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밥심이 민심인데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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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8   |  발행일 2016-12-08 제31면   |  수정 2016-12-08
[영남타워] 밥심이 민심인데
윤철희 경제부장

저물어가는 병신년(丙申年), 사방에서 들려오는 건 경쾌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아니라 음울한 한탄뿐이다. 국가적 위기에다 서민들은 짙은 불황의 그림자에 이중, 삼중의 고통에 허덕인다.

무서운 사실은 이것이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쓰나미급 고통은 이제부터 몰려온다는 것이다. 그 불길한 징조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난다.

한때 디플레이션(Deflation)을 걱정했던 물가는 최근 3개월 연속 1%대의 상승률을 보인 반면, 산업생산은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 특히 식품을 비롯한 장바구니 물가와 서비스 요금이 많이 올라,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깊다. 여기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국제유가마저 우 상향으로 틀면서, 생활물가 상승세를 부채질한다. 세계적으로 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유가 인상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되면 저유가를 바탕으로 한 저물가 기조는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다. 저성장에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공포가 스멀스멀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서운 것은 진흙뻘처럼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성장 없이 물가만 오르면 가계에선 그만큼 쓸 돈이 줄어들고, 결국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영업부진에 시달리는 기업은 투자를 줄이는 동시에 인력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이라는 칼을 빼든다. 다시 가계는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이는 또다시 기업 불황을 심화시키는 이른바 ‘복합불황’의 악순환 구조로 접어들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공습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계층이 서민층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올 들어 하위층의 소득이 무섭게 추락하고 있는 반면, 최상위층은 외려 소득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가 무너지면서 연쇄적인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복합불황의 악순환은 사회 불안으로 이어진다. 노후 준비가 안 된 노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조기 퇴직 후 자영업에 나선 이들은 대거 파산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젊은 층의 실업률은 더 높아지고, 저임금의 비정규직만 늘어나게 된다.

더욱이 이 같은 충격파는 수도권보다 산업기반이 취약한 비수도권, 대구·경북에 더 크게 미친다. 올 하반기 대구의 산업 생산은 전국 평균치보다 못하고, 대구 경기의 바로미터인 성서산단의 경우, 올 한 해 매출만 1조원가량 떨어질 전망이다. 이러다 보니 대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소비마저 침체 일로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고 근로자 임금 수준이 전국 최저인 대구에는 대형 쓰나미급 충격일 것이다.

여기다 환율 등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 트럼프의 보호무역 강화, 과도한 가계 부채 문제 등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지뢰는 한두 개가 아니다. 이렇듯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저성장, 양극화에다 스태그플레이션까지 덮친다면 국가의 재정, 금융정책으로도 극복하기 쉽지 않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조차 모르는 우리 부모세대도 오일쇼크라면 아직도 진저리를 친다. 1973년부터 발생된 1·2차 오일쇼크로 수년간 20% 이상의 살인적인 물가 상승에다 저성장 침체의 극심한 고통을 겪은 탓이다. 이는 유신정권이 무너지는 단초로 작용됐다. 2000년대 중동의 민주화 바람인 ‘재스민 혁명’도 결국 빵값 인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로의 변곡점을 가져온 사건에는 언제나 민생 문제가 그 배경에 있었다. 온 국민에게 분노와 상실감을 안겨주고 자존감에 충격을 준 최순실 게이트 역시 지나갈 문제이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의 고통은 오랫동안 우리 삶을 짓누르게 될 것이다. 위기는 모르고 당할 때 위기다. 알고 대비하면 피할 수 있는 게 이치다.

감성의 기제를 거쳐 이성의 민주주의가 작동된 이후에도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면 그 쓰나미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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