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김광석과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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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9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달이다. 희망과 설렘에 부푼 이맘때가 되면 유독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대구 출신의 가객(歌客) 김광석이다. 그에게 1월은 남다른 의미를 가졌는데, 삶의 시작과 끝을 모두 1월에 했다. 1964년 1월22일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났으며, 1996년 1월6일 자살로 서른두 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광석은 자유당 정권 시절 교원노조 사태로 교단을 떠난 전직교사 아버지의 3남2녀 중 막내였다. 그는 다섯 살 때까지 중구 대봉동에서 살다가 1968년 가족과 함께 서울 종로구 창신동으로 이사했다. 경희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관현악부 활동을 하면서 바이올린과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김광석의 진가는 소극장 공연을 통해 알려졌다. 1991년부터 서울 대학로 학전소극장 등에서 꾸준히 공연을 했고, 1995년 8월에는 무려 1천회라는 경이로운 라이브 기록을 세웠다. 생전에 ‘사랑했지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먼지가 되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서정적이고도 애잔한 노래로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김광석은 고향 대구에서 여전히 살아서 호흡하고 있다. 중구 대봉동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는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서울·부산·광주는 물론 멀리 해외에서까지 하루 1천명 넘는 이들이 그의 체취를 찾아 대구를 방문한다. 박학기·동물원·유리상자 등 동료가수들은 매년 이맘때 대구에서 대규모 추모콘서트를 마련하고 있으며, 이 밖에 김광석노래따라부르기대회, 김광석사진전 등 다양한 행사가 연중 다양하게 펼쳐진다.

대구에서 열리는 김광석 관련 행사들을 보면서 기자는 반가움과 동시에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김광석은 대구시민의 가슴에 커다란 ‘자긍심’인 동시에 대구가 키워나가야 할 미래의 ‘먹거리’이기도 하다. 대구시가 김광석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알고, 보다 폭넓은 관점과 시각에서 큰 그림을 펼쳐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은경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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