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같은 낭만 기대는 금물…시월이면 무서리에 避寒여행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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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9   |  발행일 2016-12-09 제34면   |  수정 2016-12-09
■ 4부 겨울 이야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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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노모가 지키고 있던 고향집으로 들어온 배찬호씨 내외. 100여년 전에 지어진 이 기왓집은 농촌 가옥의 마지막 추억을 머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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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수확해 건조중인 잡곡들.

'3년차 농부’ 달성 하빈 歸鄕 배찬호씨
노모 모시려 아내 설득해 택한 시골 삶
"파종∼수확까지 글로 배운 건 무용지물
온전히 체험으로 터득해 20여種 농사”

산촌이라 한발 먼저 찾아드는 동장군
"파종보다 더 어려운 게 매년 겨울나기
군불때기·장작불 붙이기부터 큰 복병
열 중 아홉 불편…마냥 낭만적이진 않아”


“파종부터 수확까지를 직접 챙기니 특정 작물의 생리에 대해 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겨울이면 소나무 정도만 푸를까 나머지는 모두 시들어 죽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겨울 눈발에도 죽지 않는 월동초도 적잖게 있어요.”

도시에서 책으로 배운 농사지식은 현실에 적용해보니 무용지물이었다. 노모의 농사기술은 온전히 체험에서 터득한 것이다. 노모와 함께 농사를 지을 때는 뭘 아는 것 같았는데 막상 혼자서 해보려고 하니 모든 게 벽이었다.

“씨앗을 뿌려놓으면 그냥 성장하는 줄 알았습니다. 인터넷을 뒤졌더니 씨앗 크기의 2.5배깊이로 묻으라는 가이드가 있었어요. 노모는 그런 지식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눈대중으로 쓱쓱 파종했어요. 저는 그게 될까 싶었죠. 그런데 인터넷 지식에 가깝게 파종한 저는 백전백패였습니다.”

몇년간 논과 밭에서 지나가는 어르신들에게서 숱한 사각지대 농사법을 전해받았다. 이 어르신의 노하우와 저 어르신의 노하우가 합쳐지고 마지막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만의 주체적 농사법을 알게 되었다. 파종보다 더 어려운 건 어쩜 ‘겨울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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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배찬호씨.

◆장작 패기부터 군불 때기까지

산촌 겨우살이의 핵심은 ‘추위와의 전쟁’이었다. 처음엔 부지깽이가 요긴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철제 집게가 더 효율적이라는 걸 알았다. 몽당빗자루도 요긴하게 사용된다. 자칫하면 집을 홀라당 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궁이 옆으로 잔불이 번지는 걸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몽당빗자루로 주변을 연신 깨끗하게 정리해야 된다.

“시골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맨 먼저 만나는 복병이 군불 때기죠. 초보자는 불을 잘 다룰 수 없어요.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불은 가능한 한 덜 만져야 잘 살아납니다. 자꾸 만지면 더 쉽게 꺼져버리죠.”

장작불을 붙이는 요령이 있다. 일단 신문으로 작은 나뭇가지부터 태우고 그 불에 장작을 얹어야 불이 잘 붙는다. 종이로는 절대 장작을 막바로 불붙이지 못한다. 장작은 반드시 암수처럼 두 개 이상 붙여놓아야 제대로 화력을 유지할 수 있다.

“통장작은 절대 불이 안 붙습니다. 타도 겉만 타지 속은 잘 안 탑니다. 반드시 통나무를 쪼개서 붙여야 되죠.”

땔감도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초창기엔 어르신들이 못 쓰는 산업목재를 많이 줬다. 고마웠는데 막상 사용해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유독가스와 역한 냄새가 나서 결국 사용할 수 없었다. 땔감은 역시 참나무와 소나무가 제일이었다.

“산에 올라가서 바로 베어 온 나무는 거의 불이 붙지 않습니다. 나무도 숙성시켜야 잘 붙습니다. 1년 전에 미리 베어 충분히 말려서 사용해야 됩니다.”

불쏘시개도 잘 챙겨야 된다. 전지한 잔가지, 말린 콩깍지와 들깨대, 참깨대 등도 좋다.

“우스갯소린데 이 동네 할머니들은 절대 고춧대는 불감으로 사용하지 않더라고요. 고추라서 그런가 봐요!(웃음)”

노모는 현재 부부가 살던 방에 묵었고 이들은 아궁이가 있는 방에 살았다. 노모가 돌아가신 뒤 아궁이방을 고치려고 파봤는데 90년 이상 불길이 들락거려 구들돌이 내려앉아버렸다. 물론 불길이 제대로 돌지 않았다. 열손실이 너무 심했다. 이제 그 아궁이는 난방용이라기보다는 지인들이 찾아와 삼겹살, 고등어, 해산물, 군고구마 등을 구워 먹을 때 주로 가동된다. 서재로도 사용되는 아궁이방은 농작물 보관 창고로도 이용된다. 고구마, 감자, 사과, 감 등이 얼지 않도록 매일 불을 땐다. 부부는 난방이 별로 되지 않는 아궁이방에서 3년 정도 보내다가 최근 노모 방으로 옮겼다.

