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경북 영천·대구시 팔공산 코끼리바위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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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8   |  발행일 2016-10-28 제38면   |  수정 2016-10-28
고빗사위 넘듯 바위를 기어오르니 사방 뻥 뚫려 장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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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바위를 지나면서 본 팔공산 정상 방향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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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능선에 올라 지나온 코끼리바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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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조암 갈림길에서 능선을 오르면 만나는 마사토 지대.

은해사 말사 부귀사∼대구 종주코스
등산로 빨간 리본 찾아 따라 오르니
마사토 훤히 드러나 사막 같은 구간

881m 봉우리서 보이는 코끼리바위
팔공산 주능선 중간으로 山群 한눈에
붉음·푸름 넘나드는 단풍에 넋이 쏙


오래 전 설악산을 가려면 대구역에서 중앙선 기차를 타고 영주까지 간 다음 강릉으로 가는, 콩나물시루같이 제대로 설 수도 없는 비좁은 기차를 갈아타고 가야 했다. 강릉에서도 또다시 설악산 입구 물치에서 내려 설악동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몇 번이고 갈아타는 차 시각을 확인하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차에 올라타기만 하면 행운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을 즐겨본 지가 얼마나 오래인지, 막상 떠나려니 여러가지 확인할 것도 많지만 소풍가는 아이처럼 설레었다. 대구와 인접하지만 가로막힌 산 때문에 오지마을로 여겨지는 팔공산 북쪽마을에서 대구로 넘어오는 코스를 잡았다. 영천시 신녕면 부귀사로 향하는 동안 몇 번의 차를 갈아타느라 번거로웠지만 차창 밖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을 얻었다.

은해사 말사인 작은 사찰인 부귀사에 도착하자 담장 아래 옹기종기 모였던 고양이 몇 마리가 요사채 뒤로 몸을 숨긴다. 고양이들은 우리가 법당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야 다시 담장 아래로 모여들어 가을햇살을 쬔다. 산사 한편의 감나무에도, 담장을 타고 오른 담쟁이에도 제법 가을빛이 물들었다.

공양주 보살님이 커피와 떡을 내오신다. 가끔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드물다며 멧돼지나 짐승들이 많이 내려온다며 조심하라고 당부의 말도 빼놓지 않는다.

부귀사 뒤 산신각을 올라 곧장 능선으로 올라붙는 등산로도 있고, 정면의 텃밭을 가로질러 계곡을 건너 능선으로 오르는 길도 있다. 일행들은 정면의 길을 택해 길을 잡는다. 작은 계곡을 건너면 희미한 등산로를 찾아야 하는데 매놓은 리본이 물든 단풍으로 구분이 어렵다. 몇 장의 리본만 찾으면 그 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길을 찾아 조금 진행하자 최근에 달아놓은 빨간색 리본이 촘촘히 달려있다. 약 10분을 오르니 능선을 만나고, ‘동봉 2.5시간’으로 적은 작은 표석이 세워져있다. 여기서 빨간 리본은 능선의 아래쪽 오백나한이 모셔진 거조암으로 향하고, 진행 방향은 동봉쪽의 길을 잡으면 이후는 갈림길이 없다.

빨간 리본으로 표시를 한 것은 대구시, 경상북도 상생협력사업으로 팔공산 둘레길 108㎞를 잇는 표시기이다. 둘레길 조성은 기존의 옛길을 살려 2018년 완성 예정이다. 능선으로 이어진 길은 소나무 숲이다. 이미 채취시기가 지났지만 곳곳에 송이버섯 채취지역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경계를 표시한 노끈이 길게 늘어져 있다. 20분쯤 지나면 능선 오른쪽으로 마사토가 훤하게 드러나 사막 같은 구간을 만난다. 그 위로 어지럽게 찍힌 짐승발자국도 능선을 향하고 있다. 발자국만 따라가면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만날 것도 같다. 오롯한 능선을 40여분 더 오르자 부귀사 산신각으로 오른 능선과 만나는 작은 갈림길을 지나고 곧 881m 봉우리인데 특별한 이정표 없이 작은 헬기장처럼 평평한 곳이다. 진행방향의 건너편에 코끼리바위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 오른쪽으로 팔공산 주능선과 정상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20m 정도 오른쪽 능선을 따르다 왼쪽 내리막 방향으로 리본이 걸린 길을 따르면 코끼리바위로 오르는 바윗길을 만난다. 공룡 발자국을 닮은 생강나무 잎들은 샛노랗게 물들어 키 높이에 깔렸고 팥배나무, 마가목은 잎을 떨어트리고 하늘을 배경으로 가지 끝에 붉은 열매를 맺었다. 코끼리바위 바로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우회길이 나있지만 고빗사위를 넘듯 바위 위를 기어오른다. 이곳이 팔공산 주능선 중간쯤 되는 지점이니 왼쪽으로 관봉에서부터 오른쪽 정상부까지, 뒤로는 보현산, 화산, 군위쪽의 조림산, 금성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방이 거친 데 없는 전망 터다. 코끼리바위에서 내려서서 주능선 방향으로 작은 바위를 하나 더 넘어야 한다. 5m 남짓한 로프구간을 올라서면 비스듬히 오른쪽 아래로 바위가 길게 늘어져 있다. 바위를 내려서서 왼쪽으로 돌아서면 주능선으로 향하는 길이 선명하게 나있다.

