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광신과 맹목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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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7 08:07  |  수정 2016-11-07 08:07  |  발행일 2016-11-07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광신과 맹목에서 벗어나려면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초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 스무세 살의 꽃다운 처녀가 신장질환으로 죽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몇몇 사람들이 밤길을 가다가 그 처녀 집 근처에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로 들어가 얼굴이 긁히고 상처를 입었다. 다친 사람들은 처녀가 불러서 가시덤불로 들어갔다고 했다. 처녀 어머니가 무속인을 찾아갔다. 무당은 딸이 다른 마을의 총각 귀신과 결혼을 시켜달라고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영혼결혼식을 잊을 수 없다. 전통혼례를 실제처럼 치르는 동안 마을 아낙들은 치마로 눈물을 훔치며 저 세상에서 두 영혼이 잘 살기를 빌었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그 분위기가 너무 숙연하고 슬퍼서 그냥 어른들을 따라 울었다. 그날 우리는 소고기국밥과 과일 등을 배불리 먹었다. 산 자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치른 그 의식은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무속신앙은 그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세종실록’에 “지금의 세속은 구습을 따라 무격의 요사하고 허탕한 말에 미혹되어 이를 높이고 신앙하니, 어떤 때는 집에서, 어떤 때는 들에서 음사를 행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기록이 있고, ‘성종실록’에도 “요새 사람들은 다투어서 귀신을 믿는다. 범사의 길흉화복을 한 번은 무당에게 들어본다”라는 기록이 있다. 무속은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 아득한 상고시대부터 한민족의 종교적 주류를 형성했고, 외래 종교가 들어 온 뒤로도 민간신앙으로 한민족의 기층적 종교현상으로 전승되어 왔다.

한국 기층문화는 무속의 품 안에서 보존되어 왔다. 김상환 교수는 수천 년에 걸친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적 유래와 이념적 기원은 무속적 상상력에 있다고 말했다. 한류 열풍도 한국인의 무속적 기질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무속적 상상력의 특징은 충동과 즉흥성에 있고, 여기서는 형식적 균형을 깨는 파격, 비대칭을 낳는 역동적 흐름이 관건이라고 했다. 무질서의 질서, 비형식의 형식이라는 특징을 가지는 무속적 역동성은 춤과 노래 등 예술분야에 발랄한 상상력과 창조의 에너지를 제공하여 한류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무속적 사고는 개인과 집단을 비합리적 충동과 광신적 맹목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혹세무민으로 돈벌이에 집착하는 사악한 무속신앙과 사이비 종교를 번창하게 하는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있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폐쇄된 사회에서 탈락한 대책 없는 사람들, 취직과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이들, 고용불안 속에서 비전 없이 살아가는 직장인들, 절대 권력과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이들 모두는 알게 모르게 열심히 무속인을 찾고 있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광신과 맹목을 이성과 합리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서 불확실성을 줄이고, 절차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 아이들도 ‘최순실 게이트’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교훈을 얻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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