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새날 여는 鷄鳴聲(계명성)과 촛불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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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02   |  발행일 2017-01-02 제39면   |  수정 2017-01-02
[월요칼럼] 새날 여는 鷄鳴聲(계명성)과 촛불

‘닭이 홰를 치면서 맵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어둠을 짓내몰아 동켠으로 훠언히 새벽이란 새로운 손님을 불러 온다’ (윤동주 ‘별똥떨어진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을 자괴감에 빠트린 병신년(丙申年)이 가고 붉은 닭의 해 정유년(丁酉年)이 밝았다. 삿됨과 거짓과 악귀를 몰아내고 새날을 알리는 우렁찬 계명성(鷄鳴聲)과 함께. 흔히 닭은 오덕(五德)을 지닌 상서로운 길조라고 말한다. 즉 관(冠)을 상징하는 닭의 벼슬은 문(文), 날카로운 발톱은 무(武), 적을 봐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성격은 용(勇), 먹을 것을 무리와 함께 나누는 행동은 인(仁), 때를 맞추어 울어서 새벽을 알리는 습관은 신(信)이다. 계유오덕(鷄有五德)은 중국 한나라 학자 한영이 쓴 시경 해설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고사로 전요(田饒)라는 이가 노(魯)나라 애공(哀公)에게 임금이 갖추어야 할 덕을 비유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닭은 천명(天命)이나 천복(天福)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도 한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나 새 임금의 탄생을 알리는 예지력을 가진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신라 박혁거세가 태어날 때 계룡이 나타났고, 김알지가 알로 출현할 때도 흰닭이 계림에서 울었다. 이성계도 닭 꿈을 꾸고 조선을 건국했다고 전해진다. 역사 속 닭의 해는 우리 민족의 전환점이 된 순간도 많았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97년 정유년에 13척의 배로 왜선 300여척을 무찔러 명량대첩을 이끌었고,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 어둠에서 벗어나 광복을 이룬 1945년도 닭의 해다.

닭은 여명(黎明)과 축귀(逐鬼)의 상징이다. 닭의 울음소리는 어둠을 몰아내고 아침을 부르는 빛과 희망을 의미했으며, 닭 울음소리와 함께 새벽이 오면 악귀도 물러간다고 믿었다. 그런 점에서 계명성은 자신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고 새벽을 기다리는 촛불과 서로 통한다. 촛불은 전통적 의례나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면서 세속을 초월한 숭고한 불빛이라는 상징성도 가지고 있다. 부부가 백년가약을 맺는 초례상에는 닭과 촛불이 함께 자리한다.

지난해 전국을 휩쓸었던 꿈과 희망의 촛불은 새해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16년 마지막 날인 12월31일에도 110만여 개의 촛불이 광장을 밝혔다. 지난 10월29일 첫 촛불집회 이후 63일 만에 참여 연인원이 1천만명을 돌파했다. 이들이 외친 함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만이 아니었다. 부패한 특권층과 정경유착, 패거리 정치 등 우리사회의 누적된 모순과 적폐를 개혁해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을 만들라는 분노였다. 소득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등 불평등과 양극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라는 명령이었다.

새해에는 촛불민심을 받들어 정치시스템을 혁신하고 국가개조에 나서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정치권은 1천만 촛불의 요구를 법률과 시스템으로 제도화하고 실행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다. 그 첫걸음이 개헌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선출된 6명의 대통령은 모두 친인척 등 측근비리로 실패한 만큼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을 바로잡아야 한다. 아울러 개헌이 중앙권력구조 개편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진정한 지방자치, 지방분권, 균형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지방분권형 개헌이 돼야 한다.

정유년 닭의 해도 정국이 요동치면서 숨가쁜 격동의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순실게이트 특검조사,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정계개편, 조기대선, 개헌논의 등 대형 이슈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경제도 장기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도자의 리더십과 통찰력이 중요하다. 특히 올해는 대선의 해다. 반드시 국가혁신의 비전과 실천의지를 갖춘 후보자를 뽑아야 한다. 두 번 다시 위선과 불통에 속지 않도록 국민 모두가 두 눈을 부릅떠야 할 것이다. 국운을 가를 닭의 해를 맞아 대한민국호가 웅계일창천하백(雄鷄一唱天下白)의 기상으로 다시 한번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월요칼럼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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