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홍의 시시콜콜 팝컬처] 다시 돌아온 네온사인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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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4   |  발행일 2016-11-04 제41면   |  수정 2016-11-04
그 집이 우리를 홀린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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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시대의 산물인 네온사인이 복고 열풍을 타고 부활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많은 작가들은 이 네온사인을 광고용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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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네온은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학창시절 친구들과 매일같이 드나든
‘라비앙 로즈’ 노래와 同名 카페 때문
진홍 네온 간판 불빛은 그 美의 정점

복고열풍 타고 부활한 네온 ‘낭만적’
미술이 불 댕긴 네온 풍경에도 기대
향촌문화관 전시장에 붙은 네온 글귀
그 자체가 현대 미술작품되기에 충분


언젠가부터 하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세련된 상점에 간혹 비치는 네온사인 불빛이 도심 밤거리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난 오늘 주제에 따른 제목을 ‘다시 돌아온 네온사인’이라고 붙였다. 어떤 글이든 제목 붙이기는 참 힘들다. 원래 ‘네온사인의 귀환’ 아니면 ‘네온사인의 역습’을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좀 심했나? 각각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과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이 내 머릿속에 박혀 있다가 튀어나온 거겠지. 또한 제목이 그렇다면, 한동안 우리 곁을 떠났던 네온사인이 어느 날 개선장군처럼 당당히 돌아와서 빛을 내는 모습을 그려야 할 거다. 그렇다면 하워드 쇼어나 존 윌리엄스가 만든 영화 주제곡들처럼 힘차고 긴장감 어린 사운드 역시 이 글의 배경음악으로 어울려야 마땅하나. 그렇지만 그건 아니잖아.

우리는 안다. 철 지난 시대의 산물인 네온사인이 복고 열풍을 타고 부활한 배경은 다분히 낭만적인 일이란 것을. 과거의 돌이킴이라 해도, 프리츠 랑의 1920년대 영화 ‘메트로폴리스’가 그려낸 어둠과 빛의 표현주의 영상을 60년이 흐른 후 영국 밴드 퀸이 ‘래디오 가가’로 복고주의를 재현한 록사운드는 지금 우리의 도시와 감각이 맞지 않는다. 또 30년 전 주현미가 “오색등 네온 불이 속삭이듯 나를 유혹하는 밤”에 흐르던 ‘블루스’가 흘리던 정서는 더욱 아니다. 주관적인 견해겠지만, 네온사인은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과 일체를 이룬다.

살면서 경험하는 진실과 윤리와 심미안은, 남들이야 뭐라 하던 본인에게는 그것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다. 진선미가 최고조에 닿은 그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어하는 욕망은 한 사람의 일생을 지배한다. 내게 에디트 피아프가 불렀던 라비앙 로즈(La Vieen rose), 장밋빛 인생이 네온사인에 관한 추억과 겹치는 이유는, 같은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대구 동성로의 어느 작은 카페 때문이다.

