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비슬산둘레길의 핫플레이스’ 달성 화원 마비정∼송해공원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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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5   |  발행일 2016-11-25 제38면   |  수정 2016-11-25
화려한 채색에 色 잃은 벽화마을…“이러려고 공공미술프로젝트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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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내천 인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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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리임도 억새길

문화부 프로젝트로 名所된 마비정마을
담·벽마다 옛 농촌풍경으로 갤러리화
유수한 賞에도 마을 고유성 훼손 문제

겨울로 가는 가을나그네 모드 본리임도
정상까지 1시간 가쁜 페달질에 소금땀
기내미재 자전거쉼터 ‘숨은 대구십경’


박근혜 대통령의 뿌리 달성군에는 그 큰 면적만큼이나 많은 임도가 조성되어 있다. 임도는 원래 임산물의 수송이나 산림의 관리를 위해 조성한 도로인데, 평소엔 어느 곳에서나 자전거도로로 애용된다. 산불을 빨리 끄기 위한 진화 차량 진입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임도는 최고의 자전거전용주행로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용도전용은 상상하기 힘들다. 임업가들의 경영 개선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산림 관리를 위한 임도 건설이 비슬산 산림 생태계 파괴의 주범 노릇을 하고 있는 실정은 매우 유감스럽다.

지난 19일 토요일 동성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대구 3차 비상시국대회는 대구에 온 이래 가장 많은 시민이 평화로운 시위를 하는 광경이었다. 어느 여당 의원이 바람에 꺼지는 촛불이라고 조롱하니 바람에 꺼지지 않는 LED 촛불을 사들고 모였다. 1946년 10월항쟁 때 약 1만5천명의 군중이 대구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벌인 이래, 가장 많은 군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하야 하야’를 외쳤다. 살다 보니 대구에서 2만5천명이 시위를 하는 신천지 새누리가 열릴 줄이야!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태운다. 민심이 응축된 촛불은 들불처럼 번져 횃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의혹을 갖고 상상한 모든 것들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게이트 정국, 촛불의 염원을 담아 비슬산둘레길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화원읍 본리2리의 마비정과 옥포면 기세리의 송해공원을 둘러보고 싶었다.

대곡역에서 자전거를 내려서 본리2리 마비정으로 가기 위해 인흥서원 방향으로 정했다. 무심코 가다 보니 서른에 유명을 달리한 특급 사진기 수리기술자 고(故) 김성민이 살던 청구아파트 앞을 스치게 되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애써 씨를 뿌리고 수확하지 못한 황금 들녘을 눈앞에 두고 떠난 그 인생들을 묵상하곤 한다. 문득 고장난 사진기를 수리해서 사용하게 해준 그가 떠오른 까닭은 고장난 과거를 말끔하게 고쳐 주는 역사 수리사가 없기 때문일까.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혁신이란 신제품을 새로 장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몸의 일부가 된 익숙한 낡은 것들을 고쳐 쓰는 것이다. 손에 익은 낡은 카메라, 빈티지 자전거처럼 자유자재로 쓸 수만 있다면 구닥다리를 고쳐 쓴들 어떠리. 마치 지름신이 강림한 것 같은 졸속은 아서라.

대곡역에서 마비정으로 가려면 1㎞ 거리 비슬산 쪽으로 고속주행하는 찻길인 테크노폴리스로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가야 한다. 길가로 늘어선 벼논과 각종 농원들은 전형적인 도심 밖 농촌의 풍경을 하고 있다. 남평문씨 세거지와 인흥서원 사이로 흐르는 천내천 개울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그냥 갈 수 없어 명화를 기대하며 포토바이킹을 했다. 찍고 보니 머릿속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명작은 디테일에 달려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남평문씨 세거지를 지나갈 때면 “(광거당 옆) 툇마루에는 수석과 묵은 이끼, 연못이 있는 집이란 뜻의 ‘수석노태지관’(壽石老笞池館)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집주인은 추사체라고 했지만 건축연대와 추사의 생존연대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쓴 어느 여행기자의 글을 떠올린다. 문화답사기행에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하는데, 까막눈 민중에겐 몰라도 알게 되는 생득지(生得知)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생의 축복인가!

본리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작가와 커피’는 지나칠 때마다 한 모금을 자극하지만 갈 길 급한 저속의 자전거는 멈출 줄을 모른다. 카페 외경과 설치미술품을 주마간산식으로 눈요기하면서 줄달음을 친다. 마비정으로 가는 길가 옆으론 미나리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즐비했다. 100일만 있으면 2017년산 미나리삼겹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말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달성군 화원읍 본리2리 마비정마을은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공공미술프로젝트에 선정되어 1960~70년대의 정겨운 농촌의 풍경을 마을의 토담과 벽담을 활용하여 벽화갤러리로 변화시켰다. 마비정벽화마을이 인기를 얻은 것은 사람들이 현실 생활에서 보고자 하는 것을 그림 속에서 구현해 놓아서일까. 이후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촬영지로 활용돼 전국적인 관광명소라는 성과를 냈다. 자연인의 눈엔 시골마을이 자신의 고유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문화부 자금에 의해 관제마을로 털갈이해 버린 끔찍한 사건으로 보인다.

만들어진 벽화마을에는 미술품만 있고 미술가가 없다. 그래서 슬프다. 많은 사람이 찾아 유수한 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으나, 과잉 채색 논란과 고유마을 지우기라는 비판을 면하긴 어려울 것이다. 문화부의 많은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근본 원인이다.

