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눈물’에 더 끓어오른 서문시장 민심

  • 최수경,김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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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3 07:45  |  수정 2016-12-03 07:45  |  발행일 2016-12-03 제8면
상인들과 대화도 없이 돌아가
성의없는 방문에 분노만 자극
“믿음이 강하면 실망도 큰 것 지나치는 모습 억장 무너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대형화재가 난 서문시장을 쓸쓸히 방문한 후, 대구지역에선 각종 비난이 쇄도했다. 여기엔 박 대통령과 서문시장 상인 간의 ‘애증(愛憎)관계’가 그만큼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렬했던 기대감 만큼 실망감도 컸다는 얘기다. 미혼인 박 대통령에게 일종의 ‘친정’이나 진배없는 서문시장의 민심은 현재 애정보다 증오쪽으로 무게 추가 기울어진 셈이다.

2일 대구지역 공직자와 서문시장 상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박 대통령이 서문시장 화재현장인 4지구 방문 후 돌아가는 차량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접한 뒤 시장 민심은 분노로 끓어올랐다. 힘든 발걸음을 했으면 10분이 아니라 30분 정도 시간을 내 피해상인들의 손을 잡고, 같이 울어주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매몰차게 그냥 갔기 때문이다. 위로는커녕 상인들의 분노만 더욱 자극하고 갔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탄핵’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속에서의 방문이고, 더이상 이전 단계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시장상인들 가슴 밑바닥에 남아있던 동정표라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다.

지역 정가에선 이번 일을 1997년 당시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의 행보와 비교한다. 김영삼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대구시민이 집권 신한국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할 때 당에서 모두 반대했지만 이 총재는 측근의 조언을 듣고 서문시장 방문을 전격 결정했다. 처음엔 참모들과 미리 공감대를 형성한 일부 당 지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같은 사정을 알 리 없던 서문시장 상인들도 덩달아 직접 종이박스를 뜯어 손글씨로 이 후보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는 문구를 적어 환호해줬다. 서문시장은 그때 이후 일약 ‘대구 정치의 1번지’로 우뚝 서게 됐다. 이때의 상황을 기억하는 지역 공무원들은 박 대통령의 이번 행보에 많은 아쉬움을 나타낸다. ‘국정농단의 주범’이라는 국민적 비난은 당연하고, 물러나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 이면엔 박 대통령의 태생적·정치적 고향이 대구이고,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며 방문 때마다 상인 민심을 싹쓸이하며 정치적 동력으로 삼았던 것을 감안해서다. 박 대통령을 대하는 서문시장 상인들의 이중적 심리는 여기에 기원했다는 것이다. 마냥 싫어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는 쓰라려 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다.

4지구 상인 서모씨(57)는 “한때 나도 박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 상인들이 모이기만 하면 대통령을 비난한다”면서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이 돌아 선 건 아니고 항상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 시국이 어렵지만 민생을 돌아볼 줄 안다는 희망을 품고 살았다. 이번에 시장을 방문할 때 피해상인들에게 꼭 한마디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보수표를 결집, 당선시켜준 상인들의 마음에 더 큰 상처만 남겼다”고 날을 세웠다. 10년 넘게 박사모로 활동한 상인 정모씨(52)도 “믿음이 강하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면서 “피해상인들의 말을 한마디도 안듣고 그냥 지나치는 모습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박 대통령이 그나마 의지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서문시장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지역의 한 공직자는 “정치적 판단으로 볼 때 도저히 올 상황이 아닌데도 박 대통령이 힘든 걸음을 했지만, 결국 아무런 소득없이 시장 상인들을 더 자극만 한 채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

김형엽기자 khy041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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