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남해도 관음포와 설흘산 가천 다랑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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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30   |  발행일 2016-12-30 제37면   |  수정 2016-12-30
뭍으로 깊숙이 들어온 바다…산과 벗하며 옛 이야기 조곤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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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산 능선의 아름다운 리지(ridge)와 남해섬의 수려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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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마을 쉼터에서 매봉산으로 가는 절경의 능선길과 단풍으로 물든 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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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 다랑이 마을의 논밭과 남해 바다의 비경이 어우러져 그림같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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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락사에 있는 이순신 통제사의 마지막 유언비.

진교IC에서 내린 버스가 30분을 달려 금오산 자락을 돌아나가자 몽매에도 그리던 남해대교와 노량해협의 겨울정경이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이제 저 바다 위의 연육교 남해대교를 건너면 남해섬에 들어가게 된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수려하게 돌출한 한반도의 마지막 내륙이 한 번 바다에 잠겼다가 떠오른 꽃송이들, 그중 남해도는 단연 출중한 꽃이다.

버스가 남해섬으로 들어서자 차창 밖으로 섬 풍경이 시작된다. 왼편 아래 상가마을 앞, 거북선이 바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고 그 뒤 해송으로 둘러싸인 곳에 충렬사와 성웅 이순신의 가무덤이 있다. 관음포 바다, 일명 이락포(이순신이 전사하여 큰 별이 떨어졌다는 뜻의 포구)에서 전사한 이순신 통제사를 고향으로 이장하기 전 3개월간(?) 매장하였던 장소로, 이장 후에도 봉분은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갑자기 진눈깨비가 내린다. 남해의 진눈깨비는 마치 우리를 환영하는 양, 흰 나방처럼 쏟아져 내린다.

진눈깨비 춤사위에 정신이 팔려 오락가락하는 동안 차는 이락포 주차장에 닿는다. 문화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첨망대로 걸어가는데 그 길가 앞 소나무 숲을 따라 동백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다. 차가운 겨울 날씨 남해의 해풍 속에 붉은 가슴을 열고 남해 인어들이 부르는 상사곡에 맞춰 휘파람 소리로 흔들리는 동백꽃 무리. 나는 아득한 곳, 깊은 내면에서 솟아 올라오는 야릇한 함성을 들었다.

남해대교 건너 펼쳐지는 남해섬 풍경
임란‘7년전쟁의 끝’노량해전 관음포
충무공 전사한 바다로 일명 ‘이락포’
첨망대선 파도돼 밀려오는 위용 심금

선구마을서 매봉산 지나 설흘산까지
시선만 돌리면 神話처럼 안기는 바다
간혹 나타나는 암릉 타는 재미도 쏠쏠
가천마을 다랑이·음양석 별난 볼거리


◆이락포 바다 첨망대 트레킹

우리는 첨망대에 도착했다. 진눈깨비는 그 사이 사라졌다. 우리 민족사에 가장 큰 상처의 하나로 남아 있는 임진왜란이 정유재란으로 변하고 그 침략이 막을 내리는 역사의 장이 이곳이다. 때는 1598년 음력 11월19일, 한밤중인 축시부터 조명 연합수군과 조선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하는 일본의 대 함대가 묘도쪽에서 접전을 벌였다.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싸움이었다. 아무래도 바다싸움에서는 도망가는 편이 밀리기 마련이다. 당시 왜 함대는 선진 조선 기술과 오랜 바다싸움에서 익힌 전투력을 갖춘 동양최대의 함대였다. 싸움이 무르익어 갈수록 승패는 갈라져 도망가는 왜 함대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드디어 동북아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세 나라의 함대가 노량해협으로 나왔다. 노량은 남해 노량과 하동 노량으로 나뉜다. 황망히 쫓기던 왜 함대가 바닷길을 잘못 들어 나가는 물길이 막힌 관음포 앞바다, 지금 우리가 잡목림 사이로 쳐다보고 있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 바다로 들어갔다. 이미 날은 밝아 아침을 훨씬 넘어서 있었다. 이순신 통제사는 왜 함대의 추격을 멈추라는 정지 북소리와 깃발을 올렸다. 막다른 길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조선함대는 모두 멈추었다. 그러나 승전의 기분에 빠져 막무가내로 돌진하던 명나라 함대는 왜 함대를 따라 관음포 바다로 들어갔다. 그러나 물길이 막혔다는 것을 알고 되돌아 나오는 왜 함대의 반격은 실로 가공할 만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절체절명의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최후의 기력과 축적되어온 왜의 전투력 앞에 명의 함대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명의 부총병 등자룡의 배가 불타 격침되고, 총병 진린의 기함마저 적에게 포위되어 위급했다.

