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합리적 기회주의자는 설 땅이 없는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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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7   |  발행일 2016-12-07 제31면   |  수정 2016-12-07
[박재일 칼럼] 합리적 기회주의자는 설 땅이 없는가

참으로 어려운 계절이다. 국민의 95%가 한쪽으로 간다는 작금이지만, 현장의 말은 꼭 그렇지도 않다. 토론은 역정 끝에 종종 파국을 맞는다. 상대는 술자리를 박차고 떠난다. 더구나 내가 소재한 이곳은 80% 투표율에 80% 득표를 한 곳이 아닌가.

친구들은 모두 나서 칼럼을 좀 더 강하게 쓰라고 주문한다. 근데 어느 쪽으로 어떻게 강하게 쓰라는 건지 헷갈린다.

“1원 한 푼 박근혜 주머니에 들어간 게 없다는데 그게 어떻게 뇌물이냐. 과거 정권들도 모두 다 무슨 무슨 재단을 만들었다는데.” “지금의 그들이 단 한 번이라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인정한 적이 있느냐.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취임 1년, 세월호로 1년, 메르스에 사드니 뭐니 해서 물고 뜯지 않았느냐. 연설문, 나도 뭘 적어 놓으면 옆에다가 물어본다.”

“그래도 이 사안은 다르다. 단순히 돈을 주고받고 이전에, 박근혜 끌어내리기에 몰두한 세력의 끈질김 이전에, 엄연히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엄청나게 혼재시킨 대통령에게 큰 패착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종편에서 나오는 50%만 맞다고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유감스럽게도 탄핵감이다”.

그렇게 반문하니, “그렇다면 박정희 대통령 이래의 대한민국 근대화 정신, 그 못살던 시절의 애국심마저 이제 모두 난도질당했다. 엄연히 종북(從北)은 있는데, 이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묻는다. “그건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

또 다른 지인이 묻는다. ‘세월호 7시간’을 아느냐고. “진실은 잘 모른다. 인화성이 강한 문제이지만… 일개 기자인 나도 하루 종일 구조 중계방송을 봤는데 대통령이 그걸 추적하지 않고 있었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더 통탄하는 부분은 아직도 구조 인원 수가 중복됐다는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깊게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옆에서 듣던 이의 질타가 꽂힌다. “아니, 대통령이 이상한 짓을 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기자인 너는 그것도 모른다는 말이냐. 그건 그렇고 국정교과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버지 박정희를 미화하려고….”

“오랜 시절 우측으로 완전히 기운 교과서를 우리는 배웠는데, 언제부터인가 또 다른 반대편으로 가는 교과서가 내 자식의 책상 위에 엄연히 있지 않은가. 국정이든 검정이든 기회를 줘야 한다. 솔직히 나는 우익 교과서 한 권도 채택하지 못하게 하는 그 행위들이 민주적인가 묻고 싶다.” 이 말에 상대는 급기야 탁자를 친다.

이런 비아냥도 있다. 주로 외지에서 오는 것들이다. “80% 찍은 대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길래. 대구는 정말 골통 보수 아닌가. 정말 반성해야 한다.” 이의를 제기했다. “대구는 투표로 권력을 위임한 것뿐이다. 최순실이 대구에서 산 것도 아니고, 무슨 재벌 하나가 대구에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건 지역적으로 굳이 따지면 서울에서, 서울 중심 권력에서, 중앙권력에서 벌어진 일인데 왜 대구를 향해….”

모든 논박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떠날 것이다. 탄핵이든 사임이든, 이후 우리는 새로운 정치실험에 맞닥뜨렸다. 진보 보수 구분마저 뒤섞인 작금의 안개를 걷어낼 것인지, 정치과잉의 광폭 행진이 이어질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또 정치는 엄연히 현실이고, 낮은 곳으로 물이 스며들 듯 또 다른 권력이 창출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는 전진해야 하고, 또 정치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념의 외투를 던지고 합리적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친박이든 친이든, 그 무슨 사람 이름 붙은, 어처구니없는 인적 통치의 냄새가 짙은 어설픈 장치들을 걷어내야 한다. 국가는 가족이 아니다. 더구나 친지, 친구 모임도 아니다. 전근대적 사고를 떨쳐야 한다. 설령 그것이 기회주의적일지라도, 합리적이라면 채택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전진할 수 있다. 누군가 e메일로 보내온 장문 속 구절에 눈길이 닿는다. “대한민국 선진국 문턱에서 2% 부족한 점을 이제 넘을 수도 있겠다. 하쿠나 마타타(‘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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