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샤이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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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19   |  발행일 2016-11-19 제23면   |  수정 2016-11-19
[토요단상] 샤이 트럼프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도널드 트럼프가 미합중국 대통령이 된 지 열흘이 지났다. 처음 트럼프가 출마를 선언했을 때, 모든 사람이 그를 우리나라 대선(大選)의 허경영 후보 정도로 여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트럼프는 동부지역 최대 경합 주인 플로리다, 오하이오, 노스캐롤라이나 등에서 모조리 승리를 거둬 미국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그가 민주당의 오랜 텃밭인 미시간에서마저 앞서자 온 세계가 ‘멘붕’ 상태에 빠졌다. 종내에는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마저 먹으면서 완승을 거뒀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대통령은 이렇게 탄생했다.

모든 여론조사가 ‘이단아’ 트럼프보다는 ‘범생이’ 클린턴의 승리를 점쳤다. 클린턴은 단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표심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는 그녀의 당선가능성을 84%로, 허핑턴포스트 등은 무려 99%까지 예상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선거기간 내내 욕을 해댔다. “나를 지지하는 숨은 표가 곳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개표 날 브렉시트의 10배에 달하는 충격을 주겠다”고도 큰소리를 쳤다. 그 말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저질 트럼프에게 차마 공개적으로 지지를 드러내지 못하는 ‘샤이 트럼프(Shy Trump)’의 유령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인들은 왜 그랬을까. 왜 탐욕스러운 부동산 재벌이자, 최소 12명 이상의 여성을 성추행한 파렴치한을 대통령으로 뽑았을까. 지난 7월 트럼프의 당선을 족집게처럼 예언했던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의 이유가 재미있다. 첫째, 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다. 둘째, 백인 남성들은 여성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셋째, 주류정치의 표본인 클린턴에 대한 반감이 엄청나다. 넷째, 실망한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벤추라 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벤추라가 누군가. 그는 1998년 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된 프로레슬러 제시 벤추라를 말한다. 공화당도 아니고, 민주당도 아닌 그의 당선은 그 자체로 기존 정치에 대한 혐오(嫌惡)를 상징한다.

무어 감독의 예언은 100% 적중했다. 미국 유권자들은 말한다. “괴물 트럼프보다 극심한 양극화와 기득권 정치가 더 지긋지긋하고 신물이 난다”고. 그래서 그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트럼프의 막말과 음담패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전략이 되었다. 공화당 경선에서는 내로라하는 후보들을 “바보 같은 놈”으로 싸잡아 매도했고, TV토론에서는 클린턴을 “추잡한 여자”로 싸질러버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농담이었고, 나중에는 악몽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번 대선은 신자유주의 30년의 종언(終焉)을 고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트럼프의 당선이 우리나라에 주는 득과 실은 어떨까. “북한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겠다”는 이가 미국 대통령이 됐으니 지금쯤 난리가 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난리가 나기는 났다. 최순실 때문에 이미 난리가 나버려 트럼프는 아예 뒷전이다. 정부가 넋을 잃고 있으면 다른 누구라도 나서서 대책을 세워야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기라도 할 것 아닌가. 예를 들어, 지금까지 미국의 확실성이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사업가적 기질을 가진 트럼프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낫다는 분석이 있다. 그 반대로 트럼프 공약 가운데 미 국내문제나 중국을 겨냥한 통상의제(通商議題)는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실천이 만만한 한국에 집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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