이를 보다 못한 이순신 함대가 진린을 구하기 위해 들어갔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날아온 적의 탄환이 이순신의 왼쪽 겨드랑이를 맞춘 것이다. 이순신은 숨을 거두기 전 곁에서 싸우던 아들 ‘희’와 조카 ‘완’을 향해 “방패로 내 앞을 가려라. 싸움이 한창 급하므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노량해전에서 200여척의 적선이 격침되고 50여척의 왜선이 도망갔다. 이리하여 7년 동안의 긴 전쟁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전쟁 후 왜적은 지난 역사에서 그렇게 끈질기게 쉬지 않고 해오던 조선침략을 멈추었다. 적어도 왜가 근대의 함대로 무장하기 전까지 300년 동안은. 그렇다면 성웅 이순신은 남해 호국의 용이 되어 왜적으로부터 바다를 지켜준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저렇게 아름다운 곳을 골라서 돌아가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결의 가득 찬 위엄의 얼굴이 남해의 파도 되어 밀려와 심금을 울린다.

◆선구마을서 가천 다랑이 마을 미륵바위까지

이락포를 지나 사촌해수욕장이 보이는 선구마을 언덕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산 들머리에 서 있는 노목을 쳐다본다.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많은 세월의 인고를 나이테에 담아 견뎌왔겠는가. 나무여, 팔을 벌려 지나는 나그네를 포옹해 주는 너그러운 나무여.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 왔다. 웃거나 울 때 바람소리가 나던 숲, 그 숲의 입술인 나뭇잎이 여기저기 비죽이 보인다. 그 바다, 그 나무의 사랑이 느껴지는 이곳은 너무 아름다워 발길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겨우 걸음을 옮겼다. 짧은 가시거리지만 바다는 두 눈이 얼얼하도록 푸른 미소를 지으며 영겁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좌편으로는 남해도의 명산 송등산에서 망운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가물거리며 수려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기암괴석과 남해의 늦은 단풍으로 황홀한 능선의 경치. 시선을 틀기만 하면 무슨 신화처럼 가슴에 안기는 바다를 보며 걷는 것은 마치 꿈속 같다. 간혹 암릉이 나타나 스릴을 느끼지만 잘 정비된 지주대와 보호 밧줄로 위험은 전혀 없다.

이렇게 바다를 툭 터지게 보고 게다가 암릉 타는 재미까지 쏠쏠한 길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거의 1시간 30분을 걸어 매봉산 지나 설흘산 정상에 올랐다. 복원되어 있는 봉수대에 오르니 더욱 시야가 넓어지고 이제는 가까이에 남해의 명산 금산과 노도가 선연히 보인다. 정상 봉수대는 먼저 온 탐방객들로 만원을 이룬다. 말씨를 들어보니 전국 각지에서 모인 것 같다. 나는 망연히 서서 겨울바다와 바다를 부둥켜 안고 있는 먼 하늘을 보며 야릇한 허탈감에 몸서리를 친다. 오늘의 피크헌팅은 마침 종을 치는데 왜 새로운 갈증과 그리움이 시작되는지.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타는 바닷물처럼, 저 바다는 종적을 알 수 없는 모험과 그리움으로 누워있다.

시선을 당겨 서포 김만중이 귀양 와서 어머니를 위해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저술했다는 노도를 바라본다. 배를 젓는 노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한다는 섬, 그래서 노도이다. 저렇게 외로운 섬에서 생활하면서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책을 저술했다는 서포의 효심이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앞바다는 이름이 앵강이다. 바다임에도 강으로 부른다. 강처럼 아름답고 물이 고요해 그렇게 부른다. 바다를 강으로 부르는 선인들의 유유자적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앵강을 보다가, 먼 바다를 다시 본다.

다랑이 논으로 유명한 가천으로 가기 위해 임도로 걷는다. 30분이 걸려 가천마을에 당도한다. 포장도로에서 다시 마을집이 있는 해변쪽으로 10여분 내려가서 가천마을의 전설인 음양석을 탐방한다. 남자 심벌을 닮은 큰 돌과 임신부를 닮은 작은 돌이 나란히 서 있다. 이 돌을 미륵님이라고도 한다. 성(性) 숭배 사상의 일면을 본다.

장차 오신다는 미륵도 인간이라면 성(性)을 통해서 태어난다. 저 음양석은 미륵을 탄생시키는 신화의 돌이다. 우리 시대에 과연 미륵이 나타날 것인가. 나는 다시 포장도로로 올라오기 위해 발길을 옮긴다. 오늘 트레킹은 내 마음 어디론가 흘러갔다. 왜 길이 끝날 때마다 외로움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게 만드는 것일까.

글=김찬일<시인·대구문협 이사>
사진=김석<대우모두투어 이사> kc12taegu@hanmail.net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 이락사 - 첨망대 (왕복) 선구마을로 이동 / 쉼터 - 능선길 - 매봉산 -설흘산 - 가천 다랑이 마을

▶문의: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055)860-8601, 이락사 관광안내소(055)863-4025, 가천 관광안내소 (055)863-3893

▶내비게이션 주소: 남해 관음포(경남 남해군 설천면 설천로 1181)

▶주위 볼거리: 용문사, 남해금산, 미조 항, 지족해협 죽방렴, 독일마을, 남해대교와 충렬사, 국립남해 편백 자연 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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