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박근혜 이후, 그리고 TK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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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23   |  발행일 2016-12-23 제23면   |  수정 2016-12-23
[조정래 칼럼] 박근혜 이후, 그리고 TK
논설실장

바야흐로 철새의 계절이다. AI에다 정치철새까지 덩달아 깨춤을 춘다. 나라는 망징(亡徵)을 보이는데 책임지고 수습하려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심산인지, 촛불민심 수렴은커녕 촛불 뒤만 졸졸 따르며 부채질만 한다. 정치권이 큰일이다. 이럴 바에야 국회를 해산하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내년 대선과 총선 일정을 맞추면 안성맞춤인데, 연목구어일 터이니 말을 말아야지. 요즘 ‘아직도 조중동 안 끊었느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보수 언론이 박근혜정부와 공범이라는 진단이고, 그들부터 탄핵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썩지 않은 분야가 없다는 한탄만 가득하다. 나라가 걱정이고, TK는 더 우려스럽다.

박근혜 정권의 실패는 이전 정권의 실패와 별로 다를 게 없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노태우 정권에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는 동안 어느 누구도 성공한 정권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 역시 실패를 하나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억하심정을 가질 만도 하다. 문제는 집권자의 후진 의식이 아니라 국민의 달라진 눈높이에 있었다. 여기에 직접민주주의가 가동될 여건은 SNS의 보편화 등으로 봄날을 맞게 됐다. 박근혜정권의 실패가 크게 부각되고 그것에 대한 반대의 물결이 노도(怒濤)를 이루는 것은 바로 시나브로 쌓여 온 나쁜 관행이 한꺼번에 터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박근혜정권이 폭탄을 맞았다 해도 틀리지 않다. 시대정신을 못 읽었다는 점에서는 때늦은 후회이자 자업자득이고 자승자박이다.

대구·경북, TK의 어제와 오늘은 어떠한가. 영광과 좌절 중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가, 엄중한 진단이 필요한 시절이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68년이 흐르는 동안 TK는 반세기에 가까운 40년을 집권했고, 11명의 대통령 중 5명을 배출하는 공전절후(空前絶後)의 역사를 써 왔다.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TK정권의 유구함은 아득히 먼 후대에 이르기까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주역이라는 주인공 의식은 TK 자부심과 자긍심의 원천이라 할 만하다. 빛이 밝으면 그늘도 긴 법인가. 공(攻)보다는 과(過)가 부각되는 한국판 문화혁명의 시기, 촛불행진은 희생양을 찾아나서고, TK가 그 전 정권의 실패까지 덤터기를 옴팡 뒤집어쓰고 숙청을 당할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TK 고립의 전조(前兆)는 지난 4·13 총선 결과와 남부권신공항 무산 등으로 조짐을 드러냈다. 당시 TK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를 당선시킴으로써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지역주의 장벽을 허무는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PK는 무려 7석의 의석을 야권에 내줘 상대적으로 붉은색 일색이었던 남부권 지도를 바꿔놓았다. 남부권 신공항 무산 과정에서 보인 TK의 지리멸렬은 현재진행형이다. 반면 서병수 부산시장의 배수진에 이은 새누리와 더불어민주당의 공조는 찰떡궁합을 보이며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TK는 개개인의 전투력은 물론 조직적 전략과 전술마저 통째로 밀렸다. PK의 변신이 TK를 포위하는 형국, TK의 미래가 궁벽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끝으로 우리의 보스정치는 종언을 고했다. 이제 더 이상 계파 보스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혁신의 명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러난 무능과 실체는 그동안 부풀려진 정계 보스의 보잘것없는 민낯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정치에 계파를 형성할 만한 영도적 정치인은 기대하기도 힘들게 됐다. 정당도 마찬가지 수순을 밟지 않고서는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 터이다. 정치적 이념도 철학도 빈곤한 새누리당은 잘 쪼개졌다. 새누리의 텃밭 TK도 정치적 분화와 분절이 절실하다.

TK의 정체성은 선비정신과 선공후사의 원칙에 뿌리를 대고 있다. 그랬던 TK가 지금 분명 정체성 상실의 위기를 맞고 있다. ‘동메달’이란 비아냥에도 꿀 먹은 벙어리 신세인 지역 정치권은 물론 지역을 대표할 리더십도 보이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TK를 대표할 인물과 리더십의 배양이 급선무이고, 퇴색된 대구정신의 회복이 시급한데, 갈 길은 멀고 해는 서산에 걸려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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