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희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스페인 바르셀로나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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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8   |  발행일 2016-10-28 제37면   |  수정 2016-10-28
한마디로 ‘가우디 월드’…하지만 가우디만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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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천장엔 꽃들이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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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넘게 건축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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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건축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카사 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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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의 집을 연상시키는 구엘 공원 입구의 기념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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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 밀라의 환기구는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다스 베이더의 모델이 됐다.

스페인에 오니 일상의 속도가 두 배쯤 느려지는 것 같다. 에너지를 뿜어내는 건 태양뿐, 거리도 사람도 햇살 아래 늘어져 있고 늦은 오후의 거리는 평온하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에선 이제 시에스타를 지키지 않는 추세라지만 낮잠이 아니더라도 오후는 여전히 그들에겐 휴식의 시간이다. 한낮을 넘기고 느지막이 집에서 나선 사람들은 노천카페에 앉아 상그리아나 모히토로 목을 축인다. 이 태평한 나라에 온 김에 그들처럼 여유나 부려볼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틈이 없다. 여행자에게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고 바르셀로나엔 볼 것이 너무 많으므로.

도시 곳곳 피카소·미로·달리 등 족적
134년째 공사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곡선 활용한 카사밀라와 구엘공원 등
그 중심엔 가우디의 건축 걸작 떡하니

대성당 고딕지구는 흡사 로마 시간여행
성당 근처 골목엔 중세 성당·왕의 광장
또다른 한편엔 모더니즘 건축 걸작들
파빌리온과 카탈루냐 음악당도 명소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는 가우디

여행지의 매력을 논할 때 사람들은 주로 볼 것, 먹을 것, 그리고 현지인을 언급한다. 역사가 길어 볼 것이 많고 식문화가 발달했는데 현지인마저 친절한 곳이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 그렇게 치니 바르셀로나는 빠지는 데가 없다. 스페인 동부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은 이 해안 도시는 가우디의 예술적인 건축물과 유쾌한 사람들, 다양한 타파스 요리를 앞세워 전 세계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가우디뿐인가. 파블로 피카소,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같은 화가들도 이곳을 거쳐 갔다. 그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예술 기행을 떠나는 일에 여행 기간 전부를 바쳐도 시간이 부족할지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해변에서 일광욕하고 식당가를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떠나기 싫은 마음이 뒷덜미를 열 번도 더 잡는 곳이니 말이다.

가우디로 시작해 가우디로 끝내는 것만으로도 바르셀로나는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상공업 도시였던 바르셀로나가 이를 자양분으로 수준 높은 예술을 꽃피우던 중심에 바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있었다. 그가 설계한 미완성의 성당에 연간 300만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다녀가는 것만 보더라도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는 가우디’란 말이 과언은 아니다. 구엘 공원, 구엘 별장,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카사 비센스 등 가우디의 많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바르셀로나. 그중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성 가족성당)에서 느꼈던 벅찬 감동과 놀라움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감동은 지하철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으며 이미 시작된다. 꼭대기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위엄에 압도당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기이한 모양의 기둥과 조각, 꽃밭 같은 천장,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오묘한 빛깔까지 내부는 더 놀랍다. 세상에 이렇게 독특하고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다니. 머릿속에 있던 유럽의 대성당들은 모조리 범작이 되어 희미하게 사라진다. 가우디는 성당을 유기체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숲으로 가꾸어 놓았다. 나무 기둥이 치솟고 손 닿을 리 없는 높은 천장엔 꽃송이가 뿌려졌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하얀색 내부를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으로 덧칠한다. 파랑과 초록 등 푸른 계열의 동쪽은 탄생을 나타내고, 해 질 땐 죽음을 상징하는 붉은 색상이 성당 안을 채운다. 항상 자연으로 시선이 향해있던 가우디는 성당 외벽선도 대부분 곡선으로 처리했다. 바르셀로나 외곽에 있는 몬세라트 산의 봉우리에서 영감을 받아 첨탑 윤곽을 구상했다고 한다. 돌에서 자라나온 것처럼 보이는 조각도 나무 덩굴처럼 이리저리 얽혀있다. 잠시만 머물러도 현실감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첫 삽을 뜬 1882년부터 전차에 치여 사망한 1926년까지 가우디는 이 작업에 반평생을 쏟아부었다. 성당 공사는 자그마치 134년 동안 진행되고 있으며, 지금도 300명이 넘는 작업자가 그가 남기고 간 숙제를 풀고 있다. 가우디 때 완성된 것은 예수의 탄생 장식과 지하 성당뿐. 앞으로 완성될 성당은 예수를 상징하는 170m의 중앙 첨탑과 열두 제자를 나타내는 100m의 첨탑 12개로 구성된다. 탑 사이를 잇는 다섯 개의 돔은 성모 마리아와 4명의 복음 성인을 상징한다. 온전한 모습을 과연 볼 수 있기는 할까. 가우디의 원래 계획이 축소되긴 했지만 어쨌든 성당 내부는 상당 부분 완성되었고, 스페인 정부는 가우디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26년까지 공사를 끝내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성당 측은 현재부터 완공될 때까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물론 완공된 실물이 궁금하지만, 오랜 건축 기간을 홍보에 활용하고 있는 만큼 공사를 오히려 늦춰야 할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여전히 공사 중이니 성당 내부에는 시멘트 포대와 공구가 흩어져 있다. 이런 모습조차 관람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공사 중에도 인기는 넘치는지라 성당 앞은 항상 아침 일찍부터 긴 줄이 이어진다. 시간대별로 예약 후 입장할 수 있으니 예약은 필수다.

