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질서 있는 상황정리’ 로드맵 제시할 때다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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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8   |  발행일 2016-11-28 제30면   |  수정 2016-11-28
20161128

탄핵은 헌법적 절차에 따른
대통령 거취 결정방식이나
촛불민심으로 정서적 탄핵
이제는 국론악화 막기 위해
마지막 애국심을 발휘할 때


‘3.5%의 법칙’. 역사적으로 한 국가의 인구 가운데 3.5%가 같은 목적으로 정치행동에 나서면 어떤 정부도 버틸 수 없다는 에리카 체노워스 덴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이론이다. 아울러 비폭력 시위의 경우 폭력시위보다 성공 가능성이 2배 이상 높다고 분석했다. 시위가 비폭력 방식으로 진행돼야 보다 많은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시위라는 전제가 달려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11월 기준으로 5천167만7천여명이다. 체노워스의 이론대로라면 대략 180만명 이상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박근혜정부는 버틸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지난 토요일(26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는 주최측 추산으로 체노워스의 이론을 충족시켰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서울 150만, 대구를 비롯한 지방 40만을 합쳐 전국에서 190만 국민이 촛불을 밝혔다고 주최측은 집계했다. (경찰 추산은 32만명이다) 집회는 평화적이었다. 청와대를 동, 서, 남으로 포위한 수십만명이 280개 중대 2만5천여명의 경찰병력과 대치했지만 물리적 충돌이 거의 없었다. 연행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시위라는 체노워스의 전제도 만족시켰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10월29일 열린 1차 촛불집회 때 5만명(이하 주최측 추산)으로 시작해 2차 20만명, 3차 100만명으로 급속히 늘었고,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4차 집회 때도 95만명이 모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촛불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을까. 1차부터 5차까지 청와대의 공식 반응은 사실상 없다. 익명의 관계자가 “국민들의 준엄한 목소리를 무겁게 듣겠다” “대통령은 관저에서 수시로 상황보고를 받고 있다” “수석비서관급 이상 참모들이 휴일에도 정상 출근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는 앵무새 발언만 되풀이한다. 물론 청와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을 거다. 외형적으론 ‘피의자 대통령’을 만든 검찰에 강력 반발하면서, 오늘(28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현장 검토본 발표를 강행하는 등 국정운영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박 대통령의 거취에 대해선 헌법절차에 따른 ‘탄핵’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여기엔 요행수를 바라는 기대감도 묻어 있다. 혹시라도 국회의결에서 부결돼 박근혜 대통령이 ‘면죄부’를 받지 않을지, 또는 2004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기각시켰던 헌법재판소가 보수적 결정을 내려줄지도 모른다는 환상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촛불이 국회와 헌재로도 옮아붙을 태세다. 국회 해산론, 헌재 무용론이 나올 수도 있다. 만에 하나 그런 요행이 일어나도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제대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미 떠나버린 민심을 되돌리기는커녕 새로운 혼란만 생길 게 뻔하다. 대통령이 뭘 해도 국민은 믿지 못하게 된다. 새로운 의혹들도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정호성이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한 휴대전화 녹음을 10초만 공개해도 촛불이 횃불이 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끝나도 특검이 기다린다. 국회의 국정조사 청문회엔 8개 대기업 총수와 최순실, 장시호, 정유라, 김기춘, 우병우가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돼 있다.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에선 또 얼마나 듣기조차 민망한 일들이 드러날까.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정서적 탄핵’을 당했다. 버티면 버틸수록 국민들의 화를 돋우고 국력이 떨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주에라도 다시 대국민담화를 발표해야 한다. 그 내용은 탄핵에 대한 입장 표명을 포함해‘질서 있는 상황정리’를 위한 로드맵이 돼야 한다. 마지막 애국의 길이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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