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하동 화개장터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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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9   |  발행일 2016-12-09 제36면   |  수정 2016-12-09
옛 장터의 시끌벅적함이 그리움처럼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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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에서 내려다 본 화개장터. 지리산 능선으로 둘러싸인 화개골이 멀리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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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장터 입구 광장에 앉은 가수 조영남이 “어이, 어서 와”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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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장옥의 내부. 통로는 아케이드로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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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앞 길가는 화개장터 옛사진 갤러리다. 담 저쪽 건물은 문화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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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역마’에 등장했던 옥화주막. 면사무소 옆과 시장 안 등 여러개의 옥화주막이 있다.

경상-전라 접경 山·江·海 물산 집결
옛 장터 모습 살려 2001년 새로 개장
김동리 단편소설 ‘역마’ 무대이기도

지리산 화개골 능선…너머는 피아골
광장서 반겨 맞는 가수 조영남의 동상
약초가게·주막 등 있을 건 다 있는 場


쌍계로 벚나무들이 오색으로 물든 머리채를 흔들고 있다. 사람도, 들고 나는 차량도 그리 많지 않은 길이 어딘가 부산스럽다. 우수수한 낙엽이란 대개 스산하기 마련인데, 결국 이 부산함의 이유는 배경 탓이겠다. 오른쪽 길가에는 물건들 쌓인 상점과 몇몇 난전이 죽 이어진다. 언뜻 정물 같지만 양지에 앉은 할머니의 밤 깎는 잔잔한 움직임이 쉼 없다. 왼쪽 길가의 낮은 담벼락에는 조막만 한 사진들이 길게 열지어 걸려 있고, 그 너머로 화개장터의 초가지붕과 크고 작은 현수막들이 벅적하다. 그래, 이게 장터지. 시각적인 수선함은 기대를 키운다.

◆화개장터

그 유명한 화개장터. 입구에 들어서면 너른 광장이다. 입구 오른쪽에는 커다란 표지석과 장터 안내도, 안내문 등이 서있다. 왼쪽에는 관광안내소와 ‘문화다방’이 있다. 문화다방은 장터 상인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소이자 여행객들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이다. 때때로 연극공연이나 밴드 공연 등이 열리기도 한다고. 그러나 햇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광장은 파문 하나 없는 매끄러운 수면 같다. 중앙에서 살짝 비껴 선 각설이 엿장수의 수레는 조용하다. 멀리 기타를 든 가수 조영남이 동상으로 앉아 있다. 몇몇 사람들이 동상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앞치마 두른 아주머니가 종종걸음으로 광장을 가로지른다. 평일 정오잖아, 라고 생각한다.

장터의 내부로 들어간다. 장옥들이 열지어선 골목골목이 갖가지 물건들로 빼곡하다. 사람들도 제법 많다. 지리산에서 난 산채와 섬진강에서 난 참게, 은어, 재첩 등의 먹거리 통이 가장 번다하다. 구례와 하동의 다양한 막걸리들도 눈에 띈다. 약초가게, 녹차가게, 한복가게, 떡집, 잡화점, 도자기집, 테이크아웃 커피가게, 뻥이야 가게도 있고, 분식집, 주전부리 집 등 있을 건 다 있다. 주전부리 집 아주머니의 손에 ‘화개골 이야기’가 들려 있다. 화개주민과 화개면이 함께 만드는 마을 소식지다. 통권 23호, 1년이 넘었다 한다.

서류를 든 젊은 아가씨들이 분식집으로 들어간다. “보건소에서 나왔어요. 매일은 아니고, 가끔 나와서 점검해요.” 주전부리 집 아주머니가 일러주신다. “옆집은 오늘 왜 문을 안 열었어요?” “아, 거는 오늘 병원 갔어.” 가게 곳곳을 꼼꼼히 살피던 보건소 직원이 이웃의 부재에 대해 묻는다. 물음과 대답의 어투와 표정에서 서로간의 동의를 읽는다. 모두는 화개장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장터 한쪽에 팔각정 전망대가 있다. 단체 관광객의 기념촬영을 기다렸다가 올라본다. 화개장의 초가와 기와가 내려다보인다. 쌍계사를 품은 지리산의 능선과 화개면사무소 앞에 치솟은 은행나무도 보인다. 섬진강 쪽으로는 벚나무 우듬지 너머 남도대교가 보인다. 그리고 장터 골목을 누비는 사람들이 보인다. 무수한 사물들에 활력을 주는 것은 사람이다.

◆섬진강 행상선의 종점

도롯가 장터 담벼락에 조막만 하게 걸린 사진들은 옛 화개장의 모습이다. 목재와 함석으로 된 장옥의 모습, 보릿단이나 대빗자루를 실은 소달구지, 소 여물을 끓이는 소녀, 조개 파는 여인, 잔뜩 쌓아놓은 죽세공품 속에서 부지런히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가족. 화개장은 섬진강 수운이 열렸던 때에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행상선(行商船)이 들어올 수 있는 섬진강의 가장 상류 지점, 즉 항해의 종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여기서 내륙의 임산물 및 농산물과 남해의 해산물들이 서로 교환되었다.

화개장의 옛 모습은 김동리의 1948년 단편소설 ‘역마(驛馬)’에 잘 나타나 있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개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화물 장수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골백분들이 또한 구롓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의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조기, 자반고등어 들이 들어오곤 하여 산협(山峽)치고는 꽤 은성한 장이 서기도 하였으나 그러나 화개장터의 이름은 장으로 하여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경 없는 지경의 장터

하동군사(河東郡史)에 보면 옛 화개장은 “전국 7위의 거래량을 자랑한 큰 시장”이었고 “중국 비단과 제주도 생선까지도 거래를 했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도 5일장의 명맥은 유지했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산촌이 황폐해지면서 화개장도 함께 쇠퇴해 갔다. 화개장터 초입 작은 케이크 모양의 땅에 ‘역마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 한쪽에는 ‘화개장터삼일운동기념비’가 서있다. 공원과 기념비는 화개장터가 가장 성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화개장터가 옛 시골장터의 모습을 살려 새롭게 개장한 것이 2001년이다. 2014년에 큰 화재를 겪었지만 다시 일어섰다.

화개장터 뒤로 화개천이 흐른다. 장터 끝에 있는 화개교에 서면 화개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 합수의 오른쪽은 전남 구례, 왼쪽은 경남 하동이다. 물길은 남도대교의 정중앙에서 또한 전남과 경남을 나눈다. 장터의 둥그스름한 초가지붕들 너머로 지리산 촛대봉 능선이 물길 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능선 이쪽은 화개골, 너머는 피아골이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화개장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일지라도 인근 고을 사람들에게, 그곳이 그렇게 언제나 그리운 것은 장터 위에서 화갯골로 뻗쳐 앉은 주막마다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 뛰는 물고기의 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막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가지 사이사이로 사철 흘러나오는 그 한많고 멋들어진 진양조 단가, 육자배기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산과 물과 안내판들이 지경(地境)을 긋지만 여기 지경에 자리한 장터에는 지경이 없다. 육자배기는 들리지 않지만 시장통에서는 전라도 말, 경상도 말, 서울말이 들리고, 펄펄 뛰는 은어회를 먹을 수 있고, 주막에는 하동 막걸리와 구례 막걸리가 나란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에서 12번 88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남원IC에서 내린다.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를 지나 섬진강 따라 하동으로 가면 된다. 남도대교 직전 화개장터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왼쪽 화개천변에 넓게 자리한 장터가 보인다. 장터 맞은편, 면사무소 앞쪽에 꽤 넉넉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주차비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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