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촛불의 역사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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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1   |  발행일 2016-12-01 제35면   |  수정 2016-12-01
[영남타워] 촛불의 역사

‘촛불의 역사’가 어떻게 마무리될까. 지금 대한민국은 촛불 열기로 뜨겁다. 지난 주말 전국적으로 190만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촛불이 요구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하나다.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다. 국민들은 박 대통령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명령하고 있다. 더 이상 권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뜻이다. 국민들은 그렇게 명령할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촛불을 든 국민들은 다양했다. 다양한 연령과 계층이 하나로 뭉쳤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도 많았다.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도 촛불을 들고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하야만사성’이라는 팻말을 든 학생도 눈에 띄었다. 기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해석도 친절하게 달아놓았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촛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힘이 없어’ 체념하며 받아들였던 사회의 부조리가 쏟아져 나왔다. 정치권과 관료, 검찰, 재벌에 대한 날선 비판들이었다. 국민들은 각자 희망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촛불 광장 입구 게시판에 빼곡히 적어놓았다. 특히 부모들은 이런 나라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염원을 담았다. 촛불 민심을 요약하면 원칙과 정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또 반칙과 특권이 없는 나라를 보겠다는 것이다.

서글픈 것은 대통령의 인식이다. 국민들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읽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정말 수준 이하다. 세 차례나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지만, 촛불 민심에 불만 지르고 있다. 죄송하다고 하는데 잘못한 것은 없단다. 국민들의 성격을 시험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 지경이다. 스스로 한 약속도 깼다.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고 했지만, 끝내 검찰의 대면조사 요구를 거부했다. 한때 약속과 신뢰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것을 감안하면 ‘부끄럽다’. 박 대통령의 실체를 제대로 살필 생각도 하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들였던 게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이 과거 했던 발언도 부메랑이 되고 있다. ‘나쁜 대통령’이나 ‘우리 정치의 수치’라는 표현이 고스란히 박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대통령의 말은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회가 정한 일정과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라는 애매모호한 발언은 더욱 그렇다. 당장 여권내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야권의 해석이 제각각이다. 박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검찰 조사도 거부하고, 취재진의 질문도 받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담보로 청와대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촛불의 역사는 진행형이다. ‘국민들의 승리’로 기록될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앙시앵 레짐(구체제)’이 순순히 권력을 내놓을 리 만무하다. 예전처럼 총칼로 국민들을 억압하기는 힘들겠지만, 교묘하게 속일 수는 있다. 촛불 대열을 흩뜨리는 작업을 꾸준히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촛불은 이제 단순히 박 대통령의 책임만을 묻지 않는다.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로 촉발된 정치권과 재벌, 관료, 검찰, 언론 등 ‘내부자들’의 문제를 정조준하고 있다. 촛불의 역사는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특검과 국정조사가 본격화된다. 대통령 탄핵 여부도 결정된다. 국민들이 원하는 원칙과 정의, 상식이라는 ‘눈높이’에 맞춰져야 한다. 역사는 권력자들의 기록처럼 보이지만, 흐름을 바꾸는 거대한 물줄기는 언제나 국민들이었다. 촛불의 역사가 또 한 번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조진범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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