◆동화 속 주인공이 되는 구엘공원

가우디의 작품 안에서 사는 기분은 또 어떨까. 번화한 그랑비아 대로 중간에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거대한 조각품처럼 보이는 이 건물은 카사 밀라다. 카사는 ‘집’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카사 밀라는 의뢰자였던 밀라의 집을 뜻한다. 옆에서 보면 굴곡진 거대한 암석을 파낸 곳에 한 집, 한 집이 둥지를 튼 것처럼 보이고, 위에서 보면 건물의 중간이 텅 비어있다. 물결치듯 구부러지는 외관을 감상한 후 아름다운 출입구를 지나 집 안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다스 베이더처럼 생긴 굴뚝이 솟아있는 옥상에 다다른다. 안과 밖, 아래와 위 어디에도 심심한 구석이 없다. 하지만 가우디가 활동하던 때 그의 상상력과 파격은 다른 누군가에겐 기괴한 것이기도 했나 보다. 지금에야 평가가 좋아졌지만, 완공 당시는 카사 밀라와 가우디를 비꼬는 말이 많았다고 한다. 그랬던 곳이 지금 가우디 걸작으로 꼽히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걸 보면 당시의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진다. 아무튼, 아름다운 건물임이 틀림없다. 바르셀로나의 한중간에 있어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기에도 좋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또 다른 대표작 구엘 공원이 있다. 이곳은 원래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이 상류층을 위한 전원주택단지로 설계 의뢰한 곳이다. 하지만 작업의 어려움과 자금난 등을 이유로 공사가 중단됐고 그걸 시가 사들여 공원으로 개방했다고 한다. 구엘 공원에선 누구나 동화책 속 인물이 된다. 파도 모양의 벤치에 앉으면 이국적인 정원이 발치에 놓이고, 과자로 빚은 것 같은 기념품 가게에선 문을 열고 마녀가 나올 것 같다. 작은 타일 조각으로 정교하게 작업한 도마뱀은 손대기 무섭게 스르르 달아나는 게 아닌가 싶다. 가우디의 창의성과 치밀함은 휴식도 주고 상상력도 자극한다. 본래 계획이 무산된 덕분에 이 멋진 곳이 모두의 공원이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도시가 간직한 보물 같은 건축물

바르셀로나의 다른 명소들은 일단 가우디의 ‘마력’에서 빠져나온 후에야 눈에 들어온다. 대성당이 있는 고딕 지구는 구시가에서도 가장 오래된 지역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시간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사원의 기둥과 도시의 오래된 벽, 지하 통로가 여행자를 시간 여행으로 이끈다. 대성당은 고딕 양식과 카탈루냐 양식이 혼합된 것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성당에 그나마 가까운 모습이다. 고딕 지구의 그늘진 골목길을 잠시 걷다 보면 되감기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또 시간을 뛰어넘어 이번엔 중세 성당 앞에 도착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 이사벨 여왕을 알현했다는 왕의 광장도 이 성당 근처에 있다.

한편 도시의 다른 쪽에선 모더니즘 건축의 걸작이 기다리고 있다. 가우디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파빌리온, 20세기 초 가우디만큼 명성이 높았던 몬타네르의 카탈루냐 음악당도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다. 바르셀로나가 간직한 이 보물 같은 건축물들은 2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아우르며 지금 같은 공간에서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선 카탈루냐의 성지인 몬세라트를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이 산은 암석 절벽에 지어진 수도원이 유명하다. 특히 수도원 공회당에 있는 검은 마리아상을 보려고 매년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톱니 모양을 한 몬세라트 산의 모습은 가우디의 작품에서 몇 차례 재현됐다. 햇살 좋은 날 몬세라트에 오르면 피레네 산맥과 지중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푸니쿨라를 타면 거의 몬세라트 꼭대기까지 갈 수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수도원 전경과 주변 경치가 장관이다.

바르셀로나 여행의 베이스 캠프는 람블라스 거리로 잡는 것이 편하다. 람블라스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남쪽 항구까지 연결되는 1㎞의 보행자 거리를 말한다. 호텔, 백화점, 식당, 기념품 가게, 공연장이 늘어서 있어 지내기 편하고 활기도 넘친다. 현지인들의 삶을 엿보는 데는 시장만 한 데가 없다. 바르셀로나 대표시장인 라 보케리아도 이 거리에 있다. 시장엔 하몽, 올리브, 와인 등 스페인을 대표하는 먹을거리가 풍성하게 준비돼있다. 바르셀로나의 식당은 점심을 푸짐하게 맛볼 수 있도록 ‘메뉴 델 디아’를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는다. ‘오늘의 음식’쯤으로 해석되는 메뉴 델 디아는 점심시간에만 특별히 판매하는 정찬이다. 애피타이저, 본식, 후식과 음료를 포함한 가격이 10~15유로로 저렴한 편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우아한 아르누보 식당에서 풍미 넘치는 파에야를 맛보고, 타파스 바와 해산물 식당, 초콜릿 가게 등 바르셀로나가 차려놓은 잔칫상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 또한 여행자들에게 큰 행복을 안겨다 줄 것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ndroid201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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