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예의없는 것들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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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20   |  발행일 2016-12-20 제30면   |  수정 2016-12-20
20161220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원치 않은 상황 마주한 국민
희한한 전개에 연일 한숨만
기본 바로 선 나라 만들려면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치인
준엄한 꾸짖음으로 응징해야

은근히 오기가 생긴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건가. 알고 싶지도 않고 몰라도 되는 이름과 해괴한 상황을 도대체 언제까지 매일 맞닥뜨려야 하나. 아무리 가해자가 큰소리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기본적인 양심과 양식의 문제일 뿐 법적 다툼과는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 납득하기 힘든 행태가 연일 까발려지는 요즘, 한숨은 국민전염병으로 자리잡고 있다.

모른다고? 아니라고? 기억 안 난다고? 평소 계산에 밝고 권력을 탐하던 총명하신 분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만 서면 증세는 엇비슷해진다. 거의 자동이다. 뭘 물어도 대답은 한결같다. 일상이 취한 상태였거나, 느닷없이 기억력이 저하되는 몹쓸 병에라도 걸렸나 보다. 그럼 아는 게 뭔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서면보고 하라면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고백을 할 건가.

이해관계 접점에 있는 얕은 물은 사안에 따라 이리 튀고 저리 부딪치면서 흐르지만 깊은 물은 좀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다. 깊은 물에 변화가 감지되면, 돌아가는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고 중대하다는 방증이다. 우리 현대사는 그걸 증명한다. 독재를 타파하자는, 민주화를 쟁취하자는 절박한 외침이 전국을 휘감을 때마다 깊은 물은 외면하지 않았고 어김없이 화답했다. 하지만 국가나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이 직접 위협받을 정도의 도전이 아니라면 깊은 물은 그냥 시그널만 보냈고, 그것만으로도 회복력은 작동이 됐다.

지금은 어떤가. 군 복무시절, 기상나팔 소리만큼이나 듣기 싫고 보기 싫은 뉴스가 화면과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법률전쟁을 테마로 한 1인극도 그렇고, 난파선에서 아직까지 서로 잘났다고 자리다툼하는 여당을 지켜보는 것도 인내심이 바닥에 근접했다. 깊은 물이 왜 촛불을 켜고 함성을 질러대는지에 대한 통렬한 자각과 반성이 어디에도 없다. 다수는 진리에 가깝다고 했다. 이 나라를 지탱하며 묵묵히 자기 일만 해도 눈물겹도록 버거운 삶에 제발, 더 이상 분노와 좌절을 보태지 말자.

얼마 전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 경선 이후 수뇌부들이 웃으며 담소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아무리 양보해도 미소 지을 시국이 아닐진대, 그 여유와 멘탈에 숨이 막힌다. 어디서 나온 자만감의 발로인지 기가 찬다.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입니다. …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나온 이 대사가 여전히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나 싶어 두렵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쁘지만, 두 번 이상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라고 한다. 깊은 물은 지난 수십년간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으며 바보처럼 대한민국의 중심을 잡아왔다. 조금 있으면 법을 잘 아는 사람들끼리 편을 나눠 공방을 벌일 것이다. 이즈음에서 깊은 물이 바라는 것은, 이와는 별개로, 벼슬의 무게와 대한민국의 국격, 그리고 국민에 대한 도리에 어긋난 부분을 질타하고 그에 따른 옳고 그름을 판단하자는 것이다.

내가 아는 깊은 물은 기본적으로 상식이 지배하고 정의와 공정이 확립된 안정적인 나라를 원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역할로, 조금 손해보더라도 소중한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의식이 강하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거부하는 무리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무리와도 작별을 고할 것이다. 그리고 주도권 경쟁에 나서고 있는 야당이 점령군처럼 행세한다면 항상 차선에 머물 수 밖에 없음을 경계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는 사심을 버리고 오로지 국민을 위해야 존재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국민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이번 학습효과에 힘입어 더 이상 ‘고식양간(姑息養奸)’의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했던 명언 한 구절이 새삼 귀에 박힌다. “일부 국민들을 오랜 세월 속이는 것도 가능하며 전 국민을 잠시 속이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전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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