발행일 2016-10-21 제34면   |  수정 2016-10-21
■ 섬들의 나라, 그리스를 가다
화산·쓰나미·지진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산토리니
산토리니의 아크로티리 선사박물관. 청동기시대 도시유적으로, 인류 역사상 둘째로 큰 규모의 화산 폭발 이후 지하 8m 아래에 묻혀 버렸다.
화산·쓰나미·지진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산토리니
산토리니 중심 마을인 피라의 골목길.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화산·쓰나미·지진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산토리니
‘리틀 베네치아’란 별칭으로 불리는 미코노스 해변의 레스토랑. 새벽까지 술과 음악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곳이다.
화산·쓰나미·지진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산토리니
미코노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풍차. 바람이 거센 이곳에서는 풍차를 돌려 밀을 빻았다.


발칸반도와 3300여 섬들의 나라 그리스
200여 유인도 중 산토리니·미코노스 명성

하룻밤새 사라졌단 전설의 아틀란티스
많은 이들 산토리니가 그 대륙이라 믿어
기원전 화산폭발·쓰나미와 1956년 지진
용암절벽 활용 건축 등 폐허 딛고 부활

축제의 섬인 ‘리틀 베네치아’ 미코노스
풍차와 누드·게이비치 등 다양한 해변

크레타 섬은 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의 고향이다. 시리아 연안의 고대국가인 페니키아의 아름다운 공주 에우로페가 친구들과 해변을 걷고 있을 때 그리스 신화의 원류가 된 제우스는 흰색의 황소로 변신해 그녀를 유혹했다. 황소는 그녀가 등에 올라타자 순식간에 바다로 뛰어든다. 그녀를 태운 제우스는 크레타로 갔다. 그곳에서 제우스는 에우로페와의 사이에서 세 아들을 낳았다. 그중 하나가 BC 1580년 크레타 미노아 문명의 전성기를 이끈 미노스 왕이다. 세 아들의 어머니인 에우로페는 유럽의 어원이 됐고, 크레타 섬은 유럽 문명의 발상지가 됐다.

신화로만 전하던 미노아 문명은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가 19세기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하기까지 무려 4천년 가까이 지하에 묻혀 있었다. 크노소스 사방 2㎞ 지역 안에 1천 개가 넘었다는 궁전과 별궁, 주택, 무덤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드라마틱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신화가 알려주듯 궁전은 ‘라비린토스’, 말 그대로 미로다. 영광스럽던 미노아 문명은 산토리니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한순간 재 속에 묻혀 버렸다. 아름다우나 슬픈 역사를 가진 섬이다.

크레타 이라크리온항에서 배를 타고 산토리니로 간다. 고은 시인이 ‘에게 블루’라 부르며 ‘독극물을 쏟아부은 듯 지독하게 푸르다’고 경탄한 바다를 2시간 정도 달리면 산토리니 신항 아티니오스에 닿는다. 발칸반도와 약 3천300개의 섬으로 이뤄진 그리스는 섬의 약 76%가 에게해에 집중돼 있다. 200여 개의 유인도 중 유명하기로 치자면 산토리니와 미코노스가 단연 으뜸이다.

◆예쁘고, 예쁘고, 예쁜 섬 산토리니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 아틀란티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장남으로 이 땅을 최초로 다스렸다는 ‘아틀라스’에서 따온 이름. 플라톤의 저서 ‘크리티아스’와 ‘티아미오스’에는 아틀란티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아틀란티스는 지중해의 서쪽 끝에 있는 아름답고 윤택한 땅이었다. 화려한 사원과 아름다운 정원, 가축들로 가득한 평원을 강력한 군대가 지켜주던 강건한 이 나라는 대지진과 홍수에 의해 하룻밤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아틀란티스는 현존한 국가였을까. 아틀란티스는 어디였을까. 플라톤 이후 2천500년의 세월이 흘렀고 많은 학자의 연구가 이어졌지만 아틀란티스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 대륙을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이라 믿고 있다.

산토리니는 초승달 모양이다. 면적은 90㎢이며 1만여 명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 원형 섬이었는데 화산폭발로 대부분이 사라지고 외곽과 가운데 봉우리 일부만 남아 둥근 형태의 칼데라 화산섬이 됐다. 동쪽엔 공항, 서쪽엔 항구가 있으며 중심마을인 피라(Fira)를 포함해 13개의 마을이 있다. 보통 산토리니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티라(Thira) 섬이다.

