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속보이는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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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7 08:05  |  수정 2016-11-07 08:05  |  발행일 2016-11-07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속보이는 뇌…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사람과 만나게 됩니다. 친구로 만나기도 하고, 선후배로 만나기도 하고, 직장 동료로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많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을 물어보면 많은 분은 소통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대체 그 사람 속을 모르겠다” 혹은 “그 사람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고 싶다”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무인도에 가서 사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뇌 속의 신경세포들은 사회 속의 사람들과 닮아 있습니다. 신경세포는 절대 혼자서는 살지 못합니다. 신경세포는 쉴 새 없이 다른 신경세포와 신경전달물질을 주고받으면서 소통합니다. 그러한 소통과정을 통해 신경세포 내 많은 소기관들은 활성이 되고 세포 내 스트레스도 조절되면서 생존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결국 인간의 뇌 활동이란 1천억개의 신경세포 간 소통의 결과입니다. 마치 어떤 사람의 인맥이나 학연을 알아보면 그 사람의 배경이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듯이, 뇌 속 신경세포 간의 연결을 파악하면 그 신경세포의 기능을 정확히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뇌 활동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 뇌의 전체 신경망을 파악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개념을 현대 뇌연구의 중심으로 가져온 사람은 현재 프린스턴대학교 신경과학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는 한국계 과학자인 세바스찬 승 교수입니다. 2010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나는 나의 커넥톰(신경단위 연결체)이다(I’m My Connectome)’라는 TED 강연을 통해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신경세포 간의 연결을 통해 이뤄지는 소통이라는 이론을 제시하였고, 이 TED 강연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뇌 속 신경세포간의 연결을 밝히는 ‘뇌지도 작성’ 연구를 촉발하였습니다. 이후 2013년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Brain Initiative Project(뇌활성지도 작성 프로젝트)’에 1억달러(한화로 약 1천4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고, 세바스찬 승 교수는 이 야심찬 프로젝트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혁신적인 신경과학 기술을 통해 뇌 속 신경세포 활동에 관한 지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뇌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많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190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골지 교수와 카할 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신경세포의 염색이 가능해진 이후 과학자들은 신경세포 관찰에 매진해왔습니다. 신경세포는 생물학적 세포이므로 인지질막으로 싸여있습니다. 이 인지질막은 빛의 투과를 방해하므로 현미경으로 신경세포를 관찰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뇌조직을 아주 얇게 썰어 관찰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013년 스탠퍼드대의 한국인 대학원생이던 정광훈 박사(현재 MIT 교수)는 획기적인 실험기법을 개발해 ‘네이처’지에 발표합니다. 빛의 투과를 방해하는 인지질막 성분을 뇌에서 제거해 뇌를 투명하게 만들어 뇌를 얇게 썰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 뇌 속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속보이는 뇌를 만들어 낸 것이죠. 이 ‘투명화 기법(CLARITY)’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은 골지 교수의 골지염색법 이래 가장 획기적인 신경과학 기술이며, 해부학적 뇌지도를 작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여 ‘뇌지도작성 프로젝트’를 굳이 하는 이유는 뇌과학 분야가 갖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 때문입니다. 당장 몇 년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결과를 가져다 주지는 못할지 모르나 분명 우리의 뇌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고 넓어질 것입니다. 이를 통해 현재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치매를 극복하는 신기술이나 정말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 개발도 가능하게 되겠죠? 이제 혼밥하지 마시고 뇌 속 신경세포처럼 누군가와 함께 즐겁게 수다떨며 식사하고 속도 좀 보여주면서 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떨어내고 아름다운 가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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