방천시장 김광석 벽화길에서 발견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문화적으로 도시재생을 하고 있는 방방곡곡에서 발병하는 원인 역시 상업화에 골몰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문화부가 심혈을 기울인 문화예술 프로젝트는 공간의 상업화와 지주의 자본축적에 이용당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문화공간의 확장전략은 종국적으로는 생활공간을 상업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문화담론과 다름 없다. 이러다 보니 작가들은 “내가 이러려고 문화예술을 하나”라는 자괴감을 입에 달고 살게 된다.

나의 살던 정든 전월세 집들은 살림집이 아니라 대부분 장삿집들로 변해 있다. 문화예술프로젝트라면 이 흐름을 끊는 것이라야 한다. 이 기조는 여야의 정권교체 여부와도 상관없는 정책 패러다임인지라 시급히 수술대에 올려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싸구려 그림 벽화 프로젝트로 관광지가 되는 비결은 문화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한국관광공사를 비롯한 관계기관망에서 SNS로 글소문을 내주는 지원 시스템이 가동되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지역주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증진하기 위해 마을의 지리, 역사, 자연, 환경적 특성을 테마로 생활공간을 공공미술로 꾸미는 사업’이다. 그런데 마비정은 벽화 때문에 마을 고유성을 훼손한 것으로 보였다. 마을로 들어가는 논둑길 하나만 잘 가꾸고 꾸몄어도 대구의 오지마을로도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비정은 상업적 성공과 문화적 실패가 공존하는 문화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학습장으로 창조경제 이룩했으면 좋겠다.

문화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문화적 상업주의의 온상이라는 데 눈을 뜨게 해준 마비정마을에서 본리임도가 있는 본리지를 알리는 이정표는 아직도 마련되지 않았다. 임도를 이용하는 입산객들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는 생각 한 편에, 칠곡군청이 임도의 산악자전거길 노선도를 게시해서 접근성을 높이는 것과 비교되었다.

자주 오지 못하는 본리임도는 올 때마다 새롭고 안온하다. 초입을 잘못 들어서도 당황스럽지 않다. 자전거 타는 인간을 위한 배려가 없어 순간 불편을 겪어도 우리는 그 길을 찾는다. 임도 주변 산자락은 겨울로 향하는 가을 나그네 모드였다. 떨어진 잎들은 형체가 망가질 정도로 밟혀서 찌글찌글했다.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페달질에 열심인 꽃중년 라이더들의 숨 가쁜 소리가 전해온다. 사우나 들어온 것 같은 소금땀을 흘려가며 10번의 코너링 끝에 오른 본리임도 정상까지는 1시간여 걸렸다.

기내미재 주차장 칠송정은 자전거 거치대로 이용되곤 하는데, 언제나 소나무 둘레에 의자를 설치할 안목을 가진 현장 공무원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선 채 휴식을 하다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산까치 포장마차 있는 기내미재 주차장 소나무 그늘 아래 자전거쉼터는 또 하나의 대구십경이 될 것이라는 ‘우주의 기운’이 느껴졌다.

기내미재는 화원읍 명곡에서 용연사로 넘어가는 산길의 고갯마루다. 화원읍 본리리와 옥포면 반송리에 걸쳐 있는 자연생태육교를 횡단하여 반송리 방향 명곡로를 타고 용연사길 따라 다운힐을 하면 반송삼거리에 이른다. 반송초등학교를 끼고 우회전해서 2㎞쯤 달리면 충주석씨 집성촌인 기세리 옥연지 일대에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자 송해옹을 기념해 만든 송해공원이 나온다. 송해옹은 이 마을 출신 석옥이씨와 결혼을 했다. 달성군은 이 지역 출신 사위의 이름을 딴 전무후무한 공원을 지었다.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유명 연예인과의 커넥션은 합법적 사전 선거운동이어서인지 남용되는 경향이 짙다. 이런 식의 명성이 기준이라면 앞으로 대구 며느리 가수 이미자, 이선희 공원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느 블로그의 글처럼 어떤 명소라도 ‘엄청 기대하고 가면 별 것 없고 큰 기대 없이 가면 꽤 볼만한 곳’일 게다. 일요일 오후 기세못 송해공원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이는 것만 보고, 보여주는 것만 보는, 보이지 않는 것은 절대로 보지 않고, 꼭 봐야만 하는 것도 시간이 없다며 보지 않는, 신기하고 화려하고 대단한 볼거리만 쫓아다니는”(이문재 ‘순례’) 관광객들로 넘쳤다. 비슬산둘레길의 달성군 핫플레이스에서 관광지를 만들려는 문체부의 탐욕이 낳은 패착을 보고 간다.

여행이 온몸으로, 관광은 두 눈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잠깐 다녀가는 관광객의 시각을 자극하는 시각디자인물들이 유행병처럼 떠도는 이유다. 차량과 관광객으로 넘치는 관광지 개발 정책을 21세기의 일처럼 추진하는 시대착오적 문화관광정책은 상업주의에 빙의된 귀태행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문화여행부로 개명해야 상업주의 정책에 대전환이 뒤따를까. 촌스러움을 기대하며 달려가 본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마비정과 옥포면 기세리 옥연지는 문화관광부 식민도시의 마을이었다. 포토바이킹은 온 몸 여행이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대곡역 ~ 인흥마을 ~ 마비정 ~ 본리임도 ~ 기내미재 주차장 ~ 용연사길 ~기세리 송해공원 옥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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