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 칼럼] 국민이 탄핵했다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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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10   |  발행일 2016-12-10 제1면   |  수정 2016-12-10 07:06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의결됐다. 투표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했지만 대통령에게 위임한 국정운영권을 당장 내려놓으라는 국민의 외침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탄핵 과정은 민심의 준엄한 심판이자 국민의 명예로운 혁명이라 할만하다.

안타깝게도 박근혜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비정상적인 행태를 거듭했다. 첫 인사부터 파동이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2014년 4월16일), 메르스 사태(2015년 6월) 같은 외적 요인이 나라를 강타했지만 위기관리 능력의 허술함으로 우왕좌왕했다. 최순실 사태의 경고등이었던 정윤회 리스트 파문(2014년 11월)은 집권 중반기에 환부를 도려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진실을 덮는데 급급했다.

그런 사이에 국정성과를 낼 에너지는 바닥을 보였다. 휘청거리던 박근혜정부에 결정타를 먹인 한 방은 내부에서 나왔다. 소문만 무성하던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주범은 박 대통령이 40년 동안 의지했던 ‘민간인 최순실’이었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박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킨 200만 촛불 물결은 민심의 대폭발이었다. 분화구의 중심엔 ‘박근혜’가 있었다. 하지만 ‘최순실’이 활개를 치고, 정·관·재계가 그 춤에 놀아날 정도로 고장난 국정운영체계, 사회 시스템에 대한 탄핵이기도 했다. 낡은 정치제도를 뜯어고치란 국민들의 준엄한 명령이었다. 기득권자들의 공생 사슬이 얽혀 있는 정치, 사회관행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냉철한 경고였다.

정치세력들이 정략적 기준으로 대통령 탄핵에 환호하거나, 낙담해 자포자기한다면 제2, 제3의 박근혜, 최순실은 또 나타날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기형적 통치가 가능하게 된 원인을 분석해 제대로 된 제도를 다시 만들고, 인식을 전환시키는 일은 남은 위정자들의 몫이다.

지금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맞았지만, 난세에 우리가 갈 길을 새로 모색할 수도 있다. 이제 탄핵안이 가결된 만큼 더 이상의 국정 혼란은 없어야 한다. 우선 헌법재판소는 최대한 신속하고 공정하게 심판 결과를 내놓기를 바란다. 그래야 국민과 정치권은 헌법재판소의 심리를 지켜보면서 다음 대통령선거를 차분하게 준비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만에 하나 헌재 결정으로 지위를 회복하더라도 더 이상 국정을 맡기는 어렵다. 조기대선 채비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혼돈의 정국에 그래도 버텨줘야 하는 곳은 정부다. 정부와 공직자는 국민이 기댈 최후의 보루라는 비상한 자세로 국정과 민생을 챙겨야 한다. 탄핵 정국의 혼란이 한반도 안보의 불안정으로 이어져서는 특히 안 된다. 대통령 업무정지로 생긴 국가권력의 공백을 메울 곳은 정부밖에 없다.

이와 함께 오늘의 사태를 초래하기까지 조력하거나 방관한 여당과 정부 일각의 반성도 필연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특히 새누리당내 친박인사들은 국민이 엄중한 경고를 내린 만큼 반성의 행동 없이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이번 사태로 불거진 비합리적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시스템을 개조하는 일도 시급하다. 그 하나가 헌법개정이다.

87년 체제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지 오래됐지만 항상 권력을 잡은 쪽, 혹은 미래권력이 유력한 쪽에서 미적댔다. 지금은 살아 있는 권력이 없다. 그 누구도 미래권력을 담보받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권력구조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의 달라진 이해를 한꺼번에 담아 녹여내는 용광로로서의 개헌이 필요하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권의 권력투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를 개헌에 쏟아붓는다면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시키면서 민주성과 사회적 정의를 고양시켜 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절망한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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