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세도정치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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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8   |  발행일 2016-10-28 제23면   |  수정 2016-10-28

세도정치는 원래는 ‘널리 사회를 교화시켜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라는 사림(士林)의 통치이념에서 나온 이상적인 정치도의를 의미했다. 이 때문에 세도정치는 사림의 정치참여를 정당화하고 사림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동력이 됐다. 하지만 정조 때 홍국영의 전횡 이후 척신(戚臣) 또는 총신(寵臣)이 강력한 권세를 잡고 전권을 휘두르는 정치 형태로 변질됐다. 한자도 세도(世道)정치에서 세도(勢道)정치로 바뀌었다. 홍국영은 정조가 세손으로 있을 때 정후겸 등 벽파의 위협에서 그를 보호해 깊은 신임을 얻었다. 그 공로로 정조 즉위 후 홍국영은 도승지 겸 금위대장에 임명된다. 홍국영은 누이동생을 정조의 빈(嬪)으로 들여보내 권력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려 했으나 누이 원빈은 1년 만에 죽고 만다. 홍국영은 세도재상(勢道宰相)이라 불릴 만큼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며 국정을 농단했으나 4년 만에 축출됐다.

정조가 죽고 순조가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정조의 유탁(遺託)에 따라 김조순이 그의 딸을 왕비로 들인다. 안동김씨에 의한 세도정치의 서막이었다. 그 뒤 조만영의 딸이 세자빈이 돼 헌종을 낳았고 헌종 때는 풍양조씨에 의한 세도정치가 15년 가까이 계속됐다. 하지만 김조순의 일문인 김문근의 딸이 철종 비(妃)로 간택되면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다시 이어졌다. 이후 15년간의 세도정치는 전횡과 타락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종친도 외척 안동김씨의 기세에 눌려 눈치를 볼 정도였다고 한다.

대통령 비선실세로 지목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과외지도(?)까지 한 정황이 언론 보도로 밝혀졌다. 최씨를 둘러싼 베일이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그녀가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항간의 소문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씨의 대통령 연설문 수정 의혹에 대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 개인 비서 역할을 하고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누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마치 조선시대 세도정치의 부활을 보는 듯하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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