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정크 아티스트’ 임종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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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2   |  발행일 2016-12-02 제35면   |  수정 2016-12-02
그의 손을 거치면 고물은 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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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못지 않은 글 감각을 가진 그가 ‘사는게꽃같네’란 문구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바로 옆에 그가 만든 생각하는 깡통인간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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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물건을 예술적으로 변용시켜 실내 곳곳에 작품처럼 세팅해 놓은 달성 화원읍 ‘작가와 커피’ 내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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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면서 쓰레기를 보석으로 만들 궁리만 하는 정크 아티스트 임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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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 입구 왼쪽에 부착된 임종씨의 1호 설치미술인 케첩팩 시리즈.

그의 표정을 한 단어로 줄이자면. 맨 먼저 떠오르는 건 ‘난감(難堪)’이다. 해석 불가한 그의 동선 탓이다그 난감함 속엔 불량스러움도 섞여 있다. 길거리에서 방금 주워 입은 옷 같은 빈티지스러운 차림도 그렇거니와 일정한 간격으로 쏴대는 웃음도 상대방을 쉽게 무장해제시켜 버린다. 손님과 주인의 관계를 거북스럽게 여긴다. 그냥 선후배, 형동생 같은 관계를 만든다. 재밌고 쿨하고 앙금도 없다. 그래서 곁에 사람이 많이 몰려든다.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화원휴양림 초입의 명물 커피숍 하나. ‘작가와 커피’다. ‘작가’란 정크아티스트 임종씨를 지칭한다. 그는 그 가게의 사장이다. 새것이 너무 부담스럽고 헌것에서 평화를 느낀단다. 대한민국을 ‘재활용공화국’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 사내. 뒷골목 포스터도 의미 있어 보이면 일단 떼온다. 가게 곳곳에 그런 못 쓰는 물건이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대기 중이다. 이웃들에게 그런 그는 ‘참 희한한 사람’으로 통한다. 가게를 열어 돈을 벌자는 건지 노는 건지 분간이 안 가기 때문이다. 몇 년째 하절기만 되면 화원휴양림 숲 속에 스크린을 걸고 숲 속의 영화감상 이벤트를 주도한다.

홍대서 미술전공후 10여년 전 대구로
연고 없이 막노동·행상 등 고단한 나날
경주엑스포 캐릭터 등 제작사 운영·부도
조형물업체로 재기 土公앞 커피잔 제작
호미곶 ‘상생의 손’ 공동작업에도 참여

문득 ‘내 예술을 하고 싶다’욕망 불끈
2012년 ‘가치 재발견’ 정크아트 시작
깡통인간 이어 헌책 시리즈 활동 활발
직접 운영중인 커피숍도 흡사 갤러리
제주 억새밭 국내 첫 ‘첼로 버스킹’꿈꿔


◆쓰레기도 작품으로 피어난다

‘사는 게 꽃 같네!’ 가게 앞에 현판처럼 붙여진 글씨 한 자락. 간판보다 눈에 더 확 띈다. 다들 이 풍자적인 카피라이트에 훅 갔다. 이 가게에 처음 온 이들은 이 문구를 사이에 놓고 지인들과 키득댄다. ‘꽃’이란 단어가 주는 다의적 뉘앙스를 즐기는 것이다.

그는 언어감각이 탁월하다. 카피라이터 못지않다. 이 가게에서 처음 피워 올린 시적 카피는 ‘사랑이 올까요?’다. 갑자기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즉시 대학노트를 한 장 죽 찢어 연필로 적어 화장실 같은 데 붙여둔다. 지금도 화장실에 가면 ‘향기 나는 걸 보는 당신이 피었나 봅니다’란 글이 적혀 있다. ‘한발 더 가까이’란 표현보다 더 고급스럽다. 그는 용변을 보는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게 무려 10개의 두루마리 화장지를 곳곳에 걸어놓았다. 그것도 그의 작품이다. 그래서 화장실이 재밌고 흥겹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왼쪽 벽에 앙증맞은 크기의 작품 하나가 부착돼 있다. A4 복사지 중앙에 부착해 놓은 승차권 크기만 한 케첩팩이다. 맨 아래에 보일락 말락 한 크기로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를 적어놓았다. 대다수 이 작품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몇몇 사람이 공감해주면 그는 ‘요게 사는 맛’이라 여긴다.

