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시는 오래된 미래의 예언이다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6-11-14 07:51  |  수정 2016-11-14 07:51  |  발행일 2016-11-14 제18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시는 오래된 미래의 예언이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이 가을엔 구름에 대해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구름에 대해서라면 누가 이미 그 불운한 가계의 내력과 독특한 취향까지 세세히 기록한 바 있고, 심지어 선물상자라며 하늘수박을 제멋대로 담아본 이도 있다지만, 구름은 뭣보다도 오리무중에 암중모색이 그 본색이자 기질이다.// 그래선지 난 구름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물론 양떼구름이니 새털구름이니 뭉게구름이니 하는 종류는 조금 안다. 하지만 그것들 또한 다만 형상일 뿐 구름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내가 아는 것은 또 한 가지. 구름이 환절기를 틈타 내 무릎이며 발목, 손가락 마디에까지 들어왔다. 산중턱에 걸린 안개구름 속을 오래 걸었던 탓인지는 모르지만, 어찌됐건 구름께서 친히 내게 왕림하신 거다. 이토록 음습하고 뼈 시린 통증이야말로 장마구름의 본질이 아니던가, 하고 곰곰이 사색 중이다. 이 골똘함 또한 오로지 구름에게서 배운 것이다.// 구름은 역시 가을하늘이 제격이다. 허공이 모태이며 고향이자 무덤이기 때문이다. 서리 내린 가을들판만큼 쓸쓸하고 적적해 보면, 누구나 구름의 심정을 약간은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 몸에 지난 장마의 먹구름이 친히 이사 오셨다. 침묵은 끝내 내가 익혀야 할 구름의 덕목이다. 빈 하늘이 그걸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엄원태, -‘구름의 본질’)

미림근육연구소가 이태 만에 문을 닫았다// 근육에 구름을 배합하는 방법과 비율을 수십 년간 연구해서 특허를 여럿 획득했다는 소장님은, 안개가 심한 날이면 근육통을 호소하는 고객들의 클레임에 시달렸다고 한다// 근육엔 차라리 꽃잎 같은 걸 배합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그럴듯한 상상을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인근에서 꽃집을 운영한다는 이혼한 전부인의 협조 여부는 알려진 바 없다// 올해도 매화며 벚꽃들은 길가에 소복하게 떨어져 바람에 흩날린다// 주택가 백목련은 저 혼자 꽃 대궐을 이루었다// 아쉬운 대로 백목련을 배합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스쳐갔을 것이다// 그가 끝내 가성소다를 주입하는 극약처방만 쓰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미림근육연구소는 그 이름대로 아름다운 근육의 숲을 울울창창 이루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다시 봄은 가고, 여름이 채 오기도 전에,// 우리 동네 미림근육연구소는, 그 짧은 생의 곤궁(困窮)을 다하여, 이제 다만 구름의 영역으로 사라지고 말았다(엄원태 -‘미림근육연구소’)



실로 ‘서리 내린 가을들판만큼 쓸쓸하고 적적하기 짝이 없는 늦가을’입니다. ‘오리무중에 암중모색이 그 본색이자 기질’인 구름이 친히 온 국민에게 왕림하셔 ‘이토록 음습하고 뼈 시린 통증’을 안긴 까닭입니다. ‘그 불운한 가계의 내력과 독특한 취향’에 오래 기생한 것들이 나라에 퍼부은 ‘양잿물(가성소다)’이 어젯밤 궁전 앞 대로를 메운 촛불을 밝히게 했으니 구름의 덕목을 다 했느니 허탈하게 말할까요. ‘그 짧은 생의 곤궁(困窮)을 다하여, 이제 다만 구름의 영역으로 사라지고 말리라’. 시인은 차마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문득 떠올라 찾아서 꺼내 읽는 독자의 입장에선 이 시가 예언처럼 느껴집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