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愛民이 그립다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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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22   |  발행일 2016-12-22 제31면   |  수정 2016-12-22
[영남타워] 愛民이 그립다
이창호 사회부장

이런 몰염치가 어디 있나. “파면을 정당화할 중대한 법 위반이 없다”(박근혜 대통령 국회 탄핵소추안 헌재 제출 답변). 무능과 무책임으로 국정을 도탄에 빠뜨려 놓고 고작 한다는 얘기가 ‘발뺌’이라니…. 앞서 탄핵안 가결 직후엔 “이제 피눈물이 난다는 말을 알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화(火) 유발 언행’이 점입가경이다. 피눈물이 난다고? 성난 민심에 기어이 기름을 부은 꼴이다. 오히려 피눈물이 날 사람은 국정농단과 민생파탄으로 희망이 사라진 서민들이다. 능력이 없으면 책임감이라도 투철하든지, 책임감도 없으면 국민에 대한 애정이라도 있든지. 하기야 책임감 없는 대통령에게 위민(爲民)의 마음을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리라.

실로 다사다난했던 올해의 끝자락, ‘애민(愛民)’이 사무치도록 그립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박 대통령의 실정(失政)이 얼마나 국민을 좌절케 했는지 똑똑히 목도했기 때문이다. 임금이 곧 법이었던 조선시대에도 백성을 이렇게 업신여기진 않았다. 애민은 시대를 초월해 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조선 태종 임금 15~16년에 유난히 가뭄이 잦았다. 당시 이를 두고 민초들 사이에선 “재상 하륜이 제도를 많이 바꾼 데 대한 하늘의 분노”라며 말이 많았다. 하륜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천재(天災)가 끊이지 않자 태종은 “하륜이 죽고 없는데도 재앙이 생기니 이것은 하륜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부덕한 까닭”이라고 했다. 태종은 세종 4년에 승하하면서 “가뭄이 이렇게 심하니 나 죽은 뒤에 반드시 이날만은 비가 오도록 하겠다”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천재지변도 본인의 탓으로 여기며 백성의 고충을 헤아린 태종이었다.

세종 임금이 재위 32년 동안 이룬 많은 업적의 기저에도 ‘애민’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형법에서 반인권적 ‘혹형(酷刑)’의 폐지를 재위 기간 내내 추진했다. 죄인의 등을 몽둥이로 치는 태배형(笞背刑)을 ‘사람의 오장육부가 모두 등 가까이 모여 있다’는 이유로 폐지한 게 대표적이다. 그는 중신들과의 회의에서도 “형법의 내용을 이두문으로 번역해 백성들에게 반포하자”고 했다. 중신들이 입을 모아 “백성이 법을 알게 되면 죄의 경(輕)과 중(重)을 헤아려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는 일이 잦을 것”이라고 반박하자 임금은 “백성이 법을 몰라 죄를 짓게 하고, 나라가 이들을 벌주는 것은 온당치 않다. 백성이 법을 알게 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세종은 우리나라 역대 임금들 중에서 ‘애민 군주의 최고 전형(典型)’을 보여줬다. 그래서 ‘대왕(大王)’의 대명사로 통한다.

정조 임금은 그의 역작인 수원 화성을 지을 때 인부들에게 여름엔 더위를 막는 특효약을, 겨울엔 진귀한 털모자를 나눠줬다. 백성들은 큰 감화를 받아 진심을 다해 일을 했고, 합당한 노동의 대가도 받았다. 화성이 완공된 뒤 왕은 고된 수고를 아끼지 않은 백성들에게 직접 음식을 마련해 와 먹이기도 했다. 화성 축조 시작에서부터 끝이 날 때까지 보여준 정조 임금표(標) ‘백성 사랑’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항변하는 박 대통령. 조선의 무능한 임금 선조보다도 딱한 처지임을 본인은 알고 있을까. 전쟁이 나자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는 그래도 끝까지 왕을 지키려 한 이순신, 류성룡, 권율 등의 ‘충신’을 곁에 두었다. 반면, 박 대통령의 곁에서 떵떵거려온 이들 상당수는 지금 대통령 탓을 하고 있다. ‘신하 복(福)’도 없는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에게 충고한다. 이젠 마음을 비울 때라고.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세종 편’을 찾아 겸허심을 갖고 읽어보라고. 그래야 ‘애민의 시늉’이라도 낼 수 있지 않겠나. 그것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대통령의 자세다.이창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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