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퍼펙트 스톰, 한국호(號) 덮치나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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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5   |  발행일 2016-12-05 제31면   |  수정 2016-12-05
[월요칼럼] 퍼펙트 스톰, 한국호(號) 덮치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은 둘 이상의 태풍이 충돌하여 그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기상현상을 말한다.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자연재해로 발전한다. 1997년 서배스천 융거의 논픽션 소설 ‘퍼펙트 스톰’에서 나온 것으로 볼프강 페터젠이 감독한 동명의 재난 영화가 2000년 국내에 소개되면서 일반인에게도 익숙해진 용어다. 최근에는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동시에 발생해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로 확대 사용되고 있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닥터 둠’(Doctor Doom·파국을 예언하는 박사)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2011년 6월에 세계경제 위기를 전망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영화 제목쯤으로 여겼던 퍼펙트 스톰이 표류하는 대한민국호(號)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최근 ‘트렌드 코리아 2017’을 펴낸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지금의 한국 위기상황을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는데 엔진이 고장 난 조각배에 선장도 구명정도 보이지 않는 형국”이라고 말한다. 2007년 출간된 책 ‘88만원 세대’로 잘 알려진 우석훈 박사도 최근 칼럼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내년에 공황이 올 가능성이 90%이상이라고 비관적인 예측을 했다.

제일은행 ‘눈물의 비디오’를 보며 IMF 외환위기를 온 몸으로 겪은 환란세대는 생각조차 하기 싫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작금의 현실을 1997년과 닮은꼴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10년 주기 위기설과 맞물리면서 불안감을 더한다. 외환위기 당시 기업부채가 화근이 돼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줄도산했듯이 지금은 1천3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가 경제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가신정치 폐해와 ‘소통령’ 김현철씨의 국정농단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정부는 식물상태로 추락한 19년 전 상황도 최순실 등 비선실세 농단으로 국정리더십이 실종된 지금과 흡사하다. 경제 관료들의 현실인식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도 1997년을 연상시킨다.

우리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불어 닥칠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경제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의 10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0.3%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69.8%) 이후 10월 기준으로 가장 낮다. 내수도 얼어붙어 11월 소비자심리지수(95.8)는 7년7개월 만에 최저치다. 경제의 허리역할을 하는 40대 가장의 가구소득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작년 4분기부터 4분기 연속 0%대(전분기 대비)에 머물고 있다. OECD는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6%로 대폭 낮췄다. 여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연내 금리 인상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현실화되면 추가 타격이 불가피하다. 임종룡 경제 부총리 내정자가 진단한 대로 여리박빙(如履薄氷)의 형국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위기 탈출 처방을 내놓아야 할 정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검찰조사, 국조, 특검, 탄핵 등이 이어지면서 중심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특히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임종룡 부총리 내정자의 불편한 동거가 1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경제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작동을 멈췄다. 당장 우리 경제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조차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중심을 잡고 깨어있어야 할 공직사회는 ‘변양호 신드롬’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장관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세종시 관가는 한 달 넘게 ‘무두절(無頭節)’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경제위기의 시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정국혼란에 휩쓸려 자칫 소중한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제2의 외환위기 사태도 배제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여야는 하루빨리 경제정책을 지휘할 컨트롤타워를 세워 구조조정의 고삐를 다잡아야 한다. 정치권이 탄핵정국과 대선에만 정신이 팔려 민생을 외면한다면 촛불이 국회로 달려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도 각자 위험관리에 나서야 할 때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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