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진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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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0   |  발행일 2017-01-10 제30면   |  수정 2017-01-10
20170110
이현경 (밝은사람들 기획제작실장)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직한 상품만 팔겠다는
청년창업가의 고집처럼
혼미한 우리 정치권에도
역량있는 진짜일꾼 필요


새해 출근 첫날,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작년 가을에 처음 만난 청년창업가입니다. “창업 준비과정에서 힘들 때 도와줘서 고마웠다”며 새해 인사차 왔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9월 어느 날, 신문을 뒤적이던 동료 직원이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는데, 이들을 위해 우리가 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며 주위에 의견을 물었습니다. 열악한 지역경제 환경 속에서 두려움과 설렘으로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어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회사 전문성을 살려서 브랜드 네이밍(brand naming) 재능 나눔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일부 언론에 이 내용이 소개되면서 젊은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오후, 단정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환하게 밝은 모습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서울에 있는 ‘잘나가는 회사’에 근무하다가 더 늦기 전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사직하고 대구에 왔다고 했습니다. 속으로 “기회가 되면 모두들 서울로 가려고 하는데, 그 서울에서 ‘알아주는 명함’을 버리고 거꾸로 대구를 찾아오다니…. 그리고 하필이면 왜 이렇게 어려울 때…” 싶었습니다. 하지만 반듯한 그의 얼굴엔 강한 자신감과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쳐 보였습니다. 어디서 무얼 해도 성공할 청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봉급생활에서 벗어나 그저 돈이나 많이 벌려고 했으면 이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는 “좀 ‘별난 상품’을 엄선해서 판매하는 쇼핑몰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별난 상품’이라는 게 ‘소비자가 믿고 사고, 믿고 먹고, 믿고 쓸 수 있는’ 그런 ‘진짜 정직한’ 상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쇼핑몰에서는 그 청년의 매우 꼼꼼하고 엄격한 검수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품은 팔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디에 내놔도 자신 있는 정직한 제품’이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진짜 우리밀로 빻은 밀가루에다 화학색소, 인공향료, 트랜스지방, 방부제 등을 넣지 않고 구운 ‘안심쿠키’, 가끔은 차분하게 손글씨 또박또박 적은 편지를 보내는 정성을 권하기 위한 세련된 디자인의 편지지와 봉투, 우리아이들이 보다 어질고 선하게 성장하도록 하는 가르침에 도움이 될 책, ‘유전자 조작’ 등의 이상한(?)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우리토종 씨앗을 뿌려서 수확량이 좀 줄어들더라도 농약 덜 치려고 애쓰며 거둔 진짜 우리 농산품, 그리고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꺼내서 적고 싶을 정도로 예쁜 일기장…. 이처럼 우리 삶을 보다 바르게 이끌어갈 ‘진짜’들만 골라서 팔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100% 국내산으로.

그는 “이 뜻을 지켜줄 물품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서 쇼핑몰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저의 이 고집’은 절대로 꺾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정말 그럴 것 같다는 믿음이 갔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나 ‘돈벌이 수단’이 아닌, 이 같은 남다른 고집으로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저마다 보람을 거두면서 성공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한편, 이 나라는 지금 혼미한 정국 속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로 허술했던 국가시스템은 파탄직전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험난한 국제정세 속에서 외교·안보 현실도 만만치 않고, 새해 우리경제 전망은 지난해보다 더 힘들고 고달파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 정치지도자 가운데는 이 참담한 국가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민생’보다는 ‘나’를 먼저 챙기려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 정치권에도 그 청년의 ‘별난 상품’처럼 역량이 남다른 ‘진짜 일꾼’이 보다 더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위에 이처럼 든든하고 빛나는 청년들이 반듯반듯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우리정치권도 앞 다투어가며 ‘진짜 나라걱정’에 헌신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희망으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현경 (밝은사람들 기획제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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