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고영태보다도 못난 사람들

  • 장용택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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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8   |  발행일 2016-11-08 제30면   |  수정 2016-11-08
20161108
장용택 중부지역본부장

최순실게이트 부른 대통령
방조한 여당과 청와대참모
여론에 밀려 수사하는 검찰
후세의 평가가 두렵지 않나
석고대죄하고 참회록 써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2차 대국민 사과를 했다. 시기도 늦었고, 구체성이 없었으며, 진정성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었다. 스스로도 용서하기 힘들다고 했지만 국민의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2차 집회에는 무려 20만명이나 모였다. 국민의 참담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방증한 것이다.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표를 준 것은 바로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일관성으로 대변되는 그의 정치철학과 신념에 환호한 것이다. 재임기간 내내 보여준 불통의 이미지와 늦은 타이밍을 두고선 장고(長考)하는 것이라며 국민은 인내했다. 하나 현재 국민은 배신당했다. 40여 년 동안 대를 이은 최태민과 딸 순실을 비롯한 그들 일가의 농간(弄奸)에 대통령이 놀아난 것이다. 가족은 멀리한다면서 최씨 일가의 전횡은 묵인했다. 이쯤 되면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혼군(昏君)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혼군만큼이나 미운 축은 바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청와대 참모, 장차관들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4·13총선을 앞두고 180여 석은 무난하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친박마케팅으로 일관한 오만함으로 인해 여소야대라는 초유의 사태를 자초했다. 나아가 청와대 참모, 장차관들의 행태는 아부에 여념이 없는 간신(奸臣)들이나 하는 짓거리였다. 대통령 옆에서 곁불이라도 쬐려는 인사들의 행태를 떠올리면 구역질이 날 정도다.

한 번의 대형사고가 나기 전에 그와 비슷한 작은 사고가 30건이 나며, 작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무려 300여 건의 사소한 징후가 나타난다고 한다. 바로 하인리히 법칙이다. 최순실 일가의 농단이 여러 번 문제가 돼도 집권여당에선 꼴사나운 비호로 임했다. 왜 그럴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 국민은 이제야 무릎을 치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상급반 학생이 쓴 작문보다 못한 대통령의 연설이나 국무회의 모두발언에 국민은 의아해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최씨 일가의 국정전횡과 농단의 징후가 수도 없이 많았다. 김무성 전 대표는 최근 “최씨 일가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다”고 이실직고했다. 그를 포함한 측근들이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면서 방치했다면 비겁한 것이다. 집권여당 의원들과 청와대 측근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목에 시퍼런 칼날이 들어와도 잘못을 지적하는 게 도리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봉건왕조시대처럼 사약(賜藥)을 받기라도 하는가. 기껏해야 직(職)을 내려놓으면 되는 게 아닌가.

아기 옹알이처럼 들릴 듯 말듯 ‘청와대 알라들’ ‘헌법 1조1항’을 들먹인 게 고작이다. 집권여당은 정부를 감시하고 나라를 지키려고 보낸 경비견이다. 고가에 구입한 경비견이 도둑을 지키기는커녕 도둑이 주는 먹이를 먹으려고 꼬리를 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상황이 바뀌자 대통령이 내린 은총으로 샤워를 했던 조윤선 문체부장관과 왕수석 안종범씨 등은 줄행랑치기에 바쁘니 국민은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갈지(之)자 걸음과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인 검찰도 이번 사태에 큰 책임이 있다. 임명권자의 눈치만 살피다가 여론에 떠밀려 수사를 벌이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명민(明敏)한 수재들만이 모여있는 검찰이 크게 오해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당신들의 임명권자는 국민이라는 것이다.

초등학생조차 큰 사건을 수사할 때마다 “성역 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라고 외치는 검찰의 결기를 믿지 않는다. 최순실의 측근이자 호스트바 출신의 고영태가 “최순실이 (태블릿PC로) 연설문을 고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내용을 언론에 흘렸고, 이것이 거악(巨惡)의 실체를 알리는 단초가 됐다. 고영태가 국가의 곳간이 털리는 추가피해를 막은 셈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집권여당 국회의원들은 물론, 대통령 측근들도 이제라도 석고대죄하고 참회록을 쓰라. 하다못해 자신의 집 담벼락에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플래카드라도 붙여라. 후세의 평가가 두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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