◆한때 무일푼의 홍대 조소과 출신

그는 서울 휘문고를 나와 88학번으로 홍대 조소과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 전대협의 시대정신에 동참하기 위해 걸개그림 등 민중미술 운동에 관여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법대를 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가려니 당연히 부모에게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독립을 위해 생업전선에 나선다. 막노동은 일상이었다. 편의점에서 알바하고 독서실에서 토막잠을 잤다.

서른 즈음, 별다른 예술적 전리품도 없이 대구로 온다. 고향은 아니지만 적잖은 지인만 믿고 무작정 진을 쳤다. 달성공원 옆 비산동 쪽방촌의 한 허름한 건물 지하실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사글세조차 후불로 주기로 하고.

“생계라는 절벽 앞에 서면 누구나 숭고해 보이죠.”

리어카를 개조해 버터오징어구이 행상을 했다. 동성로의 텃세가 워낙 심해 노선을 바꾼다. 수성구 만촌동 우방아파트 건설 현장 목수 파트에서 막노동을 했다. 거기서 목돈을 좀 벌었다. ‘닮은꼴’이란 캐릭터 전문 제작회사를 차린다. 영진전문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들과 손을 잡고 대구시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패셔니’, 2000년 시작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캐릭터 등을 만들어 나름대로 감각파 디자인업체란 평을 받게 된다. 보람은 있었지만 예술적 열정이 더 많은 탓에 사업은 ‘꽝’이었다. 결국 부도를 맞게 된다. 자기만 믿고 뛰어가던 11명의 젊은 직원도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된다. 1년 정도 화병이 났다.

“대구의 문화예술계는 이상하게 행정이 예술을 압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했는데….”

불면의 나날이었다. 치료제는 일밖에 없었다. 목욕탕에서 남의 등도 밀어줘보고 우유도 배달해보고 전단도 붙여봤다. 다시 재기의 사업을 시작했다. 경산 영대 앞에 ‘아트웰’이란 조형물 제작 업체를 세웠다. 이때 태어난 작품이 토지공사 건물 앞에 포개진 커피잔 조형물이다. 포항 호미곶의 명물 ‘상생의 손’ 공동작업에도 참여했다.

“어느 날 문득 지난날을 되돌아봤습니다. 쟁이의 습성이겠죠. 돈에서 잠시 벗어나 내 예술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정크 아티스트로 변신

사업의 세계에서 잠시 내려왔다. 그리고 2012년 정크 아티스트가 되었다. 쓰레기 속에서 자연의 진수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쓰레기는 한때 산업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주는 상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용도폐기된 거죠. 기사회생, 거기에 새로운 상상을 불어넣는 것, 그게 정크 아티스트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화원읍에 있는 고물상부터 모조리 뒤지기 시작한다. 자연 그의 출근처는 쓰레기 더미였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생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 고물상이었다. 그는 그 고물상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낭비·소비적으로 살고 있는가를 절감한다. 그가 2013년 1차적으로 완성한 작품은 깡통으로 만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일명 ‘깡통인간’ 시리즈였다. 고물상에서 발견한 각종 크기의 깡통을 미학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머리와 몸통, 사지 부위에 딱 어울릴 만한 깡통을 찾아냈다.

첫째 깡통인간은 대구수목원 앞 한 상가 인도에 설치했다. 달서구청이 그에게 요청을 해서 한 달 넘게 걸려 만든 것이다.

“대구수목원은 원래 쓰레기 하치장 자리였잖아요. 그러니 저 수목원도 정크아트 작품이겠죠. 그런 수목원 옆에는 재활용 인조인간인 깡통인간이 제격이라 생각했죠.”

둘째 깡통인간은 현재 커피숍 입구에 전시돼 있다. 모두 20개의 각종 깡통을 결합한 것이다. 머리 부위는 자동차 오일통, 몸통은 말통짜리 식용유통, 팔 부위 등은 프루트캔, 단팥캔, 케첩통 등을 이용했다. 얼굴에 표정을 주기 위해 특정 부위에 불을 가하고 구멍을 뚫고 구부리고 용접 등을 했다.

“정크 아티스트는 이미 굳어져 버린 쓰레기의 이미지를 새롭게 부활시켜주는 겁니다. 쓰레기의 예술적 변용이죠. 뭐랄까, 그건 20세기 초 변기를 ‘샘’으로 본 현대미술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마르셀 뒤샹처럼 역발상의 미학을 추구하는 거죠.”

