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강원도 인제군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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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2   |  발행일 2016-12-02 제37면   |  수정 2016-12-02
순백 자작나무숲 노란 단풍 향연에 삭풍도 멈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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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단풍이 간간이 물든 신비의 하얀 자작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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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에 있는 하늘만지기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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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신비의 자작나무 숲길과 여행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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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코스에 있는 수려한 소나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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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 체험장에 있는 원추형 자작나무 움집.

자욱한 안개 속을 달려 왔다. 낙동강과 홍천강이 안개 속으로 흐르는 것을 보았다.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앞에 섰을 때, 나는 가을 안개에 흠뻑 담아 온 나의 하얀 감정을 털어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멍하니 서서 하얀 자작나무 숲을 응시하니, 그것은 무엇을 헛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무가 이럴 수 있는가. 하얀 수피를 입고 미끈미끈하게 곧게 자란 자작나무 군락은 자욱한 안개처럼 몽환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느릿하게 자작나무 숲 1코스로 걸어간다. 이미 떨어지기 시작한 노란 자작나무 단풍은 나비 떼처럼 나무사이로 날아다니고, 미처 낙엽이 되지 못한 자작나무 잎은 앙증맞게 매달려 새로운 부화를 꿈꾼다. 자작나무 수피 벗김 피해 나무를 본다. 자작나무 흰 수피에 사랑의 편지를 적어 띄우면 그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벗겨간 자국이다. 이런 소문이 나돌자 자작나무 수피가 수난을 당하고 지금은 수피 벗김을 금하고 있다.

간벌된 자작나무로 만든 전망대에 선다. 사방이 하얀 자작나무 숲으로, 순간 생각이 멈춘다. 황홀하다고 해야 할까, 멍해진다고 해야 할까. 남쪽인 대구에서 살아온 나에게 매섭고 추운 북풍이 우는 곳에서 군락을 이룬다는 자작나무 숲은 왠지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등장한다. 저 눈부신 흰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하늘나라까지 갈 수 있겠다. 그래서 경주 천마총의 천마를 자작나무 껍질에 그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영성이 자작나무에 접목이 되는 거라고, 나름으로 헤아린다. 잠시 앉아 상념에 잠긴다. 노란 잎들이 바람을 타고 난다. 저 나비를 잡아서 표본하면, 우리의 허둥대는 시간이 멈출 수 있을까.

자욱한 안개처럼 몽환적인 자작 군락
나비떼처럼 날아다니는 그 잎도 황홀

2코스 소나무 길 끝나면 다시 자작 숲
하늘만지기 데크선 하늘까지 닿는 손
69만주 우듬지와 함께 소리없는 아우성

◆자작나무 숲과 나의 성찰

무언가가 내 몸으로 들어온다. 저렇게 하늘과 빛과 교신하는 자작나무의 신비가 내 안을 그득하게 채운다. 저 자작나무 숲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우주나무이기도 하지만 나와 나의 꿈을 이어주는 꿈나무이기도 하다. 꿈은 내 속에 잠수하고 있는 가장 큰 에너지를 끌어내는 마중물이다. 내 속의 에너지는 무한하고 영원하다. 나는 태초 이전의 말씀부터 마지막 그날의 말씀까지, 알파와 오메가까지, 한 판에 담고 있는 영적 유기체다. 그리고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의 존재다. 나는 저 자작나무숲에서 빛과 시간의 순간성과 영원성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마치 큰 둑이 터지듯이 알지 못할 환희가 분출하여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른다. 고즈넉한 휴식을 마치고, 2코스로 걷는다.

