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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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4   |  발행일 2016-11-04 제43면   |  수정 2016-11-04
개연성 없는 해프닝을 배우 연기로 살려내다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럭키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럭키

천상의 감초 조역전문 유해진이 20년 연기인생 처음으로 원톱 주연을 맡은 ‘럭키’가 절묘히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극장가의 화제가 되고 있다.

우연한 사고로 냉혹한 킬러와 무명 단역배우란 인생의 배역이 바뀐 개연성 제로의 해프닝에 관객이 열광하는 이유는 단연코 유해진의 이미지 밸런스 때문이다. 결코 호남형이 아닌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몰두하고 분식집 주방장으로 변신해 김밥썰기 신공을 보여주는가 하면, 84년생 32세란 자신의 나이를 겸연쩍어 하면서도 순진무구히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극장 안은 킥킥대는 잔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영화제목처럼 ‘럭키’한 해진도사의 강림이다.

우치다 겐지의 ‘열쇠 도둑의 방법’(2012)을 리메이크한 영화의 스토리는 온전히 대중의 오락성을 충족시킬 만큼 황당하고 단순하다.

냉혹한 킬러 형욱(유해진)은 사건 처리 후 와이셔츠의 핏물을 씻을 겸 대중탕을 찾고 무명배우의 생활고에 시달리던 재성(이준)은 자살을 결심하고 황천행 목욕재계를 위해 역시 그곳에 간다. 거기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 119에 실려간 형욱의 사물함 열쇠(바로 영화제목 럭키와 중의적 상징성을 띤다)를 습득해 자신의 키와 맞바꾼 재성은 하루 아침에 인생역전의 대박 행운을 맞게 된다.

재성이 형욱으로 행세하며 형욱 위층에 사는 은주(임지연)에 마음을 뺏기는 사이, 32세 재성이 된 45세 형욱은 자신을 구해준 119 구급대원 리나(조윤희)와 가까워지며 리나 엄마의 분식집에서 일하게 된다. 나이와 계층이 이동세탁된 두 남자가 각자의 사랑을 찾아가는 도정은 킬러였던 형욱의 카테고리, 그리고 무명배우였던 재성의 바운더리와 황당하면서도 흥미롭게 뒤얽혀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해 관객을 즐겁게 한다.

형욱의 집 모니터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은주가 킬러 형욱의 청부살인 타깃임을 알게 된 32세 재성의 에로스적 집착이 생뚱맞은 의협심으로 발전하는 동안, 리나의 매니저 내조에 힘입어 무표정 투혼의 액션으로 주가를 높인 45세 형욱은 무명배우에서 일약 촬영 현장의 블루칩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서서히 속도를 높여야 하는 자동차 가속의 원리를 무시하면 사고를 유발하듯 영화는 대단원을 앞두고 포즈 조절에 실패한 기색이 역력하다. 은주를 위한답시고 재성이 벌여 놓은 저지레를 해결하기 위한 현장에 리나가 등장하면서 네 남녀가 조우하는 장면은 풀리다 만 실타래처럼 부자연스럽고, 재성에게 이발사 아버지의 사랑을 설파하는 형욱의 설교성 대사에선 신파의 그림자마저 드리워 쓴웃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요즈음 안방극장에서 인상 깊은 열연을 펼치고 있는 조윤희, 이준, 전혜빈 등 중견연기자들의 영화 속 또 따른 페르소나를 만나는 재미는 예상외로 쏠쏠하다.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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