평지와도 다름없는 길을 따르니 식수로도 가능할 만큼 샘물이 쏟는 곳이 있다. 관봉방향으로 바른재 지나 ‘팔공약수터’라고 부르는 곳 외에는 주능선 가까이에서는 식수를 구하기가 어려운데 조금만 손을 보면 샘터로 훌륭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주능선에 올라서니 ‘47’로 적은 위치 표지판이 있다. 관봉에서부터 주능선에 일정한 간격으로 위치표기를 해두었는데 갈림길마다 위치표시를 알아두면 편하다. 능선을 걷다가 코끼리바위를 가려면 47번에서 북쪽 능선. 이렇게 활용하면 길 찾기가 쉽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주능선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지난다. 47번 표지판에서 왼쪽은 바른재 지나 관봉으로 향하고, 오른쪽으로 약 100m를 가면 신녕재(도마재)를 만나는데 북쪽으로 공산폭포, 수도사로 갈 수 있고, 남쪽은 폭포골, 동화사로 갈 수 있다. 일행은 폭포골을 지나 동화사로 하산하기로 한다. 20분가량은 가파른 내리막인데 낙엽이 깔린 길에 멧돼지가 뒤져놓아 발 디딤이 조심스럽다.

역광을 받은 단풍색이 붉음과 푸름 사이를 그라데이션으로 넘나들고 산국, 구절초 향기에 취해 넋이 쏙 빠질 듯하다. 40여분을 내달려 폭포를 지나 물길을 두어 번 가로질러 건너고, 외국인 산장 터에서 오른쪽 언덕을 넘어 약수암 지나 동화사 경내에 이른다. 휴일을 맞아 많은 관람객들이 찾은 경내를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오랜만에 차도 없는데 곧장 평화시장으로 가자는 일행의 제안이다. 그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재미가 그런 곳에도 있지. 가자 평화시장으로.

대구시산악협회 이사·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apeloil@hanmail.net

☞ 산행길잡이

부귀사 주차장-(10분)- 거조암 갈림길 -(20분)- 마사토지대 -(40분)- 881봉 -(20분)- 코끼리바위 -(25분)- 신녕재(도마재)-(40분)- 폭포 -(25분)- 동화사 -(10분)- 정류장

팔공산의 등산코스는 대구 쪽에서 접근하거나 칠곡군 가산 쪽의 코스가 대부분이다. 팔공산을 끼고 있는 군위, 영천쪽 코스는 접근성의 이유로 찾는 이가 적은 편이다. 영천 신녕면 부귀사에서 올라 코끼리바위까지 오른 뒤 되돌아 나와 원점회귀코스를 잡아도 되고, 부귀사에서 대구 쪽으로 종주코스를 잡아도 된다. 부귀사에서 코끼리바위까지는 약 4㎞, 코끼리바위에서 동화사까지 약 4㎞. 원점회귀코스든, 종주코스든 약 8㎞로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 교통

대중교통= 대구에서 814번 시내버스를 타고 하양시외버스정류장까지 간 다음 와촌1번 버스로 환승해 신녕버스정류장까지(500원 추가) 간다. 정류장 앞 택시로 부귀사까지(1만원) 간다.

자가용= 대구포항간고속도로 와촌IC에서 내려 청통, 신녕면을 지나 치산관광지캠핑장 방향으로 약 2㎞ 가면 부귀사 3.9㎞ 이정표가 나온다.

☞ 내비게이션

영천시 신녕면 칠밭골길 446(부귀사)

☞ 볼거리

거조암 영산전

거조암(居祖庵) 영산전(靈山殿)은 1962년 국보 제14호로 지정되었다. 거조암은 원래 거조사라 하여 신라 효성왕 2년 원참조사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다고도 하고, 경덕왕 때 건립되었다고도 한다. 거조암은 팔공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아미타불이 항상 머문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형식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 5량 구조의 맞배집으로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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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부도군

동화사부도군

동화사 부도군(桐華寺 浮屠群)은 동화사 뒤쪽에 위치한 열 기의 조선 시대 부도(浮屠)이다. 1986년 12월5일에 대구시 유형문화재 12호로 지정되었다. 모두 10기에 이르는 부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모두 이 절에서 수행한 역대 승려들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기단에 연꽃무늬 새김 외에 거의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탑 몸돌에 승려의 이름을 새겨두긴 하였으나 그 행적을 기록한 것은 드물다. 주로 17∼19세기 초에 세운 것들로,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부도양식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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