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남 담양 관방제림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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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11   |  발행일 2016-11-11 제37면   |  수정 2016-11-11
물 내음이 깃든 둑의 흙길…나무향·단풍빛에 취해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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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교 앞 관방제림에 표지석과 안내문, 정자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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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읍내를 동에서 서로 관통하는 담양천. 관방천으로도 불린다. 왼쪽 가로수길 너머가 관방제림, 정면에 보이는 다리가 향교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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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방치돼온 미곡 창고가 전시실과 북카페 등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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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죽녹원. 향교교 건너 바로 왼쪽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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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메타세쿼이아길. 현재 유료화되어 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제방이다. 둥치 큰 나무들은 서로의 손을 뻗어 닿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안전하고 평온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촉촉한 물 내음이 깃들어 있는 흙길에는 나지막한 평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담양경노당석’이라 적힌 평상에 낙엽이 앉아 있고, 벤치에는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다. 이러한 풍경이 자연의 아늑함을 한층 드높인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우정으로 충만한 유복한 지대, 담양의 관방제림이다.

1648년 府使 성이성 둑 쌓고 나무 심어
담양천변 제방보호·수해방지 숲 역할
200∼300년생 320여그루…천연기념물

관방제림 끝서 연결된 메타세쿼이아길
향교교서 길 건너면 대나무숲 죽녹원
미곡창고의 변신 담빛예술창고도 명소

◆관비로 만든 제방 숲, 관방제림

담양의 북쪽 가마골 용소에서 영산강의 시원인 물줄기가 솟는다. 용소를 채우고 넘쳐흐른 물은 담양천(관방천)이 되어 흐르고, 담양읍을 돌아 광주와 나주를 통해 바다로 간다. 옛날에는 홍수가 날 때마다 담양천이 범람해 천변의 집들을 덮쳤다 한다. 조선 인조 때인 1648년, 담양 부사 성이성(成以性)은 제방을 쌓고 제방이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나무를 심었다. 이후 철종 때인 1854년 부사 황종림(黃鍾林)이 관비를 투입해 제방과 숲을 다시 정비했고 이후에 부임해 온 관리들도 개인의 재산을 털어 숲을 관리했다 한다. 관에서 만든 제방, 그래서 둑의 이름은 관방제(官防堤), 숲의 이름은 관방제림(官防堤林)이다.

나무들은 팔이 긴 사람이 껴안아도 손끝이 닿지 않는 큰 몸집이다. 제방의 사면에 뿌리를 내려 온몸이 기울어진 나무들도 요지부동으로 보인다. 옛날 관방제림에는 700여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벚나무,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등 15종의 낙엽 활엽수 32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나무의 나이는 200살에서 300살, 숲은 천변리에서 남산리까지 약 2㎞다. 그 중 1.2㎞ 구간은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통 담양군청의 북쪽 향교교에서 동쪽으로 진행해 추성경기장 뒤편의 남산리 동정마을까지 왕복코스가 일반적이지만 담양시장에서 추성경기장까지를 추천한다.

담양시장에서 향교교까지의 제방길은 보다 동네사람들과 가깝다. 제방은 제방 곁에 딱 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테라스고 마당이고 쉼터다. 낡은 의자에 앉아 천을 바라보는 노인은 마치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고 자신의 장원을 굽어보는 남작 같다. 사람들은 숲에 앉아 서늘하고 부드러운 바람을 즐긴다. 이러한 시간을 허락해 준 기후와 친절한 자연에 찬사를 보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국수거리에서 담빛 예술창고까지

옛날에는 하천가를 따라서 향교와 객사, 관가 건물이 있었다 한다. 천변의 공터에는 수백년 동안 죽물시장이나 우시장이 섰고, 씨름판이 벌어지고 놀이패가 판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죽공예품과 청죽(靑竹)이 거래되던 죽물시장은 이름 높았고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타지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오곤 했었다. 당시 서민들에게 싸고 편한 먹거리는 국수였다.