아름다운 산토리니의 역사는 아프다. 기원전 1500년경에 이곳에서 대규모 화산 폭발이 일어났고 이후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 30㎢를 뒤덮을 만한 마그마를 배출한 뒤, 섬은 스스로 붕괴했다. 거대한 쓰나미는 크레타 섬까지 휩쓸었다. 미노아 문명도 이때 쓰러진 것이다. 기원전 3000년부터 시작된 섬의 문명은 지진에 의해 사라졌으며, 기원전 236년과 197년, 그리고 726년에도 산토리니는 불의 구덩이였다. 불과 60여 년 전인 1956년에도 리히터 규모 7.8의 지진으로 섬은 요동쳤다. 마을은 또다시 폐허가 됐다. 산토리니의 상징인 이아(Ia) 마을도 인구가 9천명에서 500명으로 줄어들었다.

산토리니 섬의 독특한 지형은 건축양식으로 이어진다. 화산 폭발로 생긴 검고 붉은 돌과 화산재, 화산회 등이 주요 건축재료다. 이런 지형에서는 용암 절벽을 파고들어가 둥근 천장을 가진 참호처럼 만드는 형태가 가장 쉽고 저렴하게 집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칼데라의 용암절벽을 따라 줄지어 있는 집의 한쪽은 입구이고 다른 쪽은 땅속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산토리니의 건물이 밝은 데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중해의 태양빛이 워낙 강렬하고 따갑기 때문이다. 햇빛을 반사시키는 흰색으로 외벽을 칠하면 실내 온도가 덜 올라간다.

그리스 국기는 청색과 흰색으로 이뤄져 있다. 에게블루(Aegean blue)와 그릭 화이트(Greek white). 파란색은 하늘과 바다, 하얀색은 투쟁 정신을 상징한다. 이 두 가지 색은 산토리니 섬을 대표하는 빛깔이기도 하다. 산토리니의 모든 색은 오직 희거나 푸르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아그네스 발차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아 마을로 가는 해변도로를 달린다. 산토리니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예쁜 노을이 진다는 곳. 그 노을을 보기 위해 해질녘이면 섬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다. 깎아지른 듯한 섬의 암벽 위에 만들어진 마을은 그림 같다. 마을에 서면 발 앞에 푸른 지중해가 펼쳐진다. 동화책 속에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마을로 내려앉는 지중해의 태양빛은 강렬하다. 보는 순간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해버린다. 눈이 머는 듯.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하면 곧 해가 진다는 증거다. 계단과 노천카페, 성벽에 개미 떼처럼 사람들이 몰려든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관광객이 숨을 죽이고 모두 한곳을 응시한다. 해가 떨어지면 마을은 천천히 붉어진다. 희고 푸른 집과 바다가 일순간 붉게 변하는 일몰은 장관이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까지 덩달아 붉게 물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그 얼굴에서 본다.

◆누드·게이비치로 핫한 미코노스

미코노스의 첫인상은 단아하다. 여객선이 들어서는 항구 옆으로는 조용한 어촌이 있고 하얗게 단장한 그리스 전통 레스토랑인 ‘타베르나’가 도열해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리틀 베네치아’라고 부른다.

미코노스 중심가, 코라의 뒷골목은 붉은색 부겐빌레아로 단장한 가게들이 미로같이 이어진다. 아름다운 그리스 정교회의 교회는 미로 같은 골목길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미코노스에만 400여 개의 교회가 있다. 마을 뒤편으로는 섬의 트레이드 마크인 풍차가 나란히 서 있다.

미코노스는 밤이 제격이다. 어둠이 내리면 미코노스는 축제의 섬이 된다. 만토광장 인근의 클럽들을 기점으로 다운타운의 클럽과 바들은 밤새 문을 열고 새벽까지 흥청거린다.

유럽의 청춘들은 이 맛에 미코노스로 달려온다. 축제는 해변으로도 이어진다. 미코노스는 다양한 해변으로 유명하다. 플라티 얄로스비치, 누드 해변으로도 알려진 파라다이스 비치 등에서도 흥겨운 파티가 열린다. 누드비치라고 해서 꼭 알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슈퍼 파라다이스 비치, 엘리아 비치 등은 게이비치로 알려져 있다.

새벽 3시50분. 하루키는 미코노스의 서머 하우스에서 잠이 깬다. 그는 어둠이 내려앉은 이국의 풍경을 내다보면서 ‘라스트 타이쿤’을 쓰다가 쓰러져 죽은 스콧 피츠제럴드를 생각한다.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소멸이다. 아무도 그것을 복원할 수 없다.” 그는 중얼거린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에게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영원한 생이 아니며 불멸의 걸작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현재의 일이다. 이 소설을 다 쓸 때까지만 어떻게든 살아 있게 해달라는, 단지 그것뿐이다.” 이토록 힘들게 써내려간 소설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이다.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소멸일 터, 죽기 전에 에게해의 이 아름다운 섬들을 꼭 한 번은 볼 일이다.


글·사진= 산토리니·미코노스에서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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