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정조의 얼굴, 실마리를 찾았다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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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9   |  발행일 2016-10-29 제16면   |  수정 2016-10-29
초상화로 만나는 조선시대 역사
“터럭 한올도 다르면 다른 사람”
최고재상 斜視까지 그대로 그려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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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를 모신 경기도 화성 융릉의 문인석(왼쪽). 정조가 아버지의 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형상화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문인석의 생김새가 실제로 할아버지 영조의 어진(오른쪽)과 비슷하다는 점이 이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생각정거장 제공>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그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리나라에서 사진기가 도입되고 사진을 실제 찍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다. 이전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의 모습을 기록해두기 위한 수단은 초상화였다. 당시 초상화를 그린 화가들은 사진 못지않게 인물의 생김새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이 책은 공개된 초상화뿐만 아니라 공개되지 않았던 초상화까지 보여주며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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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철 지음/ 생각정거장/ 388쪽/ 1만8천원

1장 ‘다른 각도로 보는 초상화’ 중에는 매우 닮은 두 초상화 ‘이채 초상’과 ‘전(傳) 이재 초상’을 소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1483호 ‘이채 초상’은 조선 후기 문신 이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눈, 피부의 묘사가 생생해 마치 그와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는 노론의 중심 인물인 도암 이재의 손자였다. 이재는 중앙정치와 학계를 배후에서 움직였고, 대제학 등을 지낸 인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이채의 초상화와 너무도 흡사한 영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전 이재 초상’이다. 이채 초상화와 거의 비슷하고 나이만 더 들었다는 이유로 이재의 초상화로 알려져왔다. 제발문과 찬문으로 그림의 주인공이 누군지를 알 수 있는 이채 초상화와 달리, 이재 초상화는 이 같은 단서가 하나도 없다. 이 때문에 이재 초상화가 과연 이재를 그린 것이 맞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로선 이재 초상화가 후대 이채 초상화를 제작할 때 이를 그대로 참조해 다시 그렸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2장 ‘임금의 얼굴 어진’에서는 8점의 초상화가 제작됐지만, 화재 등으로 단 한 점의 초상화도 남아 있지 않은 정조의 얼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세자를 모신 경기도 화성 융릉에는 능을 지키는 문인석(文人石)이 있다. 이 문인석은 여느 문인석과 달리 눈, 입술 등의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유독 효심이 깊었던 정조가 아버지의 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문인석에 형상화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문인석이 봉황이 새겨진 금관도 쓰고 있고, 그 생김새가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 어진과 비슷하다는 점은 이 주장에 힘을 싣는다. 뿐만 아니라 정조가 아버지를 모신 경모궁 안에 자신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부친의 사당을 바라보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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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재상 채제공의 초상. 그가 사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생각정거장 제공>

인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조선 후기 탕평책을 성공적으로 이끈 채제공의 초상에서 그가 사시(斜視)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그의 양 눈은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 관련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친 장만도 특이하게 안대를 쓰고 있다. 그가 이괄의 난 때 병든 상태에서도 몸을 돌보지 않고 밖에서 지내다가 왼쪽 눈을 잃은 사실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다. ‘일호불사 편시타인’(一毫不似 便時他人·터럭 한 올이라도 같지 않다면 곧 다른 사람이다)이라는 조상들의 생각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외에 이황, 충무공 이순신 등 초상이 전해지지 않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한다. 특히 이순신에 대한 언급이 있는 문헌과 일본에 남아있는 이순신의 고손자 이봉상의 초상을 토대로 이순신의 얼굴을 예상해보는 과정은 흥미롭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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