◆헌책으로 만든 탑

커피숍 앞 깡통인간 옆에는 회오리 모양의 ‘책탑’이 보인다. 깡통인간 시리즈 다음으로 택한 헌책 시리즈다. 수학의 정석, 현대문학전집, 버려진 각종 사전 등을 탑처럼 쌓고 그 복판에 심을 박아 결합시켜 맨 위에 전구 같은 것도 부착해 본다. 한 유치원에는 동화책을 공룡알처럼 만들어 설치해놓기도 했다.

“상당수 책은 버려집니다. 읽고 나선 다 버려지죠. 그냥 버려져선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헌책으로 더 새로운 뭔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비록 책은 버려져도 책 안에 있는 삶의 지혜 등은 가슴속에 간직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커피숍 곳곳을 둘러봤다. 들어오면서 무심결에 대충 봤던 그의 작품이 비로소 하나같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주워 온 샤워기를 이용한 스탠드용 조명등, 오래된 한옥에서 뜯어낸 창호로 액자를 만들고 창살로 바텐더 앞면을 치장했다. 고택 문짝을 장롱 등으로 재구성했다. 커피숍의 조명등은 모두 재활용이다. 새것처럼 보이는 탁자도 모두 폐선박의 나무를 집성해서 페인팅한 것이다. 그를 만나면 흙덩이도 금덩이로 둔갑한다. 그래서인지 지인들 역시 재활용 정신이 남다르다. 개업 축하의 의미로 벽면에 미국의 기타리스트인 지미 핸드릭스를 벽화로 그려주었다. 또 한 후배는 버려진 송판을 캔버스 삼아 담배 피우는 밥 말리(자메이카 출신의 세계적 뮤지션) 초상화를 액자로 걸어주었다.

◆첼로 들고만 있는 버스커 생활도 꿈

어느 날 제주도로 갔을 때였다. 해변에 떠내려 온 쓰레기를 보는 순간 또 한 세상이 보였다.

“제주도의 쓰레기 양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화원읍내 쓰레기는 제 주변인이 버린 것이죠. 그런데 제주도의 경우 국내는 물론 일본 쓰레기도 많습니다. 한·일 쓰레기의 미팅장소가 제주도입니다. 제주도의 이국 쓰레기에 더 애착이 가더군요. 이국의 쓰레기가 상상의 날개를 더 높게, 넓고 깊게 펼쳐주는 것 같아요.”

그는 바다에서 주운 폐목으로 우도에 있는 카페 ‘바다정원’을 꾸며줬다. 그는 앞으로의 정치도 환경 살리기에 초점을 맞춰야 된다고 믿는다.

“자유민주주의보다 환경민주주의가 더 소중해질 날이 도래했습니다. 다들 너무 많이 낭비해요. 새것에 미쳐있어요. 다녀보면 가구, 소파 등 사용해도 될 만한 멀쩡한 물건이 골목 곳곳에 쌓여만 가고 있습니다. 저는 새것보다 헌것에 더 밝은 미래가 있다고 봐요. 새로운 물건을 하나 산다는 건 그만큼 환경이 피폐해진다는 증거잖아요.”

요즘 그에게는 특강 요청이 잦다. 초·중·고교생에게 재활용을 이용한 정크아트 실례를 체험교육식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는 어른보다 청소년에게 더 믿음을 갖는다. 교육 효과가 더 있기 때문이다. 가게의 작품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를 만나면 ‘리디자인(Redesign)의 미학’에 대해 눈높이 대화도 나눈다. 그에게 커피숍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상업공간이 아니다. 작품을 구상하는 작업실, 이웃과 환경의 소중함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문화사랑방, 작품을 상시로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다. 단순한 휴게공간이 아니고 재창조의 공간이다. 그래서 이 커피숍의 손님은 관객이다.

그가 일어나 화장실 입구에 있는 2016년 버전의 낙엽으로 만든 하트를 다시 맵시 있게 정리해준다. 도로변에 뒹굴던 죽은 이파리들이 그를 만나 ‘잉걸불’로 환생한 것 같았다. 그는 요즘 첼로를 배우고 있다. 연주가 아니라 버스킹 때문이다. 첼로만 들고 제주도 억새밭 한가운데를 배경으로 앉아 있기만 하는 국내 첫 ‘첼로 버스킹’을 꿈꾸고 있다.

이 사내의 ‘집시의 나날’은 도대체 어디까지 굽이쳐갈까?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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