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改’의 시대와 TK의 자기부정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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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29   |  발행일 2016-12-29 제31면   |  수정 2016-12-29
[영남타워] ‘改’의 시대와 TK의 자기부정

2016년은 대한민국의 위기인 동시에 대구경북의 위기이기도 했다.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되면서 대구·경북 전체가 공황에 빠졌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일방적 배치로 성주와 김천은 사색이 됐으며, 역대 최강의 지진은 경주를 비롯한 경북 동해안지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지역적 상실·모멸감에 이은 자연적 재난이 쓰나미처럼 덮쳤던 것이다. 흉흉해질 대로 흉흉해진 지역민심에 정점을 찍은 것은 정치적 재난이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비롯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보수당(새누리당)의 분열은 현 정권의 산지(産地)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인)의 정치적 스탠스에도 대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TK, 대구·경북의 정치적 수사(修辭)인 TK는 보수(保守)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역대 대통령 11명 중 무려 5명이 대구·경북과 인연이 있으며, 이들 정권이 흔히 말하는 보수정권인 탓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TK정권은 햇수로만 따져도 40년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0년 현대사 중 60%에 해당하는 세월이다. 권력저항의 역사보다 권력향유의 역사가 길다 보니 TK가 정권을 잡지 못하는 시기가 오면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TK를 홀대한 김영삼정권과 김대중-노무현정권을 거치면서 잃어버린 10년이니, 15년이니 하며 상실감을 표현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다.

하지만 냉정히 짚어봐야 할 것은 대구·경북인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TK정권이 제대로 구현했느냐다.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이고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를 ‘진짜 보수’라 할 수는 없다. 왜 현대사에서 그런 모습들은 꼭 TK의 몫이 돼야 하는지 한탄스럽기까지 하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국민을 위한 정치철학과 국가비전이 아니라 자신과 당파, 기득권층을 위한 정치공학에 목숨 건 정치인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게 TK정치권의 현실이다. 국민적인 욕을 먹는 보수가 대구·경북인이 지지하는 보수는 아닐진대, 선거 때만 되면 꼭 이런 부류들만 당선되는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촛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는 점에선 이론(異論)이 없다. 하지만 촛불만 있고 대통령을 잘못 뽑은 데 대한 국민적 반성은 없다. 국민이 뽑아놓고 국민이 탄핵하는 건 차선은 될지 몰라도 최선은 아니다. 촛불을 들고 광장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 할 수 없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거리로 뛰쳐나와 저항한 국민과, 자신이 선출해 놓고는 다시 탄핵의 촛불을 든 국민 사이엔 엄연히 차이가 존재한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의 보다 근원적인 책임은 국민이 져야 한다. 대통령을 잘못 뽑은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제2의 최순실은 또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대구·경북인은 어떤가.

서울 광화문 앞 수백만 개의 촛불을 바라보는 대구·경북인의 마음이 복잡미묘하다.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동시에 수긍하기 힘들어한다. 명백히 드러난 불의를 보고도 대다수가 함께 촛불을 들지 못하는 근저에는 ‘자기부정’을 하기 힘든 상황이 깔려있다. 대다수 국민이 손가락질하는 대통령이 바로 대구·경북인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인은 대통령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부터 직시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개(改)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헌법을 고치고, 보수(保守)를 고치고, 경제를 고치고, 사회를 고치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수백만 촛불이 담고 있는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대구·경북인은 ‘改의 시대’ 어디로 갈 것인가. 박근혜가 ‘통일대박’이라 하면 괜찮고, 노무현이 ‘남북화해’에 나서면 빨갱이로 모는 것이 정녕 대구·경북인의 정신인가. 세상이 다 변하려고 움직이고 있는데 낡은 보수의 끝자락에 계속 매달려선 결코 시대를 리드할 수 없다. 기존 정치인에 기대지 말고 대구·경북인 스스로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부정’은 그 첫걸음이다. 이젠 TK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같은 정치인을 보고 싶다. 변종현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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