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문화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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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8   |  발행일 2016-11-28 제30면   |  수정 2016-11-28
20161128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문화판이 농락당한 것은
문화도 돈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어젠다 수용 때문
문화 진정한 가치는 조화
이젠 기본으로 돌아가자


언젠가 칼럼에서 문화의 논리는 ‘조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의 논리는 권력이고, 경제의 논리는 이익이라고도 했다. 문화의 논리가 조화라고 한 이유는 서로 다른 음높이를 가진 도, 미, 솔이 모여 화음이 되고, 서로 다른 색깔들이 모여 그림이 완성되는 원리를 의미한다. 심지어 연극이나 영화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이 있어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좋은 성격만 있어서도, 나쁜 성격만 있어서도 안된다. 좋은 성격과 나쁜 성격이 동시에 존재할 때 극적 완성도가 높아진다. 즉 서로 다른 것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문화의 논리는 조화다.

그런데 요즘 문화가, 아니 우리나라 문화판이 엉망이 되었다. 국정을 농단한 몇 사람들이 대한민국 문화정책에 개입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문화를 주물렀다는 정황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신년 업무보고 첫머리에 내걸렸던 정책 대부분이 이들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다. ‘문화창조융합벨트 고도화로 고부가가치 창출’이라는 제목하에 대기업과 함께 추진되던 케이 컬처 밸리, 케이 익스페리언스가 대표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 조 단위가 넘는 사업이다. 서울 문화판에 떠도는 소문은 지방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왜 이렇게 되었나. 왜 그들은 문화판을 집중적으로 노렸고, 또 문화판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는가? 하기야 문체부에서만 잔뼈가 굵은 정통 관료 출신인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조차 그렇게 비참하게 해임 통보를 받지 않았던가? 지난 몇 년 사이에 멀쩡한 문화 관련 단체장들이 이유도 모르고 계약 해지되고, 도통 연관성이 없는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취임하는 상황을 목도해왔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만큼 문화판이 허약하고 취약하며, 문화란 그런 존재에 불과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단순히 몇몇 국정을 농단한 사람들과 위정자의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문화도 돈이 될 수 있다’라는 잘못된 어젠다를 수용한 것이다. 즉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기에 문화를 기반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논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2016년 문체부 신년 업무보고에서도 ‘문화의 산업화, 산업의 문화화’라는 구호가 창궐했다. 이는 한류를 통한 일부 분야에 한정된 것임에도, 마치 문화 분야 전반이 그런 것처럼 오해하였다. 그래서 국정지표로 내건 문화융성은 문화예술의 융성이 아닌, 문화의 경제화로 나아갔고, 그 문화경제 건설판에 문화 사기꾼들이 끼어든 것이다.

이제라도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화의 진정한 가치는 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을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하는 정신이다. 이는 음악에서 서로 다른 음높이를 묶어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내듯,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타협하도록 하고, 경제적으로 이익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서로 나누게 하는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문화융성은 바로 그런 문화적 사고체계의 확산이 되어야 하고, 문화적 행동철학의 보편화를 지향해야 한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른 것은 다를 뿐이다. 문화는 이것을 조화롭게 묶어준다. 그러나 정치는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하고, 경제는 쓸데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치는 다르다는 이유로 늘 싸우고, 경제는 다르다는 이유로 함부로 버린다. 물론 틀린 것에 대해서는 틀렸다고 용감하게 말해야 하지만, 다른 것에 대해서는 왜 다른지를 이해하고, 함께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문화적 사고체계이고 문화적 행동철학이다.

요즘처럼 혼란한 시대 상황일수록 그런 문화적 태도가 필요하다. 아무리 그들이 문화판을 농단하였다 해도 지금 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도 문화의 논리이고, 또 앞으로의 미래도 문화의 논리로 열어야 한다. 결코 정치나 경제의 논리가 아니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문화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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