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수직적 권력 배분이 중요하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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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28   |  발행일 2016-12-28 제31면   |  수정 2016-12-28
[박재일 칼럼] 수직적 권력 배분이 중요하다

오래전 경찰 출입기자 시절, 폭력 사건 조서를 읽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째려본다는 이유로…’다. 술집에서 혹은 식당에서 싸움이 났는데 그 촉발이 째려본다는 것이다. ‘건방지게 굴어서’ ‘빤히 쳐다 봐서’도 뒤따라오는 사유다. 이 얘기를 검사에게 했더니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친 기억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를 봐도 한국인은 이런 유의 불쾌감에 굉장히 민감해 하는 것 같다. 기자를 째려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출석했는데, 벽두부터 자세를 바로 고쳐라, 태도가 그게 뭐예요란 질타로 시간을 보냈다. 왜 메모하는 자세를 취하는가란 이해하기 어려운 추궁도 있었다. 이건 약과고 다른 증인을 대상으로는 자식이 본다, 몇 살이에요, 머리 굴리지 마세요, 심지어 당신은 천국 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는 극언도 나왔다.

출석한 증인들이야 범죄혐의로 코너에 몰린 데다, 또 국민의 대표라고 스스로 방방 뜨는 국회의원 앞이라, TV로 생중계되는 상황이라 기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저건 청문회의 합리적 관계가 아니라고 의심되고, 또 한편 우리 국회의원의 수준이 저것밖에 안되나 하고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통령 권력,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가 함께 째려보는 수준이라면 곤란하지 않은가.

제주특별자치도의 부지사로 있다가 얼마전 명퇴한 친구가 말했다. 참 청렴한 공직자인데, 그는 100만 촛불시위에, 대통령이 쫓겨나기 일보직전인 대한민국이 굴러가는 이유가 뭐냐고 묻고는 스스로 답했다. 지방자치의 존재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이 겨우 공직에 발 디뎠을 무렵 1987년 6·10항쟁이 있었는데, 온 나라가 들썩이고 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는 것. 이젠 공무원이 지방, 중앙으로 분리돼 책무가 다르고, 또 자치단체장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 제 위치를 지키는 요인이 나라를 덜 흔들리게 한다는 분석이다. 머리는 부패해도 실핏줄이 도니 그나마 굴러간다는 의미다. 탄핵 정국이 시작되면서 대구시나 경북도 공무원들로부터도 많이 듣는 논리다. 수긍이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비적 통치’의 밑바닥이 드러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고쳐보자는 주장들이 있다. 개헌론이다. 의원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의 권력구조 개편안이 제시된다.

질주하는 성향이 농후한 권력을 제어하자는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한편 이런 주장들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함정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권력의 나눔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서 나온 기득권 논리의 연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만해도 따지고 보면 대통령의 권력을 국회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대한민국 국회는 입법권에다 사실상의 행정권까지 몽땅 가져올 그런 역사적 당위성을 우리에게 증명했는가.

그럼 우리는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가. 21세기 현시점의 대한민국 권력의 문제는 한 곳, 장소성으로 서울-중앙이란 공간에 너무 밀집해 있다.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경제권력도 집중돼 서로 거래를 하기 쉬운 구조다. 이건 세계적 트렌드와도 역행한다.

일례로 최순실 국정농단의 놀이터가 된 문화체육관광부만해도 그렇다. 문화와 체육, 관광이 어떻게 중앙집권적 한 줄기 지시에 의해서 융성할 수 있겠는가. 교육부도 마찬가지다. 현장 교사 개개인의 자질과 사명감이 중앙 공무원의 일률적 지시보다 훨씬 더 중요해진 시대가 아닌가.

개헌을 한다면서 중앙권력을 나눠먹기하겠다는 발상을 거둬야 한다. 다시말하면 ‘그들만의 수평적 분권’이 아닌 ‘지방으로의 수직적 권력분산’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지방자치 분권(分權)이다. 지방의회에 입법권을 부여하고, 지역 교육청에 훨씬 더 많은 자치를 주고, 시장·군수가 그들 스스로의 살림을 알뜰히 챙기며 질높은 공동체를 꾸려가는 권한을 주어야 한다.

‘지방분권 개헌론’은 그래서 시대과제가 됐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이지, 서울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지방자치국가임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 지역을 대표할 장치인 상원제(上院制)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말까지는 하지 않겠다.
박재일기자 park1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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