고등학교 산악부 시절부터 뭉쳤던 친구들이 자주 만나던 곳은 팔공산 암벽등반 직벽 코스는 아니었다. 그 대신 시내에 있는 이런저런 카페에서 만나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거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쓴 히말라야 등정기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1980년대 말의 대학가는 여전히 독재 체제가 변형으로 연장되던 시기로 최루탄 연기가 끊이질 않았고, 친구들은 하나씩 군 입대를 했다. 음악과 등산은 현실엔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다가올 입대 영장에 불안해 하던 우리들에게 일종의 피난처였던 셈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찾은 카페 라비앙 로즈에는 주인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알 수 없는 아가씨가 있었고, 우리는 그에게 반한 한 친구 녀석 때문에 가게를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친구 좋은 일만 시킨 일과 속에서 그 집이 우리를 홀린 건 안팎으로 모두 하얀 광택이 흐르는 벽면에 붙은 네온사인이었다. 바로 지금 대구에 입소문이 나며 많은 젊은이들이 찾고 있는 ‘오하이오’ ‘에이 플레인’ ‘플라방’ 같은 찻집들의 분위기가 그때 그곳의 재현이라고 해도 관계 없을 만큼 세련미가 있었고, ‘La Vieen rose’라는 글귀로 만든 진홍빛 네온사인은 그 아름다움의 정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같은 성당에 다니던 후배와 말하자면 데이트 비슷한 것을 하게 되었다. 어디 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서툴렀던 내가 그녀와 간 곳이 대구백화점 본점 높은 층이었다. 왜 갔냐고 다들 궁금해 할 것 없다. 우물쭈물하다가 이유 없이 간 거니까. 알고 올라 간 곳이 아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차 한 잔 할 공간은 있었다. 마치 백화점에 있는 여느 옷가게처럼 그곳은 사방이 벽 없이 트여있고 다만 조악하게 도금한 테두리가 둘러쳐져 있는, 이름만 카페인 곳이었다. 나는 커피를 마셨고 후배는 암바사를 시켰던 걸로 기억한다. 그 맹숭맹숭하던 분위기 속에, 우리가 앉은 자리 옆에 분홍빛 네온사인이 켜져 있었다. 그날 우리들의 이야기가 쉼 없이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네온사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톰 크루즈와 찰리 쉰 두 닮은 꼴 배우 가운데 누가 더 매력 있는지, 매번 가을 한국시리즈만 올라가면 주저앉는 삼성 라이온즈를 더 응원해야 하는지, 변사체로 발견된 운동권 강경대 학생의 사진이 얼마나 끔찍한지, 얕은 지식 탓에 주제는 금방 바뀌어갔지만 자리는 끝이 안났다. 파랑은 차가운 색, 빨강은 따뜻한 색이라고 색 분류는 되지만, 이상하게도 네온 빛은 전부 따뜻하게 느껴진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그 온화한 정감은 사람과 사람의 감정을 잇는 매개체 구실을 한다고 믿고 있다.

옛날 상업은행 건물을 향촌문화관과 대구문학관으로 바꾸어 꾸며놓은 공간 1층에 가면 유명한 미술가 김승영씨가 완성해놓은 설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은행 용도로 쓰일 때엔 금고였던 전시장에는 ‘Are you free from yourself?’라는 글귀가 네온사인으로 걸려있다.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 네온사인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공간에서 맥락을 찾는 현대 미술 작품인 셈이다.

예컨대 영국의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을 비롯해 많은 작가들이 네온사인을 광고용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표현한 시도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옛날부터 이어져 온 우리의 서예는 책의 어느 한 문구를 따로 뽑아서 집중적으로 감상하는 행위였다. 따져보면 네온사인에는 서예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독립된 언어로 새삼스레 강조하는 예술성이 처음부터 깃들어져 있던 게 아닐까.

어른 손가락 굵기보다 가는 유리관 속에 이런저런 물질로 된 기체를 살짝 채우고 센 전류를 흘려보내면 그 물성에 따라 다양한 색을 발하는 게 네온사인의 원리다. 발명된 지 100년이 훨씬 넘은 네온사인은 도시 야경을 아름다운 색으로 꾸미는 물감과도 같은 존재였고, 상점과 유흥가의 분위기에 맞아 떨어지면서 환락의 대명사가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다 좋은데 전기를 많이 먹는 단점 때문에 다른 조명기구로 대체되면서 네온사인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 부활의 시기에 이르렀다. 하나의 긴 유리관이 한 획의 필기체처럼 흘려서 이룬 네온은 개념을 중시하는 현대 미술작품이 되기에 충분했다. 미술이 다시 불을 댕긴 네온사인의 풍경은 예술 사조의 명멸과 상업적인 유행 주기가 그런 것처럼 다시 하나씩 불이 꺼져 갈 것 같다. 하지만 유행이라도 좋으니까, 난 그 내리막길이 너무 가파르게 끝나지 않기를 원할 뿐이다. P&B 아트센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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