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과학계 노벨상 수상 百年河淸 될라

  • 박종문
  • |
  • 입력 2016-12-21   |  발행일 2016-12-21 제30면   |  수정 2016-12-21
20161221

과학기술 대표 석학단체
한림원서 마련한 세미나
나눠주기식 연구지원보다
선도 연구 집중지원 강조
정부·국회 귀담아들어야


박근혜 대통령 탄핵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던 이달 초 어느 날 아침 대구 한 호텔에 국내 과학기술계에 영향력 있는 영남지역 석학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신성철 DGIST 총장, 박기현 계명대 교수(컴퓨터공학부), 김재룡 영남대 교수(의과대학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박종문 포스텍 교수(화학공학과), 서판길 UNIST(울산과학기술원) 교수(생명과학부), 이인중 경북대 교수(응용생명과학부) 등과 몇몇 원로 교수가 세미나를 위해 자리를 같이했다. 이날 세미나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주제라는 점에서 탄핵정국에도 불구하고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는 자리였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한림원)이 마련한 이날 세미나의 참석자들은 모두 지역 한림원 회원들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통틀어 정회원은 채 500명이 안 되고, 종신회원·명예회원·준회원을 다 합쳐도 1천명에 못 미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과학기술 부문의 석학들로 구성된 단체가 한림원이다.

이날 한림원 정책연구소는 작심한 듯 혁신적인 발제를 했다. 나눠주기식 연구비 지원이 아닌 도전적인 연구에 대한 지원비중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과 같은 소위 ‘n분의 1’식 연구비 배정은 이제 폐기할 때가 됐다는 것이 한림원 정책연구소의 주장이다. 세계적인 선도연구를 하는 과학자에게 과감하게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주제, 세계적으로 가치있는 주제, 과학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를 적극 지원하자는 취지다.

나아가 한림원은 연구평가에 있어 정성평가 비중을 2021년까지 50%로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연구성과 평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복 후 지금까지 연구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는 최대한 많은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골고루 나눠줘 선진기술을 따라잡는 게 필요했지만, 이제는 이 같은 추종자 연구보다는 선도자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변경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연구 성과나 평가를 하는 기준이 되는 SCI 논문 수, 전문잡지 게재, 논문 피인용 수 등 정량지표는 절대다수의 연구자가 매달리는 연구내용을 추구할 때 높게 나오기 때문에 결국 국내학자들에게 고만고만한 연구주제에 집착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림원이 이 같은 주장을 한 이유는 자명하다. 노벨 수상자를 배출할 정도로 세계 과학기술계를 선도하는 연구를 하기 위한 풍토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R&D 비용을 투자하고, 결코 적지 않은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노벨수상자 한 명 배출하지 못하고 있고, 늘 외국 학자들이 일궈놓은 연구의 꽁무니만 따라가는 현실, 그리고 상당히 오랜 기간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는 국가경쟁력의 한계에는 지금의 그릇된 연구지원 정책도 큰 몫을 하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이들은 행정적, 정치적 편의에 의해 연구비가 배정되고, 불과 1~2년짜리 단기 성과에 집착하며, 단지 평가자체를 위한 연구는 예산낭비이자 국가 경쟁력 약화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이날 한림원 회원들은 과학기술 분야의 질적 향상을 위해 연구 설계, 연구비 배정, 연구 평가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연구지원정책이 국제적 표준이나 과학계의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참석한 석학들은 빼어난 연구자이자 대학이나 정부기관 등에서 연구 관련 행정업무를 직접 한 경험이 있어 이들의 문제제기가 설득력을 더 했다.

국내 과학계는 그동안의 집중투자로 선진기술 추격을 눈앞에 두고 있고, 노벨상 수상의 문턱에 다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 화룡점정을 위해 정부나 국회가 과학계의 요구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박종문 (교육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