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도명산(道明山·해발 642m, 충북 괴산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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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18   |  발행일 2016-11-18 제38면   |  수정 2016-11-18
형형한 바위 틈새마다 깊이 뿌리박은 가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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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마주한 무영봉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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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산 정상에서 돌아본 낙영산, 백악산 뒤로 속리산 능선이 톱날능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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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영산에서 도명산으로 향하다 만난 바위. 나뭇가지를 괴어둔 모습이 재밌다.

속리산국립공원 자락 여러 산 중 하나
낙영산 공림사 거쳐 도명산 잇는 코스
산길 나뭇가지 괸 집채만한 바위 눈길
정상선 뾰족한 능선 도열한 듯 눈앞에

낙영사터 마애불 보려면 학소대쪽으로
30m 자연석에 새겨진 14m 고려삼존불
불상 발치에 사철 솟아나는 샘물 신기
우암 은거한 화양구곡 8경 학소대 절경


공룡 발자국을 닮은 생강나무 잎이 아침 햇살을 한가득 받아 샛노랗게 물들었다. 자세히 보면 실핏줄처럼 가느다란 잎맥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선명하다. 온 산자락을 붉게 물들였을 단풍은 이미 마르거나 져버렸고, 얼마 남지 않은 손바닥만 한 생강나무 몇 잎이 아직은 가을임을 말해주려는 듯하다. 오색찬란한 단풍 길이어도 좋고, 바스락거리는 낙엽길이어도 좋다. 첫눈 소식과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막바지 가을 정취가 묻어나는 속리산 자락의 산을 찾아 길을 나선다.

속리산국립공원은 그 일대의 산군을 국립공원에 포함시켰다. 묘봉, 백악산 등 상주쪽과 낙영산, 가령산, 도명산 등 괴산쪽까지 속리산에 속한다. 그중에서 낙영산과 도명산을 잇는 코스를 잡았다.

낙영산 입구인 공림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경내로 들어서니 많은 신도들이 둘러앉은 대웅전에서 법회가 열리고 있다. 공림사는 신라 48대 경문왕 때 창건된 사찰로 한때 법주사보다 더 번성했으나 임진왜란과 6·25전쟁 당시 빨치산토벌작전으로 전소되어 새로 지은 사찰이라고 한다. 마당 정면으로 천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자라는데 둘레가 무려 13m에 달한다. 대웅전에서 왼쪽 텃밭으로 돌아 나와 안내도 앞에 선다. 안내도는 낙영산을 지나 도명산으로 이어져있고, 이정표 또한 한 방향이다. 얼마간은 둘이서 걸어도 될 만큼 제법 넓은 길이다가 계곡을 한번 건너면서부터는 가파른 너덜길이 이어진다. 듬성듬성 바위를 드러낸 너덜지대는 낙엽이 덮여있어 발을 내딛기가 조심스럽다. 쉬엄쉬엄 50분가량 오르니 낙영산과 쌀개봉 사이 안부에 이른다. ‘공림사 1.3㎞, 낙영산 0.5㎞, 도명산 1.4㎞’의 이정표가 서있는 삼거리 갈림목이다. 곧장 도명산으로 가도 되고, 낙영산을 올랐다가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두 길 모두 계곡에서 만나게 된다.

낙영산 정상까지는 약 20분을 오르면 되는데 사방이 나무에 가려 조망은 없이 밋밋하다. 북쪽으로 뻗은 능선으로 내려서면 작은 계곡에서 조금 전 삼거리길에서 갈라진 길과 만나고 계곡을 건너 오르막이 이어진다. 길 오른편에 한 쪽이 들려있는 형태의 집채만 한 바위를 만나는데 주위의 나뭇가지를 주워 받쳐둔 모습이 재밌다. 누가 봐도 위태로워 보이는 바위다. 그렇다고 나뭇가지 몇 개를 괴어놓은들 무슨 힘을 받겠나마는 누군가 돌탑을 세워놓으면 괜히 작은 돌 하나 쌓아올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 바위에서 약 5분을 더 오르면 다시 안부를 만난다. 도명산 정상으로 곧장 오르려면 왼쪽 바위를 타고 오르면 되겠지만 위험해 우회하도록 길을 내놨다. 약간의 경사면을 내려와 산 사면을 따라 돌아 올라가는 길인데 본격적인 바윗길이 시작되는 구간이다.

침목으로 된 계단은 정상 200m를 남겨두고 학소대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는 철계단으로 바뀐다. 두어 번 철계단을 오르면 노송과 어우러진 정상 일대엔 커다란 바윗덩이 몇 개가 있고 그 아래에 정상석이 놓여있다. 정상 표석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에 밀려 내려선다. 모진 바람에 뒤틀린 노송들은 분재전시장이 되고, 낙영산을 지나 백악산 능선이 연결되어있다. 그 뒤로 뾰족한 봉우리들이 도열한 속리산 정상일대가 조망된다. 동쪽 방향은 청화산,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주능선이 손에 잡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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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암.