농촌생활을 하면 땀 때문에 매일 샤워를 해야 된다. 동절기엔 이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얼마 전 입식형으로 안채를 부분 리모델링했지만 도심형 욕조조차 없다. 매일 기름을 사용할 수 없어 가마솥에 물을 데워 목욕물로 사용한다.

“한 솥 가득 물을 끓여 그걸 화장실로 들고 와서 추억의 방식으로 찬물을 섞어서 사용합니다. 한겨울엔 화장실이 냉골이라서 일단 실내부터 조금 덥혀야 해요. 요령이 있죠.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바닥에 뿌려두면 증기가 피어오르고, 그럼 조금 훈기가 피어납니다. 이런 얘기를 아파트촌 사람들에게 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라 다들 웃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다행히 얼마 전에 하빈면민을 위한 복지회관이 개관됐다. 1층에 헬스장과 샤워장이 마련돼 월 사용료 1만원만 내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부부는 여길 자주 이용한다.

◆동절기 화장실 가기의 어려움

한옥살이는 겨울이면 더더욱 불편하다.

군불을 때고 문풍지를 바르고 장지문에 비닐을 씌운다고 끝이 아니다. 이 동네는 도심보다 최소 3℃ 이상 기온이 낮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 안 온도가 4℃ 이하다. 솜이불을 덮고 잔다고 해도 콧등이 빨갛게 언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어나면 왜 양말부터 두툼하게 신었는지를 알겠더군요. 당연히 발도 시리죠. 당시 문풍지를 바르고 비닐로 완전히 감싸 두었더니 환기가 문제였어요. 탈부착식 자석문풍지를 설치했는데 이게 2~3℃ 잡아주더군요. 2년 전쯤 인터넷을 뒤져 외풍을 막아주는 방풍텐트라는 걸 구입해 아궁이방에 설치해 놓았습니다. 방풍텐트도 외풍 잡는 용도인데 생각해보세요, 방 안에 재차 텐트를 쳐야 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그게 산촌 겨울의 진풍경입니다.”

이른 아침 화장실 가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새벽이면 변기는 얼어 있습니다.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워요. 일단 화장실에 갈 때는 파카를 걸치고, 변기 커버의 온기를 위해 두툼하고 기다란 등산용 양말을 커버에 끼워둬야 합니다.”

10월 하순이면 벌써 이 동네는 겨울이다. 무서리가 하얗게 내린다. 일단 수도관부터 단단하게 싸둬야 한다. 물도 미리 받아놓아야 된다. 산촌은 아무리 꽁꽁 동여매도 언다. 한파가 절정일 때는 1주일 정도 처가나 누님 댁으로 ‘피한(避寒) 여행’을 떠나야 된다.

그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래서 주위 소리에 더 민감해진다. 겨울이면 더더욱 그렇다. 옆집 어르신이 뒤척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한밤중, 겨울바람이 나뭇가지를 휘감으며 우는 소리는 클래식 음악 못지않다.

눈이 오면 대빗자루를 들고 길 내기 작업부터 강행한다. 이웃한 두 독거노인의 집 앞도 부부의 몫이다. 그럼 어르신은 보시기에 한가득 김치를 보내준다.

“도시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시골에선 가장 좋은 농작물은 팔고, 자식 주고, 나머지 흠 있는 걸 비로소 이웃과 나눠 먹습니다. 시골의 옆집이란 불량품을 주어도 흠이 안 되는 사이죠.”

한낮 이 동네는 적막강산이지만 유독 북적대는 공간이 하나 있다. 바로 마을회관이다. 어르신은 다들 거기로 출근한다. 집에 있으면 연료비가 들기 때문이다.

떠날 때쯤 그가 현재 대한민국 시골살이에 대한 의미심장한 현실을 들려준다.

“10가지 중 하나 정도는 도시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낭만스럽고 추억스럽고 전원스러움이 시골에 있을 겁니다. 나머지는 다 불편하다고 봐야 될 겁니다. 특히 겨울은. 시골에서 생태적인 삶을 살고 싶으면 문명의 편리함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요. 마냥 편한 시골, 낭만적인 시골, 이제 그런 시골은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어둠을 밀어내면서 동네를 벗어날 때까지 교행한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외롭게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자꾸 군불과 겹쳐 보였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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