담양시장을 벗어났나 싶을 즈음 국수거리가 이어진다. 천이 내려다보이는 제방의 가장자리에는 느티나무 사이사이마다 평상이 놓여 있고 윤나는 낡은 소반들이 열지어 있다. 지금은 2일과 7일마다 5일장이 열리고 천변을 따라 난전이 이어지지만, 우시장이나 죽물시장은 서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국수거리는 지금도 성황이다.

국수거리는 물국수, 비빔국수, 삶은 달걀로 유명하다. 식당마다 사용하는 면과 육수, 고명이 조금씩 달라 집집마다 독특한 맛이 있다. 가격은 4천원에서 6천500원 사이. 싸다. 3개에 천원인 일명 ‘약계란’은 멸치 국물, 댓잎 가루를 넣은 국물, 각종 한약재를 넣은 국물 등으로 삶아 내 소금 없이도 목이 메지 않는다.

국수거리의 끝, 향교교 앞에 ‘관방제림’ 표지석이 서 있다. 다리 아래로 자전거 대여소가 보인다. 제방 아래 천변에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나란하다. 한 가족이 마차형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조금 가다 보면 제방 오른쪽으로 궁도장이 자리하고 다시 조금 더 가면 왼쪽으로 커다란 추성경기장이 자리한다.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은 것과 때를 같이하여 생겨난 하천 유휴지를 일제 때 경기장으로 조성한 것이라 한다. 이후 천연 잔디를 깔고 육상 트랙을 갖추고 본부석과 스탠드를 설치해 종합 경기장으로 조성했다. 관방제림은 경기장의 남쪽을 감싸고 있다. 자연 스탠드다.

제방을 사이에 두고 경기장 맞은편에는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을 가로질러 나아가자 멋진 건물 한 채가 나타난다. 담빛 예술창고다. 원래 10년 이상 방치되어 있던 미곡창고였다. 지금은 전시실과 북 카페다. 주민들로부터 기증받은 책이 카페 중앙을 차지하고 대나무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정면으로 돌아나가자 붉은 벽돌 외관에 적힌 ‘남송창고’란 글자가 선명하다. 카페 앞에서 멀리 메타세쿼이아길이 보인다.

◆세 개의 숲이 이어지다

메타세쿼이아길은 관방제림이 끝나는 지점에서 연결된다. 향교교에서 메타세쿼이아길까지는 약 1.6㎞ 거리다. 487그루의 굵고 높은 나무들이 숲 천장을 이루는 길. 1972년 담양, 순창 간 국도 42호선을 건설하면서 심었으니 비교적 짧은 역사지만 그에 비해 나무들의 덩치가 크다. 이 길은 2012년부터 유료화되어 성인의 입장료가 2천원이다. 삼대가 함께 온 가족이 길 입구에서 돌아 나오는 모습에 조금 씁쓸했다.

향교교에서 길을 건너면 죽녹원(竹綠苑)이다. 쭉쭉 뻗은 대나무가 빼곡한 숲을 이룬 대숲 정원이다. 관방제림과 메타세쿼이아길, 죽녹원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담양 수목길’이다. 전체 길은 담양 리조트까지 8.1㎞ 거리로 조금 무리다 싶지만 세 개의 숲을 이어 걸어 보는 일은 멋진 선물이다. 특히 이 가을에. 걷기가 부담스러우면 자전거를 타도 된다. 세 개의 숲을 이어 달리는 길은 안전하고, 평온하고, 속 시원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에서 12번 88올림픽고속도를 타고 담양IC에 내리면 된다. 담양읍 죽녹원 이정표를 따르면 관방제림을 찾기 쉽다. 향교교 남단 관방제림 주차장이나 담양시장 근처에 주차를 하면 된다. 세 개의 숲을 모두 정복하려면 관방제림에서 메타세쿼이아길로 갔다가 되돌아와 죽녹원으로 가면 된다. 담양읍사무소에서 관방제림 입구까지는 자전거로 5분 거리다. 국수거리 지나 시장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한우거리가 있고 향교교 주변으로 담양의 대표음식인 떡갈비와 대통밥 가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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