자작나무숲 길은 샤먼의 경배처럼, 종교적이다. 나는 온 우주의 빛과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 된다. 쉼터가 나온다. 짝을 이룬 연인들이 ‘닥터 지바고’의 영상처럼 순결하게 모여 있다. 자작나무 숲의 동화를 다 읽기도 전에, 2코스 소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원대봉 못 미쳐 9분 능선 아래로 연결되는 산길도 꿈길이었다. 등피 불 들고 깜깜한 밤중에 돌아온 흰옷의 남편을 맞이하는 흰옷의 아낙네처럼, 자작나무의 흰 핏줄을 숨기고 살아가는 백의 민족. 자작나무와 소나무는 민족의 나무다. 소나무길이 끝나면서 다시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 하늘만지기 데크가 있다. 올라서서 하늘을 만져본다. 하늘을 만지는 것은 자신 속에 있는 신성을 만지는 것이다. 만져지지 않는 허공에는 나의 모든 것이 있다. 1코스와 재합류한다. 138㏊에 자작나무 69만주, 그중 25㏊가 유아 숲 체험원인데, 인디언 천막을 닮은 원추형 움집 두개와 숲 체험 교실이 있다. 이제 3코스로 내려가 자작나무숲을 걷는다.

◆자작나무의 용도와 전설

어느 날 하늘의 천사가 내려다보니, 차디찬 겨울 산에 꽁꽁 얼면서 서 있는 자작나무가 불쌍하여, 자신의 흰 날개로 나무의 등걸을 칭칭 동여매어 흰 수피를 가지게 되었다는 동화가 아싹하게 즐겁다.

자작나무는 인류의 등불이기도 했다. 옛적에는 기름이 많은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사용했다. 자작나무 껍질은 물이 묻어도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많이 사용한다.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자작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결혼식을 흔히 화촉을 밝힌다고 하는데, 그 화촉으로 자작나무 껍질을 사용했다. 자작나무 껍질은 종이 역할도 했다고 한다. 또 자작나무 껍질을 태운 숯으로 가죽을 염색하거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도구나 물감 염료 등을 파는 가게를 화피전이라 불렀다. 산삼을 캐면 자작나무 껍질로 싸서 보관했다고 한다. 그 숲속의 귀족 자작나무가 온갖 생활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에 이율배반을 느낀다.

이렇게 유용한 자작나무가 더 유명하게 된 것은 자일리톨 껌 때문이다. 1976년부터 산림청에서 자작나무를 심기 시작한 첫째 이유가 껌생산의 재료로 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사랑의 체험 숲이 되었다. 이제 마지막 코스인 3코스를 걸으며, 자작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빛의 줄기에서 우주를 건너온 여행자의 마지막 아름다움을 본다.

나무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높이 자란 자작나무 우듬지의 흔들거림을 보면, 하늘까지 닿아 있는 숲의 손짓을 본다. 이제 곧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마저 털어 버리면, 가녀린 흰 목덜미로 서서 흰 눈과 겨울을 기다릴 저 자작나무의 애틋함이 가슴에 서리처럼 내린다.

아무 하는 것 없이 숨 가쁘게 달려온 날, 나는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체험한 나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툰드라에서 살고 있는 순록의 뿔에서 자라는 달과 나를 본다. 긴 생머리 위에 자작나무 숲을 이고 가는 앞 여행객의 웃음소리를 듣고 나는 겨우 나의 꿈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었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 트레킹은 나 자신의 이중성을 풀로 붙인 휑한 흰빛의 시간이었다. 글=김찬일<시인·대구문협 이사>

사진=김석<대우모두투어 이사> kc12taegu@hanmail.net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 주차장-원정임도(3.2㎞)-속삭이는 자작나무숲 입간판 1코스(0.9㎞)-치유코스 2코스(1.5㎞)-탐험코스 3코스(1.1㎞)-원대임도(2.7㎞)-주차장 (총 약 10.4 ㎞, 4시간30분 소요)

▶문의: 북부지방 삼림청 인제 국유림 관리소 (033)460-8036

▶내비게이션 주소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산 75-22

▶주위 볼거리: 내린천 래프팅, 곰배령, 스캐드 다이빙, 백담사, 대승폭포, 박인환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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