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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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8 07:50  |  수정 2016-11-28 07:50  |  발행일 2016-11-28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미역국

지난 3월, 고3 수험생 엄마가 찾아왔다. 아들은 몸과 마음이 약해 늘 아프고 불안해한다며 도와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아이가 가리는 것이 많다고 했다. 시험 치는 날은 아침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며 굶는다고 했다. 특히 참기름이 든 음식이나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 떨어진다며 절대로 그런 음식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징크스’란 그리스에서 마술에 이용되던 새 이름으로 불운을 가져오는 재수 없는 것이나 불운, 불길을 의미한다. 징크스는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고 비켜가기만 하는 머피의 법칙이나, 자신에게 유리한 일들만 생기는 샐리의 법칙과는 다르다. 자기 자신이 통제하기 어려운 우연적 상황을 극복하거나 대비하기 위해 행하는 자기 암시나 최면 등은 모두 징크스라는 그물망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개인적 차원, 또는 소속 집단 차원의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징크스는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거미줄처럼 자리 잡고 있으며,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징크스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나는 학생과 상담을 했다. 올해 수능시험을 잘 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실천해 보겠느냐고 물었다. 학생은 따라하겠다고 했다. 나는 다음 사항들을 꼭 실천해 보라고 말했다. 평소에 푹 자고, 깨어있을 때 집중하는 습관을 들이자. 아침은 반드시 먹고 가자. 수업시간에는 이해에 중점을 두며 집중해서 듣자. 이해가 안 될 경우 미루지 말고 그날 중으로 교무실에 가서 질문하자. 하루 20분 정도 맨손체조나 스트레칭을 하자. 토·일요일 중 한나절은 책을 떠나 산책이나 운동을 하라고 했다. 학생은 비교적 실천을 잘했다. 그 이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가볍게 대화를 나누며 수험생활 전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6월 모의평가 전에 학생을 불렀다. 모의고사 치는 날 미역국을 먹고 가서 시험을 쳐보라고 했다. 미역국은 소화도 잘 되고, 미역처럼 매끄럽게 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역국은 수능 고득점에 정말 도움을 주는 음식이라고 되풀이해 강조했다. 미역국을 먹고 학생은 평소보다 성적이 더 잘 나왔다. 학생은 신이 나서 시험 때마다 미역국을 먹었고, 9월 모의평가 때도 미역국을 먹었다.

수능 사흘 전에 도시락으로 뭘 가지고 가겠느냐고 묻자 미역국을 가져 가겠다고 했다. 실제 수능시험에서 최고로 잘 친 모의고사보다 성적이 더 잘 나왔다. 징크스는 심약한 인간이 스스로에게 만드는 거미줄과 같은 자기 함정이다. 새는 거미줄을 뚫고 지나가지만 파리나 모기는 걸리게 된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믿고, 자신감에 충만한 사람에게 징크스란 없다. 나는 찾아온 학생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현실이란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숙명적 불변이 아니라, 참된 인간적 용기에 의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창조적 가변이라는 말도 상기시켜 주었다. 그날 우리는 같이 미역국을 먹었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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