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행복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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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26 08:27  |  수정 2016-12-26 08:27  |  발행일 2016-12-26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행복한 가정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 너보고 돈을 벌라 했나, 아빠 어릴 때처럼 들에 나가 일을 하라 했나.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못난 놈이 내 아들로 태어날 줄은 생각도 못 해봤다. 회사에서 네 놈 점수 물을까봐 요즘은 사람 피하는 게 내 일과다. 대학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당장 내일부터 알바를 하든 무슨 짓을 하든 네 밥벌이 네가 해라.

# 당신은 고함만 치고 윽박지를 줄만 알았지 애비 노릇 제대로 한 적 있나요. 얘가 공부 못하는 것이 어떻게 엄마 탓인가요. 난 새벽밥 해 먹이고 학교로, 학원으로 열심히 태워줬어요. (아이를 향해) 이놈아, 네가 엄마 말 한 번이라도 귀담아들어 준 적 있냐. 못난 놈. 그렇게 빌며 공부하라고 할 때는 말 안 듣더니, 시험은 네가 못 쳐 놓고 눈물을 왜 흘리냐. 난 이제 엄마 노릇도 아내 노릇도 다 싫으니 같은 성을 가진 두 사람이 앉아서, 대학을 가든 말든 결정하세요.

정시지원 상담 중에 부부가 아이 앞에서 말다툼을 하다가 엄마는 남편의 말을 더 들을 수 없다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버지도 아들을 한참 노려보더니 나가버렸다. 아이는 혼자 남아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착한 존재가 사람의 손에서 모든 것이 타락한다”는 루소의 ‘에밀’ 첫 구절이 떠올랐다. 부모는 아이가 성장하는 데 최고의 조력자이면서 동시에 아이의 성장에 엄청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일찍 죽는 것이다”라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도 떠올랐다. 망측한 말이 아니다. 부권의 권위, 독선적 사고 등으로 아이를 억압하지 말라는 뜻이다.

아이에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니 점수에 맞는 대학에 가서 멀리 보고 열심히 하라고 타일렀다. 앞으로는 엄마 아빠의 시대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점도 설명해 주었다. 다양한 전공과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도시 농업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나는 정말 훌륭한 생각이라며, 관련 학과에 지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부모님을 다시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아들이 그 누구보다도 좋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며, 아이의 점수로 원하는 대학에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라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첫 구절을 들려주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건강해야 한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경제력과 가족 전체가 참여하는 활동, 그리고 각자가 추구하는 꿈이 있어야 한다. 아빠는 경제 활동을 열심히 잘 하고 있고, 엄마의 노력으로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아들은 훌륭한 육종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으니,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대화를 파국으로 이끌지 말고 가능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라는 조언을 했다. 서로 믿고 사랑하고 꿈을 가진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답은 나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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