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지방시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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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9   |  발행일 2016-12-09 제41면   |  수정 2016-12-20
‘헵번 스타일’로 여성들의 로망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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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지방시 컬렉션에서 선보인 작품. 지방시는 단순함과 우아함에서 오는 세련됨이 특징이다. 작은 사진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리틀 블랙 드레스를 입고 있는 오드리 헵번. 헵번은 지방시의 뮤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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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서 탄생한 ‘뮤즈(Muse)’의 어원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예술가들은 이러한 자신의 뮤즈로부터 영감을 얻고 때로는 위로받으며 다양한 예술 작품을 창조해 낸다.


1952년 첫 컬렉션 베티나 블라우스 인기
‘뮤즈’오드리 헵번은 ‘사브리나’서 인연
‘티파니에서…’ 입은 리틀 블랙 드레스
심플·세련·우아한 디자인으로 스타덤

멘토 겸 친구 발렌시아가와도 오랜 교유
구조적 실루엣·심플 모던 디자인 공통점
1995년 은퇴…존 갈리아노 등이 뒤 이어



세계적인 가수 존 레논에게는 오노 요코가, 유명 영화감독 우디 앨런에게는 다이앤 키튼이,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에게는 에디 세드윅이 있었다. 분야는 달라도 예술이라는 큰 틀 안에서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멋진 작품을 남긴 그들에게, 이러한 영감의 원천인 뮤즈가 없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훌륭한 결과를 낼 수 있었을까?

패션계에도 이렇게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준 이들이 있었다. 바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배우 오드리 헵번과 지방시(GIVENCHY)의 창립자 위베르 드 지방시이다. 위베르 드 지방시는 그의 뮤즈 오드리 헵번을 통해 여성들을 매료시킬 디자인을 쏟아내며 ‘헵번 룩’을 유행시켰다.

위베르 드 지방시는 1927년 프랑스 보베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예술적으로 풍요롭게 성장하였다. 유년기에 이미 패션디자이너로 진로를 결정한 그는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후, 1940년 말에서 1950년대 초까지 여러 오트 쿠튀르 하우스의 보조 디자이너로 일하며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익혔다.

1951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쿠튀르 하우스 ‘The House of Givenchy’를 오픈하고, 이듬해 브랜드 ‘지방시(GIVENCHY)’의 첫 컬렉션을 개최하였다. 프랑스 톱모델 베티나 그라지아니를 기용한 첫 컬렉션에서 그는 모던한 ‘레이디 라이크 스타일’을 내세우며 스타일을 전개하였고, 이때 발표한 ‘베티나 블라우스’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주목을 받았다.

위베르 드 지방시는 전통적인 쿠튀르 하우스의 전형적인 우아하고 구조적인 이브닝 웨어를 재탄생시킴으로써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스타일을 완성한 디자이너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디자인은 ‘심플하고 세련된 우아함’으로 대표되는 스타일로, 별개의 요소가 상호보완을 통해 조화를 이루는 것에 강점이 있다. 신체를 따라 흐르는 실루엣에 장식을 배제한 단순함과 구조적인 안정감을 기본으로 하여, 볼륨을 살린 고전미와 비대칭적 현대미가 믹스매치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지방시의 스타일은 과시적이고 공격적인 혁신을 추구하기보다는 단순함과 우아함에서 오는 세련됨 그 자체이며, 옷을 돋보이게 하기보다는 옷을 입는 여성이 돋보이게 하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그는 소재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였는데 실크, 면, 크레이프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고급스럽고 섬세한 디자인을 발표했다. 또 벨벳, 태피터, 오간디 등 전통적인 고급소재와 트위드, 울과 같은 무게감 있는 소재를 사용하여 각각의 특성을 살린 볼륨감 있는 형태와 서로 다른 광택이나 질감을 갖는 소재들의 배합을 통해 그만의 아름다움을 창조했다.

위베르 드 지방시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오드리 헵번과의 첫 만남은 1954년 영화 ‘사브리나’의 촬영을 위한 의상을 담당하면서부터다. 이것을 계기로 오드리 헵번은 자신이 출연한 거의 모든 영화의 의상을 그에게 의뢰하였고, 개인 의상까지 모두 그에게 맡길 만큼 그를 신뢰했다. 위베르 드 지방시 또한 그녀를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디자인을 선사하며 서로에게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이 둘을 두고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이 세상 언어 중 어떤 형용사로도 묘사할 수 없는 창조물인 오드리 헵번은 1950년대에 위베르 드 지방시의 옷을 전 세계적으로 칭송 받게 했고, 지방시는 이를 통해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최초의 리틀 블랙 드레스(LBD)는 ‘샤넬(Chanel)’의 심플하고 짧은 블랙 이브닝 드레스 또는 칵테일 드레스지만, 리틀 블랙 드레스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바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었던 지방시의 블랙드레스이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업스타일 헤어에 버그아이 선글라스, 진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치고 몸에 꼭 맞는 등이 깊게 파인 블랙 새틴 시스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단번에 당대 최고의 패션아이콘으로 군림하였고, 위베르 드 지방시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지방시는 이 블랙 드레스를 세 번 카피하였다. 첫째 것은 마드리드 의상 박물관에 있으며, 둘째 것은 자선행사 기금을 위해 92만달러에 경매되었고, 셋째 것은 지방시 패션 하우스에 보관되어 있다.

위베르 드 지방시에게 있어 뮤즈 오드리 헵번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그가 평생 존경하며 많은 영향을 받은 멘토이자 친구인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이다. 1953년 한 파티에서 만나 친해진 그들은 위베르 드 지방시가 작업실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옆으로 옮길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가지며 각자의 작업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디자인에 대해 서로 많은 것을 공유했고, 더불어 성장했다. 그 둘은 최고의 쿠튀리에로서 단순하면서도 구조적인 실루엣을 추구하고, 심플하면서도 모던한 디자인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동시에 차별화 되는 개성이 있었다.

위베르 드 지방시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에 비해 컬러와 패턴을 보다 과감하게 사용하고 컬러에 대한 애착으로 블랙 앤 화이트 또는 선명하고 강한 컬러인 ‘버터컵 옐로’ ‘일렉트릭 블루’ ‘칠리 페퍼 레드’ ‘브릴리언트 퍼플’ ‘브라이트 핑크’ 등의 밝은 컬러에 금색 악센트 컬러를 사용하여 강렬한 색상 조화 및 대비 효과로 발랄하면서도 화려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디자인은 1960년대 ‘보그(VOGUE)’로부터 ‘지나친 낭비를 요하지 않는 명석한 대담함’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1992년 40주년을 맞으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던 위베르 드 지방시는 1995년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발표했고, 이후 지방시는 능력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을 영입하여 브랜드를 이끌어 나갔다.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줄리앙 맥도날드를 거쳐 현재는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이카르도 티시에가 지방시를 이끌고 있다. 이전에 엄격하고 깔끔한 스타일에서 이카르도 티시에의 성향이 가미되어 조금 더 관능적인 고딕 스타일로 변화한 지방시는 여전히 ‘입는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는 옷’을 추구하며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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