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충남 서산 간월암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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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06   |  발행일 2017-01-06 제36면   |  수정 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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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때면 섬이었다가 썰물 때면 길이 나는 간월암. 무학대사가 어느 날 달을 보며 깨우침을 얻었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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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맞은편에 해수기룡관음보살을 모신 작은 전각이 있다. 용을 휘감은 해수관음이 바다에 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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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의 기둥들이 부처님이다. 선방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그보다 먼저 부처님을 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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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에 닿으면 가장 먼저 장승들과 마주한다. 보살님들과 사천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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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대웅전 앞마당 나지막한 담장에 조르라니 내려앉거나 포르르 날아 겨울나무 빈 가지에 올라앉으며 섬을 지키고 있다.

여기에 서면 안면도 긴 섬이 으스레하고, 저기에 서면 내륙의 홍성 땅이 아스라하다. 또 여기에 서면 가까운 뭍이 먹먹하고, 또 저기에 서면 한없는 남쪽 바다가 막막하다. 몇 걸음 만에 사방 세상을 마주하는 작은 섬이다. 섬에 들어보니, 이곳을 수행처로 삼은 이들은 저 모든 아슴아슴한 것들의 진격을 어찌 물리쳤을까 싶다.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깨달음 얻은 암자
육지서 절집 50m…예전엔 쪽배로 왕래

섬에 닿으면 가장 먼저 반겨맞는 장승들
법당 맞은편 전각엔 해수기룡관음보살
바위마다 아슬한 돌탑과 ‘산신각’ 눈길


◆부석면 간월도리 간월암

충남 서산의 남쪽 부석면(浮石面). 그 남쪽은 옛날 섬이었던 간월도리, 또 그 남쪽은 천수만이다. 간월도리의 가장 남쪽이자 천수만의 가장 북쪽에 간월암(看月庵)이 있다. 섬에, 섬만 한 절집이 올라앉아 있다. 숫제 섬이 암자고, 암자가 섬이다. 바다가 들면 섬이고 바다가 나면 뭍이다. 작다. 아주 작아서 차라리 갯바위다. 바다에 부양(浮揚)되는 부석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서산 사람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깨우쳤다’ 해서 간월(看月)이다. 옛날에는 피안도(彼岸島) 피안사(彼岸寺)라고도 했다 한다. 간월암은 조선시대에 무너졌다. 무학대사가 떠나자 양반들은 절을 뜯어내었고, 명당이라 하여 묘를 지었다. 암자가 다시 세워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 만공(滿空) 스님에 의해서다. 스님은 1941년에 불사를 매듭짓고 광복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렸다. 그 후 광복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육지에서 절집까지는 50m 정도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길에 ‘간월도 1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길은 없어도 있는 셈이다. 예전에는 작은 뗏목 아래 튜브와 같은 부기(浮器)를 몇 개 단 쪽배를 타고 드나들었다 한다. 육지에서 섬까지 긴 밧줄이 매여 있었고, 쪽배에 올라 밧줄을 잡아 당겨 섬으로 갔다. 몇 해 전 쪽배를 없앴다. 이제 물길이 나면 들고, 바다가 들면 그저 바라볼 뿐이다. 간월도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한 부부가 방파제에 서서 간월암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길이 나고 있어! 10분만 더 기다릴걸!” 기다리다 돌아섰지만, 아쉬워 서성이던 마음에 바다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들은 다시 간월암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길을 만난 나는 얼마나 행운인가. 우리 모두가 행운이었다.

◆간월암에 들어

간월도의 남쪽 끝 벼랑에서 뭍이 된 간월암을 보는 것이 좋았다. 차안과 피안의 경계문이 열린 것만 같았다. 자갈길은 축축하다. 깊이 모를 늪처럼 조금 두려웠지만, 걸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양옆의 바다는 빠르게 물러났다. 바다에 발을 담그고 서있는 커다란 바위들이 마치 사천왕처럼 느껴졌다. 섬에 닿자 가장 먼저 장승들과 마주한다. 비파와 보검과 용과 보탑을 든 네 분은 분명 사천왕이시다. 바위천왕과 나무천왕이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해탈문으로 오르는 계단을 두고 간월암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오른다. 아슬아슬 겨우 손 닿는 바위마다 거친 돌들이 탑으로 서있다. 섬이 조금 높아지면, 부처님이 새겨진 기둥들이 울타리를 이룬다. 곧 천장 낮은 선방이 바다를 향해 자리한다. 선방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보다 먼저 부처님을 뵐 것이다. 조금 더 올라 간월암의 남쪽에 다다르면 대웅전 앞마당으로 오르는 문이 열려 있다. 나지막한 담장에 새들이 조르라니 앉았다.

섬의 한가운데에 다섯 칸 법당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현판은 ‘看月庵(간월암)’이다. 법당의 맞은편에는 바다를 등지고 선 전각에 해수기룡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용을 휘감은 해수관음이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다. 법당의 오른쪽에는 한 칸 산신각이 자리한다. 바다에 산신각이라니 어쩐지 갸웃했지만, 바다의 산이란 이 섬 자체일지도 모른다.

먼지 없는 흙 마당에는 250년 되었다는 사철나무와 150년 되었다는 팽나무가 강녕한 모습으로 서있다. 담장 위의 새들이 후루루 날아 법당 앞마당에 내려앉았다가, 포르르 날아 겨울나무 빈 가지에 올라앉았다. 쟁반 위의 구슬처럼 또르르 또르르 굴러다니는 듯하다. 어디든 갈 수 있을 텐데, 새들은 멀리 떠나지 않고 섬 안을 날았다.

◆어리굴젓과 방조제

간월도는 천수만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1984년에 육지와 연결되었다. 이후 어장환경은 많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대신 교통 환경은 좋아져 간월암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관광업은 성장했다. 횟집과 특산품 가게도 많이 생겼다. 간월도는 굴이 유명하다. 굴은 자연굴인 토화와 양식굴인 석화 두 종류가 있는데, 빛깔이 가무스름하고 알은 작지만 맛이 뛰어나다. 특산물은 어리굴젓이고 굴밥이 유명하다. 특히 어리굴젓은 조선시대 궁중의 진상품이었다. 무학대사가 이곳에 있을 때 이성계에게 어리굴젓을 보낸 후부터라 한다.

1942년 봄, 서른의 성철 스님은 스스로를 이 섬에 부려 가두고 참선에 들었다 한다. 일 년이라고도 하고, 이 년이라고도 하고, 두 계절이라고도 한다. 무학대사의 달을 스님도 보셨을까, 생식을 하셨다는 스님은 어리굴젓 맛을 보셨을까.

멀리 일직선으로 뻗은 방조제가 보인다. 토화의 생산량은 감소시켰지만 어리굴젓의 판매량은 높인 묘한 녀석이다. 저 너머가 피안 같다. 으스레한 서쪽의 안면도도, 아스라한 동쪽의 홍성 땅도, 먹먹한 북쪽의 간월도도, 막막한 남쪽의 바다도, 여기서는 모두가 피안 같다. 이마에 손을 얹고 달을 본다. 한낮에 달은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햇님은 구름 속에 분명 계신다. 모두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꼭 온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서울, 대전 방향으로 간다. 대전 지나 회덕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 251번 지선을 타고 당진 전주방향, 다시 유성 분기점에서 30번 고속도로 당진방향으로 간다. 당진 분기점에서 15번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남하하다 홍성IC로 나간 후 96번 지방도를 타고 서산방향으로 가면 된다. 서산 방조제를 지나면 바로 간월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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