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특별시’ 달서구를 가다] <상> 예로부터 살기 좋은 땅 입증

  • 이창남
  • |
  • 입력 2016-11-30 07:46  |  수정 2016-11-30 09:12  |  발행일 2016-11-30 제11면
2만4천년 前 구석기시대부터 ‘삶의 터전’
20161130
대구 달서구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중앙에 자리한 청동기시대 입석의 모습.

바야흐로 ‘도시 마케팅 시대’다. 도시에 산재한 유무형의 자원을 활용, 관광과 지역경제에 접목해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대구 달서구 역시 이 같은 트렌드에 동참하고 있다. 달서구에선 그동안 5개 입석을 포함해 70곳이 넘는 선사유적과 200기에 가까운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발견됐다. 대도시에 이처럼 넓은 면적에서 다량의 유적이 발견된 것은 국내에서도 드물다. 특히 다수의 밀집된 주거지가 발견된 것은 달서구지역이 오늘날처럼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달서구가 품은 선사유적의 발자취를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입석 등 곳곳에 선사시대 흔적
비옥한 선상지형…최적 거주지
인구 61만여명 “전국 區중 2위”
도심서 선사시대 투어도 즐겨



지난 25일 오전 대구 달서구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월배로에서 공원 입구까지 100m에 이르는 이 도로는 ‘선사시대로’라고 불린다. 이곳을 출발점으로 달서구는 대구의 시초이자 뿌리, 출발점인 것이다. 2005년 지금의 월성동(777-2)에서 긁개와 새기개, 좀돌날 등 돌 도구들이 다량 출토된 것도 대구의 역사가 달서구를 시작으로 2만4천년 전 구석기 시대부터 이뤄졌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공원 입구로 들어서자 높이 2.1m 폭 1.15m 규모의 입석이 한눈에 보였다. 입석 표면에 새겨진 무늬가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벽면엔 6개의 성혈과 동심원이 그려져 있다. 원은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로 당시 달서구 땅에 거주한 사람들의 미(美) 의식과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홈 구멍 모양의 성혈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다.

진천동을 따라 흐르는 진천천(川)은 낙동강 중류로 흘러 더 큰 물길이 된다. 진천동 등 월배지역은 예로부터 선상지 지형을 이뤄 사람이 살기 비옥한 충적지였다. 따뜻한 기후에 홍수범람과 가뭄 등 자연재해가 없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같다. 이 같은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달서구지역은 우리 선조들의 터전이 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달서구엔 61만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국내에선 서울 송파구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하고 정착하려는 특유의 DNA를 품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엔 월배선상지 아래에 위치한 대천동과 월암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진천동이 태곳적 달서구의 시작이라면 월암동은 당시 선조들이 살았던 선상지의 끝이자 경계를 이룬다. 월암동 선돌공원에 가면 높이 2.4m 너비 0.8m의 입석이 있다. 달서구지역 전체 입석 5기 중 하나다. 입석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낙동강과 금호강을 만난다.

선돌공원은 선사유적공원과 함께 선사시대 관광 투어 코스 가운데 하나다. 선돌공원에서 300m 가량 떨어진 대천동 한샘공원은 선사시대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대단지 아파트에 둘러싸였지만 공원엔 300년 넘은 회화나무를 비롯해 석관묘 69기, 주거지 31기 등 다수의 선사유적이 발견됐다. 달서구는 이 공원에 4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선사시대 체험관을 짓는다. 체험관은 선사시대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양한 체험거리를 담는다.

글·사진=이창남기자 argus61@yeongnam.com
공동 기획 : 새롭게 도약하는 희망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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