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도시락 속에 담긴 메시지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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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5 07:55  |  수정 2016-12-05 07:55  |  발행일 2016-12-05 제18면
“수업중 교실에 엄마가 들고온 도시락은 사랑이었습니다”
도시락 데이에 도시락 잊고 온 교균이
오전내내 시무룩하게 있다가 함박웃음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감사의 마음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도시락 속에 담긴 메시지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한창 수업 중인 교실입니다. 교실 밖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교실 창문 주변에서 기웃거리며 교실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들 눈이 하나둘 출입문 쪽으로 옮겨지는 것을 느낀 나는 교실 출입문을 바라봅니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칩니다. 문을 열고 아주머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교균이 어머니입니다. 손에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교균이가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아서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사랑의 도시락 데이(엄마의 편지와 함께 도시락을 싸와서 아이들과 함께 먹는 날)’입니다. 오늘 따라 교균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하루 종일 시무룩해 하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엄마를 본 교균이의 얼굴에 이제야 웃음이 돌아옵니다. 그런 교균이를 보면서 문득 옛날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도시락, 조그만 병에 김치 또는 멸치조림, 양푼 도시락에 보리가 섞인 밥을 난로 위에 올려놓고 데워 먹던 시절이었습니다. 가방 속에 넣어둔 김치를 담은 병에서 김칫국물이 쏟아져 책을 다 버리면 얼른 수돗가로 달려가 책을 씻어내고 햇볕에 말리던 그 시절, 도시락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친구들과 함께 마주앉아 먹으면서 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미처 도시락을 챙겨오지 못하면 점심 무렵, 도시락을 들고 교실 주변을 기웃거리던 어머니, 나와 눈이 마주치면 도시락을 교실 창문 위로 높게 들고는 함박웃음을 짓던 어머니, 그때 어머니가 전해주신 것은 도시락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2017년 대학입시를 위한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있었던 날 밤 한 신문기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1년에 딱 한 번뿐인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어머니가 실수로 도시락 가방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울리는 바람에 부정행위자로 적발된 수험생의 기사였습니다. 그냥 살아가다 보면 있음직한 일입니다. 물론 본인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준비하면서 얼마나 많이 억울할까 하는 안쓰러움이 생깁니다. 게다가 재수생이라고 하니 그 마음은 더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기사는 그런 부정행위에 대한 기사가 아니라 그 학생이 남긴 글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다음과 같은 글을 수험생들이 공유하는 사이트에 남겼다고 합니다.

“엄마가 도시락 가방 주시길래 그대로 받아서 시험 치러 갔는데…. 국어 끝날 때쯤 벨소리 울려서 국어만 치고 집에 왔어요. 저랑 같은 시험실에서 친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창 집중해야 할 국어 시간에….”

어머니의 본의 아닌 실수로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망친 그 학생은 어머니를 원망하거나 이 상황을 억울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료 수험생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는 그 학생이 정말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바른 아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기사를 읽고 있는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보통 그런 상황에서는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하지만 그 학생은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도시락을 준비해주신 엄마의 마음과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시험을 앞둔 자신의 도시락을 쌌을 거란 걸 알기에, 도시락 속에 담긴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그렇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인성과 마음가짐을 가진 그 학생은 본인이 원하는 경찰대학에 꼭 들어갈 것이란 믿음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논어에 공자는 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事父母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이 말은 결국 “부모를 섬김에 있어 부모님의 잘못을 말씀드릴 때는 부드럽고 완곡하게 말씀드려야 하며, 듣고도 나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으시더라도 공경하고 부모님의 뜻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그 일이 힘들더라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1년의 공부 결과를 결정 짓는 그 순간을 망쳤지만 그 수험생은 도시락에 휴대폰을 넣는 실수를 하신 어머니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원망하지 않고 더 큰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교균이는 그날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도 저절로 배가 불렀습니다. 맛있냐고 물었습니다. 교균이가 멋쩍은 듯 씩 웃으며 대답합니다.

“맛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반찬을 다 싸셨어요. 아침에 일 나가셔야 하는데 저 때문에 어제 잠도 못 주무시고 반찬하신 걸 봤어요. 오늘 그걸 안 들고 와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괜히 말을 흐리며 고개를 숙입니다. 저 또한 도시락에 담긴 엄마의 사랑을 알고 있는 교균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평소 말썽꾸러기인 교균이가 참 어른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점심을 먹고 어머니께 감사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가 연필을 꼭꼭 눌러 쓰는 모습을 바라보다, 가만히 시골집의 늙은 노모가 생각납니다. 전화 한 통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여러분도 어머니를 떠올리며,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며 사랑한다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김원구<대구서도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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