하산은 ‘첨성대’ 방향과 ‘학소대’ 방향 어느 곳으로 내려가도 되지만, 도명산에서 최고의 볼거리로 치는 낙영사터 마애불을 보려면 되돌아 내려와 학소대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갈림길에서 5분가량 내려서면 옛 낙영사터를 만난다. 높이 30m나 되는 자연석에 선각으로 새긴 마애삼존불이 있다. 양쪽으로 바위가 서있고 그 사이로 지나도록 길이 나있다. 불상의 발 부분이 되는 바위틈에서 사계절 마르지 않는 샘물이 솟아난다. 고려 초기 10~11세기에 새긴 것으로 오른쪽 불상의 높이는 무려 14m에 달한다. 절터인 이곳에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는데 주변에는 아직도 여기저기에 기와 파편이 남아있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 경사가 심한 데다 바윗길이라 중간 중간 로프를 매어둔 곳이 많다. 최근에 설치한 듯 철 구조물과 철망으로 만든 낙석방지 펜스도 지난다. 30분 정도 가파른 길을 지나고 작은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비켜 내려서면 계곡 가까이에 경운기가 드나들 정도의 넓은 길을 만난다. 미끄러워 피해 다니던 낙엽을 밟아볼 여유도 생겼다. 여름 가뭄에 아우성도, 가을 잦은 비에도 저마다의 역할을 마치고, 붉고 샛노란 빛깔로 뽐내던 단풍이 내려앉아 빛바랜 낙엽으로 수북이 쌓였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현수교 같은 다리를 건너자 오른편으로 화양구곡 중 여덟 번째인 학소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화양구곡은 17세기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정계를 은퇴한 후 이곳에 머물면서 후학을 양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우암 선생은 화양동계곡을 화양구곡으로 불렀다. 제1곡부터 차례로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이다. 여기서부터 계곡의 하류로 내려가는 포장길을 따르면 차례로 용이 누운 모습을 닮았다는 와룡암부터 구름에 걸린 바위를 닮은 능운암, 큰 바위가 첩첩이 층을 이룬 바위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첨성대 순으로 도로를 걸으면서 모두 둘러볼 수 있다. 학소대에서 주차장까지는 2.5㎞의 거리이지만 마지막으로 우암 선생 유적지까지 돌아보면 지루할 겨를 없이 주차장에 닿는다.

대구시산악협회 이사·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apeloil@hanmail.net

☞ 산행길잡이

공림사 주차장-(50분)- 낙영산 갈림길 -(20분)- 낙영산 -(15분)- 계곡 갈림길 -(30분)- 학소대 갈림길 -(10분)- 도명산 정상-(8분)- 학소대 갈림길 -(60분)- 학소대 -(30분)- 화양분소 주차장

대부분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분소에서 화양구곡을 따라 첨성대로 올랐다가 도명산 정상을 오른 뒤 학소대로 하산해 원점회귀 산행을 많이 한다. 공림사에서 올라 낙영산, 도명산을 연결해 종주를 하거나 가령산, 무영봉, 낙영산, 도명산으로 넓게 종주를 하는 코스 등 다양한 코스를 잡을 수 있다. 도명산만 한 바퀴 돌아내려오면 약 8㎞로 3시간30분 정도 소요되고, 공림사에서 낙영산, 도명산을 연결하면 약 9㎞로 4시간 남짓 소요된다. 낙영산에서 내려온 계곡과 만나는 지점에 식수가 있고, 도명산 정상 아래에 낙영사터에도 샘터가 있다.

☞ 교통

중부내륙고속도로 낙동JC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로 진행해 화서IC에서 내린다. 49번 지방도로로 화북면소재지를 지나 32번 지방도로를 따른 뒤 괴산 송면 갈림길 삼거리에서 죄회전으로 약 10㎞를 가면 공림사 입구 이정표를 만난다.

☞ 내비게이션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괴산로공림길 104(공림사)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78(화양분소)

☞ 볼거리

우암 송시열 유적지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구곡 입구에 있는 화양서원은 노론의 영수 송시열을 제향한 서원으로, 1999년 12월29일 사적 제417호로 지정되었다. 송시열이 은거하던 장소에 세워졌으며 1696년(숙종 22) 사액을 받았다. 계곡 건너편에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암서재를 비롯한 많은 유적이 있다.

낙영산 공림사

신라 경문왕 때 자정(慈淨)이 창건하였다. 자정은 국사의 지위를 사양한 뒤 그곳에 초암을 짓고 살았는데, 그의 덕을 추모한 왕이 절을 세우고 공림사라는 사액을 내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방화로 여러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보존될 수 있었다. 인조 때 다시 중창하였으며, 1688년(숙종 14) 사적비를 세웠다. 여러 번 중창하였으나 6·25전쟁 뒤 공비의 잦은 출몰로 영하문과 사적비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1981년부터 1994년까지 대대적 중창을 이어나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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