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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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07   |  발행일 2017-01-07 제22면   |  수정 2017-01-07
“한국경제 외환위기 직후인 98년과 유사…장기실업자 늘고 기업여건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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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윤 연세대 교수가 지난 4일 연세대 상경대학 내 자신의 연구실에서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 교수는 “공정한 경쟁에서 소외된 경제 주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정부 재정 지원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며 정부 재정 지원이 지역에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초기에 경제활성화 추진했어야
지금은 탄핵정국으로 추진력 떨어져
추가 경기 하락 막는데 집중할 필요

정경유착 근절 ‘징벌적 배상제’ 제안
기업들 공정 경쟁할 환경 조성으로
시장 개척 신제품 만들어 위기 극복

양질의 일자리로 중산층 기반 강화
도로·철도·항만·환경 등 인프라 투자
지방경제 활성화로 시너지 효과 내야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0%에서 2.6%로 대폭 하향했다. 3%대 성장률을 고수해 온 정부가 성장률을 2%대로 제시한 것은 IMF 외환위기 여파가 몰아쳤던 1999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우리 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을 정부마저 인정했다는 의미다. 국가 경제가 좋지 않으면 지역경제도 좋을 수 없다. 영남일보는 글로벌 금융 전문가이자, 거시 경제 전문가인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부)를 만나 한국 경제의 문제점과 해법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연세대 상경대학 내 성 교수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해 12월29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지금 우리 경제는 다시 엄중한 시험대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가.

“내수침체가 장기화된 가운데 미국 경기 회복에 따른 금리인상 움직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보호무역주의를 비롯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위험요인이 가중되고 있다. 또 기업매출이 2년 연속 감소했고 수출도 줄어드는 등 전반적인 기업여건도 안 좋다. 여기에다 고용사정마저 어려워져 장기실업자가 늘면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유사할 정도다. 다만 현재 외환보유고가 어느 정도 확보돼 있어 외환위기 가능성 자체는 낮다고 본다.”

▶미국발 금리인상, 1천3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탄핵 정국,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 등 대내외 리스크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가운데 2017년을 맞게 됐는데 전망은.

“경기침체의 장기화는 결국 임금근로자들의 고용여건을 불안하게 만들면서 비자발적 자영업자나 실업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 역시 신규 투자 목적이 아닌 사업자금·생계자금 확보를 위해 빚을 낸 탓이 크다. 결국 가계부채문제 해결의 핵심은 총체적이고 과감한 정책 수행으로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에 있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 탄핵 정국 등으로 정책 추진력이 떨어져 있어 과감한 정책 수행은 힘들 것이다. 따라서 일단 추가적인 경기하락을 막기 위한 노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한 소비진작 방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신통치 않아 보인다.

“사실, 국민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정권 초반에 확실한 정책 방향을 잡고 강력히 추진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정권 초기에 경제 민주화에서 경제 활성화로 방향 전환을 하며 실기했다. 그나마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있었을 때가 정책 방향성과 추진력을 보여줬던 유일한 시기였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보긴 힘들다. 정책을 통해 경제주체들이 미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를 갖고 소비와 투자 행태를 바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 역할인데, 이번 정부는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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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이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진입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는데, 돌파구가 있을까.

“한국경제가 장기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혁신 지향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중산층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중산층을 육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책과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국내에서 창출해 중산층의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저소득·저신용 계층에 대한 재정·금융상의 지원도 강화돼야 한다. 또 세제와 규제 합리화 등으로 해외로 이전하려는 기업을 국내로 불러들여야 한다.”

▶지역경제 역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 주도의 수도권 개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기업들이 국제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를 합리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재정지원의 성격이 들어간 정책들은 지역에 집중돼야 한다. 재정지원은 결국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 경제주체들에게 집중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중산층을 육성하고 경기를 회복시키기는 어렵다. 따라서 중앙정부 재정이 들어가는 지원 사업은 지역경제육성과 밀접하게 결합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도로·철도·항만·에너지·환경 등과 관련된 인프라 투자 역시 지역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웬만한 인프라가 갖춰진 수도권은 규제 완화로 민간 투자에 전적으로 맡기고 정부 재정은 지역 인프라, 특히 관련 산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인프라 투자에 집중돼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 같은 운하 형태의 사업은 바람직하지 않다. 운하와 연계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얼마나 된다는 건가. 재정지출로 감당해야 하는 정부정책의 역할이 커지는 것이 시대적인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 일자리 창출과 효과적으로 관련된 분야에 재정을 지출하는 것이 정부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정경유착의 민낯이 또다시 드러났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정치권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사적이득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경유착의 고리는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해 불법적으로 이득을 얻은 경우 천문학적 손실을 보도록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징벌적 배상제도가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 미국이 로비스트를 합법화시킨 것은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함께 식사하는 것을 규제하는 등 개인 간의 행위 자체를 제한하는 법이다. 이렇게 되면 합법적 경제 활동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에서의 이기주의는 법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법을 어겼을 경우 강력한 처벌을 내려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합리적이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돼야 기업들이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이다. 특히 내수 시장 총량 자체가 작은 소규모 개방 경제인 우리 나라의 경우 해외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신제품을 만들어 내면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시장에서 성과를 평가받고 자원의 배분이 결정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해야 한다. 김영란법이 여기에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익의 추구가 공익으로 연결되는 조화로운 시장이지, 승자의 독식을 방치하는 위험한 정글이 아니다. 이는 이념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고 의지만으로 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올바른 의지를 갖추면서 냉철하게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지가 향후 우리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미래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글·사진=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성태윤 교수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학사·석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한국경제학회 청람상(한국경제학회에서 가장 연구 성과가 뛰어난 만 45세 미만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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