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동물들과 함께하며 ‘언어로부터 절대적 해방감’ 맛보죠”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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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3   |  발행일 2017-01-13 제34면   |  수정 2017-01-13
◆ 동물과 교감하는 시인
20170113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는 구광렬 시인. 그는 그동안 숱한 원숭이, 반려견, 닭 등과 식구처럼 동고동락했다. 지금은 앵무새 한 쌍이 그의 말벗이다.

어린시절 매를 비롯해 늘 동물과 인연
원숭이 13마리·닭·반려견 등과 각별
현재는 암수 앵무새가 속 깊은 내 말벗

솔직히 난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한다. 난 대화에서 너무 논리가 지배하고 있으면 견디기 힘들다. 그런데 동물을 만나면 그런 게 전혀 없다. 언어로부터 절대적 해방은 나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존재와의 조우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나와 사용하는 언어가 현격히 다른 동물과 교감할 때 비로소 형언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낀다. 동물과는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동물과의 대화가 선문답 중에서 최고의 선문답이라고 본다.

내 곁을 지나간 동물이 수두룩하다. 어릴 때는 매도 키워봤다. 그동안 13마리의 원숭이, 10여종의 앵무새, 수십종류의 반려견, 34마리의 닭과 인연을 맺었다. 나도 자연 동물스럽게 변해갔다. 현재 앵무새인 까꿍이(암컷)와 똘똘이(수컷)가 내 말벗이다. 둘은 이미 인간의 언어를 100단어 정도 말할 줄 안다. 난 요 앵무새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다행이다. 다르기 때문에 내 입장에선 저들의 세상을 존중해 줄 수밖에 없다. 인간과의 경계는 결국 허물어지지만, 동물과의 경계는 절대 허물어지지 않는다. 우린 차원이 다른 세상을 교감하는 것이다. 중남미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후유증이 없는데 한국에선 후유증이 상당하다. 중남미는 혼혈이 다수라서 다른 걸 잘 익혀준다. 우린 단일민족이라서 그런지 다르게 말하면 ‘튄다’고 배척한다.

일상을 잠시 물리고 내 영혼의 밑바닥을 찾아간다. 고독해서 더 아늑하다. 겨울바람이 카랑카랑하게 대숲을 핥으면 금상첨화다. 하체로 밀려드는 냉기를 품고 나는 잠도 잊는다. 밤이 깊을수록 나는 밤눈처럼 하늘 높이 배회한다. 그리고 내 코와 입술 사이의 그 계곡처럼 움푹 패인 ‘인중’에 안겨 시를 적는다.

“레시엔시스 시절/ 암모나이트 자갈구이를 먹은 뒤 후식으로 뜯어먹던 꽃 내음을 절벽 쪽에서 맡고선/ 길게 손을 뻗어 꽃대를 당겨 곧장 입으로 가져가/ 생전 닦지 않은 이빨로 원시녀의 귓불을 깨물듯 꽃받침을 깨물고/ 설태가 허옇게 낀 혓바닥으로 낭창 꽃잎을 핥다가/ 마침내 털이 삐쭉 솟은 콧구멍으로 가져가기까지 걸린 세화(歲華)”(시 ‘인중’ 전문)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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