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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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6   |  발행일 2016-10-26 제30면   |  수정 2016-10-26
20161026

참담한 ‘최순실 게이트’
연설문 유출 철저히 규명
청와대 비서진 전면 개편
내각사퇴·중립내각 구성…
박근혜 대통령 용단 기대


참담하다.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의 모습인가 싶다. 어떻게 만들어 온 나라인데 여기서 그냥 주저앉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대통령 연설문이 이른바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미리 유출됐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심지어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들의 인사기밀도 미리 유출됐다고 한다. 이원종 비서실장의 말대로 정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고, 봉건시대에도 없던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갑갑하다. 만약 우리나라가 내각책임제 국가라면 내각이 총사퇴하고 정권이 붕괴됐을 것이다. 그렇게 위기를 돌파하고 총선거를 통해 새롭게 내각을 구성하여 심기일전의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중심제인 우리나라는 달리 방법이 없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도덕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무력화되고, 국정은 마냥 표류할 수밖에 없다. 경제위기, 안보위기가 턱 밑까지 차오르는 데 말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외면하려고 해도 이미 벌어진 일은 현실이다. 이를 어떻게 하든 수습하고 우리는 또 앞으로 나가야만 한다. 박근혜정부의 임기는 아직도 16개월이나 남아 있다. 식물대통령, 식물정부가 선장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여기서 끝낼 요량이 아니라면 어렵더라도 눈을 뜨고 귀를 열어서 지혜를 모아나가야 한다. 어려울수록 질서 있게 이 참담한 상황을 정리해나가야만 한다.

첫째, 진상 규명이다. 대통령 연설문 유출이 어떻게 이루어졌느냐를 먼저 밝혀야 한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사전에 최순실에게 전달되었는가, 아니면 최측근 비서관이 임의로 최순실에게 유출했느냐는 하늘과 땅 차이다. 대부분 국민은 대통령이 지시했다고는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최순실과 이에 부화뇌동한 비서관이 짬짜미가 되어 벌인 어처구니없는 일로 치부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둘째, 청와대 비서진의 전면개편이다. 명확한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도 우병우 민정수석을 먼저 경질해야 한다. 우 수석이 사실상 지휘하는 가운데 어떤 조사나 수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국민은 믿으려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문고리 3인방 그리고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모두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대통령을 잘못 보좌하고 국기문란의 사태가 벌어진 데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셋째, 내각 총사퇴와 선거중립내각 출범이다. 황교안 내각도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에게 이토록 큰 좌절감과 상실감을 주었다면 내각이 총사퇴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2017년 대선과정에서 중립성을 의심받지 않을 인물을 발탁하여 선거중립내각을 꾸려야 한다. 새 국무총리의 지명과 국회임명동의 그리고 장관후보자 제청과 국회에서 인사청문회 과정 등을 고려하면 차일피일 미룰 일이 아니다.

넷째,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이다. 박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내밀었기에 더더욱 대통령의 당적 이탈이 중요하다.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통령이 열거했던 개헌의 필요성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 믿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혹여 ‘최순실 개헌’이니 ‘장기집권용 개헌’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면 어느 당파로부터도 자유로운 것이 당당하다. 대통령이 새누리당 탈당 후 국가운영에만 전념하는 것이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길이다.

마침 오늘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지 37주년이 되는 날이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함께 흘려왔던 모든 이들에게 가슴 먹먹한 날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그 벅찬 여정을 힘겹게 이루어왔던 우리나라가 커다란 암초에 좌초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용단을 기대해 본다. 그 시절을 돌이켜본다면 우선 자신을 먼저 비우고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국민의 멍울을 풀어주는 일이라면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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