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천생산(天生山·해발 407m,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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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9   |  발행일 2016-12-09 제37면   |  수정 2016-12-20
장대한 천연 절벽에 사방이 일망무제…그랜드캐니언이 따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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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덕암 뒤로 구미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로 금오산이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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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산성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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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산성.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냥 지나치며 바라만 보던 산을 오른다. 고속도로를 지나거나 구미 방향으로 가다 보면 떡시루를 엎어놓은 듯 특이하게 생긴 산이 있다. 구미 금오산 동쪽으로 낙동강 건너에 있고, 구미의 웬만한 곳에서도 눈에 띄는 천생산이다. 구미의 동쪽에서 보면 ‘하늘 천(天)’ 자로 보이고, 하늘이 내놓은 산이라고 해서 천생산으로 불리지만 다른 이름이 많은 산이다. 구미에서는 반티산으로도 부른다고 한다. ‘반티’는 함지박 모양의 그릇을 뜻하는 사투리로, 산 전체가 함지박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각도에 따라서는 산 능선이 ‘한 일(一)’ 자 모양으로 보여 ‘일자봉’으로 부르기도 하며, 정상부를 두른 바위 절벽이 병풍을 둘러쳐놓은 것 같다고 해서 ‘병풍바위’로도 불린다고 한다. 또 이 산에 있는 산성을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처음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혁거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등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天’모양·하늘이 내린 산이라 천생산
반티산·일자봉·혁거산·병풍바위 별칭

천룡사 계곡 건너 솔밭길 지나 바윗길
정상 전망대 오르면 팔공산까지 조망
곽재우 기지로 倭 물리친 천생산성도


들머리는 용수지를 지나 천룡사 입구 삼림욕장 갈림길에 있는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주차장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약 400m 가면 천룡사가 있다. 바위 절벽 아래에 마애불을 새긴 불상이 있고, 정면으로 몇 계단을 오르면 천룡사 경내로 들어갈 수 있으며, 등산로는 정면으로 표시되어 있다. 계곡을 건너 왼쪽으로 접어들면 솔밭길이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윗길이 시작된다. 낙엽 사이로 희미한 길이다가 자연석을 다듬은 계단이 반복된다. 구조위치 17번을 지나자 침목을 깐 계단도 만난다. 불규칙한 바윗길에 조약돌 같은 동글동글한 돌멩이들이 많이 보인다. 바위에 박힌 돌이 빠진 것인데 이 일대의 바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화산 폭발로 형성되었다는 이도 있지만 바다나 하천이 융기되어 형성된 지형이라는 이들이 더 많다. 큰 것은 어른들이 들어앉을 만한 크기의 구멍이 파진 곳도 있다.

구조위치 18번 표지판을 지나자 곧바로 계단이 놓여있다. 최근 구미시에서 천생산 정비사업으로 새로 놓은 계단이다. 예전에는 돌아 올라가던 길을 절벽 아래서 곧장 올라가도록 만든 것이다. 계단을 다 오르면 정상 바로 아래 전망대다. 오른쪽으로 6·25전쟁 때 격전지였던 유학산을 마주하고, 오르던 길에서 정면은 멀리 팔공산 정상부가 조망된다. 정상 쪽은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는 미덕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완만한 길을 약 100m 오르면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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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산 곳곳에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조약돌 같은 돌멩이가 흩어져 있다.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는 정상 표석은 따로 없고 경북도 지방기념물 12호인 천생산성 표석이 정상 표석을 대신한다. 그 옆에 덩그러니 산불감시초소가 사방을 내려다보고 있다.

천생산성은 이 산의 8~9분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있다. 인근의 금오산성, 가산산성과 더불어 영남에서 적의 침입을 대비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여겼던 산성이다. 비슷한 높이의 두 봉우리를 이어 내성과 외성을 쌓아 장기전을 대비한 산성이다. 정상 바로 앞 미덕암으로 불리는 바위는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천생산의 북쪽 절벽 가운데서도 깎아지른 듯 험준한 곳에 위치한다. 왜군이 보았을 때에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이에 왜군은 민가로 내려가 촌로에게 이 산성에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어리석게도 촌로는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라 물이 귀하다고 일러주었다. 귀중한 정보를 들은 왜군이 산기슭에 큰 못(저수지)을 파니 산 위의 샘물이 줄어들고 성 내에는 식수조차 모자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곽재우 장군은 기발한 계책을 세워 이 산성에 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계획을 꾸몄다. 바위 위에다 말을 세우고 말 등에다 쌀을 주르르 부으면서 말을 씻는 흉내를 반복했다. 산 아래 주둔한 왜군들이 이 광경을 바라보니 매일같이 말을 목욕시킬 만큼 산성에는 물이 충분하다는 것으로 보여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났다고 한다. 쌀 덕분에 왜군을 물리쳤다고 하여 미덕암으로 불린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다.

