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어물전의 폴리페서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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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11   |  발행일 2016-11-11 제23면   |  수정 2016-11-11
[조정래 칼럼] 어물전의 폴리페서

참으로 놀랍다. 최순실이 검찰 출석에 대역을 썼고, 이같은 의혹 제기에 검찰이 지문검증을 통해 이를 악성 루머로 밝혀냈다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쿨하게 발표했어도, 이젠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루머가 사실이고, 사실이 루머 같은 대혼돈의 시대에 무에 그리 놀랄 일이 있을까 보냐, 자포자기하는 심정의 심연 속이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핫 플레이스다. 온갖 스토리와 가십거리를 자아내고 있는.

개차반의 나라에 중헌 게 무엇이 있겠냐만, 그런데도 못내 ‘양아치보다 못한 XX’, 쌍욕이라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유일한 꼴불견이 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 ‘최씨는 모르는 사람’.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이같은 진술은 우리 민초들을 아연실색하게 한다. 뭐 저런 ‘XX’가 다 있나, 욕지거리로는 부족해 ‘참 박근혜가 불쌍하다’고 혀를 끌끌 차고야 만다. 청와대 실세가, 그것도 수석 중에 수석 그야말로 ‘몸통’이 ‘깃털’인 양 청와대를 나오자마자 검찰 문턱을 채 넘기도 전에, 주군에게 등을 돌리는 그 넓은 낯짝이 한없이 부끄럽다.

양아치들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터다. 우린 벌어진 입을 아직 다물지 못하고 있다. 조폭들 간의 의리는 애당초 기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폴리페서(polifessor)’들 말이다. 안종범은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출신이다. 검사와 함께 대학교수는 박근혜정부에서 가장 많이 중용된 직업군이자 나라를 망치고 국제적 망신을 사게 한 주범이기도 하다. ‘대우조선해양 자금지원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됐고 산은은 들러리였다’고 발뺌한 홍기택 전 산업은행 총재는 한국 몫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을 걷어차고 잠적한 채 청문회에도 나오지 않은 현대판 행불자다.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갔나’, 수많은 술래들의 찾기에도 그의 종적은 묘연하다. 체육계의 황태자로 군림했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빼놓을 수 없는 폴리페서. 그들의 호가호위와 비겁은 판타지에 가깝다.

5공화국 시절 독재권력에는 아당하고 야권과 학생운동 등에는 한없이 강경했던, 소위 매파들은 대부분 일반의 예상과 달리 육사 출신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서울대 출신들이었다. ‘쟤들이 왜 더 설치지.’ 한 육사 출신 국회의원은 앞장 서서 총대를 메는 범생 출신들의 과격함에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서울대 것들의 아첨지기 자청이었다. 서울대는 소위 우리나라 명문대들의 대명사로 지칭한 것일 뿐, 특정대의 오해와 항의가 없길 바란다.

독재에서 민주정으로 체제와 시대가 바뀌었어도 배운 것들의 호가호위는 유통기한이 없다. 폴리페서 전성시대다. 대선을 1년여 앞둔 정치의 계절, 대선 예비주자들의 캠프에 폴리페서들이 정치 철새로 날아든다. 잠룡들이 세 과시를 위해 영입경쟁을 하니 몸값도 올라가고, 각양각색의 전문가를 참칭한다. 바야흐로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 호시절이다.

문제는 폴리페서들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들의 낯 뜨거운 곡학아세와 유치한 민낯이다. 이 나라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사단’과 씨줄과 날줄로 얽힌 폴리페서들. 전문가적 지식과 지혜는 눈 씻고도 찾아보기 어렵고 문약함과 치기만이 우리를 기막히게 한다. 한마디로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키듯, 박근혜정부 망신은 폴리페서들이 다 시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맹목적 충성’도 ‘동지의식’도 없이 ‘권력만 누리다 제 살길 찾는 이익집단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비판이 이 정부 폴리페서들의 지리멸렬을 정확하게 찔렀다. 얼마나 참담했으면 대학생들이 이들의 귀환을 반대하고 나서겠나.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문안인사 메일을 보내는, 이 나라 교수들의 민낯이 낯 뜨겁다.

교수들의 정계진출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너무 가볍고 쉽게 경계를 넘나들고 선비다운 기개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못하는 게 문제일 뿐이다. 그렇다고 폴리페서들의 대학 복귀를 법과 제도로 규제하는 것 역시 자유와 지성의 전당에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대학사회의 양식과 자정능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폴리페서의 금의환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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