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역사교과서의 조건,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보편적 가치 함양”

  • 이효설,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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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09 07:52  |  수정 2017-01-09 07:54  |  발행일 2017-01-09 제15면
대구에 모인 전국 교사들 ‘역사교육’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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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역사교사 모임이 6일 오후 대구공업대 강당에서 주최한 특강에서 김상숙 박사가 ‘1946년 10월항쟁과 해방공간 청년들의 경험’이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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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사들 중 상당수가 국정역사교과서를 반대한다. 특강이 진행 중인 대구공업대 강당 벽면에 관련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전국 역사교사들이 지난 6일 역사 교과서와 역사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대구에 모였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주최한 이날 연수에는 전국에서 100명 넘는 역사교사들이 대구의 역사유산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2·28기념중앙공원을 답사했다. 특히 책 ‘10월 항쟁’의 저자인 김상숙 박사 특강에서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기술된 10월항쟁을 비롯해 대구지역 근현대사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영남일보는 국정 역사교과서 찬반을 넘어 역사교사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역사교과서는 무엇인지 취재했다. 더불어 국내 교과서 시스템과 검·인정 교과서의 한계는 어떤 것이 있는지 교사들에게 직접 물었다.


정권에 휘둘리는 교과서

“국정교과서가 보여준 시각은
과거 사실을 오직 긍정적 판단
국가·민족에 대한 자부심 강요”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 초 발표한 1천여명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가 국정화 교과서 추진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17%가 찬성, 15%가 유보 입장을 나타냈다. 또 17개 시·도 교육청 중 경북, 대구, 울산을 제외한 14곳이 국정화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실질적인 현장 도입도 쉽지 않다. 같은달 26일엔 역사·역사교육 전공 교수와 강사, 대학원생 1천579명이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국정 역사교과서를 즉각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역사 교사들은 역사교과서 자체가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데 입을 모은다. 집권당의 정치색에 휩쓸려 교과서 내용이 번복되는 현실에 염증을 느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 한 역사교사는 “국정 교과서의 시각은 과거의 사실을 오직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가르치려 한다”면서 “역사교과서의 목표는 학생들이 한국인으로서 역사를 제대로 보고 바람직한 역사상을 만들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인정 교과서의 한계

“검정 상당수가 국정 내용 답습
다원적 교과서의 도입 취지가
얼마나 구현됐는지 평가 필요”


국정 역사교과서의 반대 속에서 보다 자유로운 제안들도 나오고 있다. 여론이 국정 아니면 검·인정인 것처럼 양분된 상황에서 ‘그렇다면 검정교과서는 최선의 교과서냐’는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홍선이씨는 지난해 3월 학술지 ‘역사교육’에 게재한 논문 ‘한국사 교과서 조선 후기 신분제 내용의 획일과 고착’에서 “2011년과 2014년 발행된 검정교과서 14종 중 상당수가 과거 국정교과서의 내용을 답습하고 있으며, 그 결과 서술 내용의 차별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며 “국정제의 부당함과는 별개로 다원적 관점에 입각한 다양한 교과서 제작이라는 검정제 도입 취지가 현 검정 교과서에 얼마나 충실히 구현됐는지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강태원 역사 교사(대구 호산고)는 “검·인정은 정부가 교과서의 발행을 허가해주는 현 체제에서 최선 아닌 차선이라 생각한다. 현실적 선택이라고 본다”며 일말의 아쉬움을 표했다.

출판사가 정부 허가 없이 원하는 교과서를 펴내는 ‘자유발행제’ 얘기도 나온다. 역사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수단이라는 것.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검·인정 체제는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에 따라 기술된다. 일부에서 ‘(검정)역사 교과서가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고 비판하는데, 교육과정이 동일하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자유발행제를 도입하면 보다 다양한 시각의 교과서가 출판될 것이고 이 중에 교사들이 가장 적합한 교과서를 골라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람직한 역사교육

“역사교육은 민족의식 함축
민족 배제된 역사교과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


그렇다면 역사 교사들이 바라는 바람직한 역사 교과서는 어떤 것일까. 서울시교육청은 얼마전 개최한 ‘서울 역사 교사 대토론회’에서 역사교사 1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역사 교육이란 어떤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교사들은 ‘민주 시민에게 어울리는 역사의식을 키워 주는 교육’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일’ ‘역사를 통해 다양한 삶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설계하도록 한다’는 등 의견을 내놨다.

반면, 교과서에 지나친 무게중심을 두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내 중·고등학교에서 교과서는 교육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인 만큼, 교사가 교과서를 통해 가르치는 것이지 교과서 자체가 학교 역사교육을 전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과서 한 권이 한 사람의 역사관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규정하거나 변화시키긴 어렵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역사교육은 ‘민족의식을 배운다’는 의미를 분명 함축하고 있다. 일각에서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는 것을 탈피하는 데 지나치게 급급한데, 과연 민족의식을 배제한 역사 교과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묻고 싶다”면서 “보편적 가치를 함양하는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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