미덕암, 천생산성 안내도를 뒤로하고 북문 방향으로 향한다. 병풍을 두른 듯 자연적인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마주한 봉우리 역시 단애를 이룬 절벽이 그랜드캐니언 같은 이국적인 풍경이다. 일부는 완성된 곳도 있고, 일부는 공사가 한창인 계단을 지나 북문지 앞에 서니 ‘천생사 600m, 천생산성(정상) 700m’ 이정표가 서 있다. 정상 방향의 이정표는 동문 방향과 지나온 구간 모두 700m로 표기되어있다. 여기서 되돌아가도 700m, 동문을 돌아 정상을 가도 700m라는 뜻이다.

성벽을 따라 잠시 오르니 동문을 지나면서부터는 산이 생긴 모양 그대로를 따라 용틀임하듯 휘어져있는 성벽을 따르는 길이다. 중간중간 풍화작용에 의한 듯 움푹 파인 특이한 바위를 만나고, 정면의 유학산에 산 그림자가 드리워져 실루엣으로 실금을 긋는다. 그 명암 속에는 6·25전쟁 때 피아간 치열했던 아픈 상처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성벽을 오르는 길도 정비가 한창이다. 예전에 흙길이던 것을 계단으로 만들고, 낙석 방지를 위해 옹벽을 쳐둔 곳도 있다. 새롭게 정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철옹성같이 쌓아올린 성벽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중간에 미덕암으로 바로 오르는 갈림길을 지나고 모퉁이를 돌아 나가자 정상을 오르면서 보았던 전망대를 만난다. 멀리 김천의 황학산과 추풍령 일대의 산, 정면으로 구미 시가지 뒤로 오뚝한 금오산 정수리에 해가 기울고 있다. 시정거리는 약 40㎞. 오랜만에 거칠 것 없는 시원한 조망을 즐기는 여유를 가져본다.

오른쪽으로 냉산과 청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꽤 괜찮아 보인다. 언젠가 저 봉우리에 서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산에서 또 하나의 산을 발견한 기분 좋은 느낌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오를 때와는 달리 낙엽이 깔린 곳은 미끄럽다. 오를 때는 분명 길이 하나뿐이었는데 중간중간 두 갈래로 보이는 길도 있다. 대부분 바윗길이라 바위 위로 넘는 길이 먼저 보여 그렇지, 지나고 나면 다 하나의 길이다. 천룡사까지는 25분 남짓. 주차장까지 타박타박 걸어도 10분이면 닿는다.

대구시산악협회 이사·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apeloil@hanmail.net

☞ 산행길잡이

천생산공원 주차장-(10분)- 천룡사 -(35분)- 전망대 -(2분)- 정상 -(15분)- 북문 -(5분)- 동문-(15분)- 전망대 -(25분)- 천룡사 -(10분)- 천생산공원 주차장

가까이 있어 소홀하기 쉽고, 그냥 지나치는 산이지만 삼림욕장까지 갖추고 있어 구미시민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산이 높지 않고 전체 둘레 또한 넓지 않아 반나절이면 충분해 가족 산행으로 추천하고 싶은 산이다. 천룡사를 올라 천생산성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코스도 있고, 산 전체를 가로지르는 종주코스 등 다양한 코스가 있다. 산성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면 약 6㎞로 3시간30분 정도 소요되고, 북문까지만 돌아 내려오면 약 4㎞로 2시간30분 정도 소요되는 여유로운 코스다.

☞ 교통

중앙고속도로 가산IC에서 내려 구미, 선산 방향으로 우회전해 25번 국도를 탄다. 약 2㎞ 가면 송학교차로를 만난다. 구미, 군위 방향 514번 지방도로를 따라 약 6㎞ 가면 학루지를 지나 구평초등 앞 삼거리를 만난다. 우회전으로 약 1.5㎞ 가면 천생산공원 주차장이 나온다.

☞ 내비게이션

구미시 구평동 산 91-6(천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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