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정치재판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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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7

최병묵 정치평론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속도를 내고 있다. 첫 변론은 3일 시작했다. 이틀만인 5일에도 증인을 신문했다. 1주일에 두 번을 심리하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심판은 흔한 일이 아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때의 전례가 있지만, 그때와 비교해도 이번엔 속도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이 해외출장 도중 탄핵안 가결 소식을 듣고 일정을 단축해 서둘러 귀국한 것만 봐도 그렇다. 탄핵심판을 집중 심리할 3명의 수명(受命) 재판관에 3월13일 임기가 끝나는 이정미 재판관을 굳이 포함시킨 것도 조기 결론 의지로 읽힌다. 이들은 요즘 휴일없이 일하고 있다.

앞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신년사도 비슷한 기류를 풍겼다. 박 소장은 “오직 헌법에 따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법절차에 따라, 사안을 철저히 심사하여 공정하고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 여러분의 믿음에 부응하여 헌재가 맡은 역할을 책임있게 수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핵심 키워드를 뽑아보자면 ‘투명한 법절차’ ‘공정’ ‘신속’ ‘국민 여러분의 믿음에 부응’이다. ‘투명한 법절차’ ‘공정’과 같은 문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헌재 절차는 어차피 공개이고 ‘공정’이야말로 법조인이 항상 강조하는 문구이니 말이다.

‘신속’은 다르다. 대통령 탄핵으로 국정이 사실상 멈춘 기간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느냐 마느냐가 이번 사안의 핵심이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국회가 주장한 헌법과 법률 위반을 어느 것 하나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문외한이 봐도 ‘세월호 7시간’ 같은 경우는 헌법위반이 될 수 없다. 정치, 도의적 책임을 별개로 한다면 말이다. ‘공정’을 열 번쯤 강조하고 나서 ‘신속’을 거론했다면 몰라도 병렬(竝列)로 표현할 일은 아니다. 박 소장이 이를 의식했을까. 3일 심리에선 “이 사건을 대공지정(大公至正·매우 공정하고 지극히 바르다)의 자세로 엄격하고 공정하게 진행하겠다”고 했다. ‘신속’이 빠졌다는데 눈길이 간다.

‘국민 여러분의 믿음에 부응’이란 표현도 참 묘하다. 대통령 탄핵을 해야 한다는 여론조사가 80%를 넘은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탄핵을 헌재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비율도 70% 안팎을 보이고 있다. 법률적 의미는 별개로 치자.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국민의 믿음’은 당연히 박 대통령 탄핵이고, 탄핵안 인용(認容)이다. 그러므로 박 소장의 말은 탄핵 심판 초반에 이미 헌재가 결론을 정해놓은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헌법재판소를 두고는 항상 논란이 됐다. 헌재의 결정이 지나치게 정치권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유는 헌법 위반 8가지, 법률 위반 5가지다. 야권을 중심으로 1~2개 조항 위반을 먼저 보고 탄핵 사유가 명확하다면 나머지는 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과연 그럴까. 대통령이란 자리를 빼앗아야 할 1~2개 조항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헌법은 살인, 강도, 뇌물죄 등을 규정한 형법과 다르다. 조항 하나마다 선언적,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구체적이지 않은 것이 많다는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심판할 때도 헌재는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을 인정했지만, 그것이 곧 대통령 자리를 빼앗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해 기각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가장 크게 문제된 부분은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정농단죄’라는 것은 없다. 명확하게 사실로 확인된 국정농단의 사례를 각종 법 조항에 맞춰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현재까지 언론보도는 무성하지만 100% 위법이라고 믿을 만한 것은 많지 않다. 이런 것조차 법의 원칙상 무죄 추정이다. 헌재가 3월13일 이전에 결론내려면 최순실씨의 재판이 끝나지 않는 것은 물론 특검 조사(1차 종료는 2월말, 연장하면 3월말)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결심을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만큼 사실관계를 정밀하고 공정하게 따지는 것이 필수다. 그전에 헌재가 오해를 부를 언행을 삼가야 하는 이유다.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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